지난 2011년 12월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캔자스주의 오사와토미 고등학교에서 중산층 붕괴를 저지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는 연설을 했다. “경제는 중간에서부터 성장한다(The economy grows from the middle out)”고도 했다. 중산층이 두터워져야 경제가 성장한다는 의미였다.

오사와토미는 인구 4500명의 소도시다. 1910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자신들이 일하는 것 이상으로 소유한 사람들과 자신들이 소유한 것 이상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 사이의 투쟁이 바로 진보”라는 유명한 연설을 한 곳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오사와토미 방문은 그 자체로 상징적인 의미가 컸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상위 1%가 경제 성장의 과실을 거의 독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산층 복원을 위한 임금생활자 감세와 부유층 증세 정책을 공화당이 가로막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미국 언론에선 대통령 취임 이후 가장 포퓰리즘적인 연설이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당시엔 별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미들아웃(middle out)’은 생소하지만 의미 있는 용어였다. 이 말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스피치라이터였던 에릭 류와 벤처 자본가 닉 하노어가 만들어낸 ‘미들아웃 경제학’에서 나왔다.

미들아웃은 대기업과 부유층의 부(富)가 늘어나면 그 혜택이 아래로 확대된다는 이른바 ‘낙수 효과(trickle-down)’의 반대 의미를 담고 있다. 중산층이 팽창하고, 중산층 가계의 소득이 늘어나 소비가 활발해지면 경제가 더 빨리 성장하고 그 혜택이 위·아래로 퍼져나간다는 것이다.

오사와토미 이후 오바마 대통령은 2012년 대선 유세와 2013년 7월 일리노이주 녹스(Knox)대 연설 등에서 수시로 미들아웃을 거론했다. 오바마 2기의 핵심 경제철학은 미들아웃 경제학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정작 국정 운영 방향을 밝히는 가장 중요한 연설인 연두교서에선 미들아웃을 언급하지 않았다. 중산층 강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미들아웃 용어는 피했다. 오바마 정부의 각료와 부처들 역시 한번도 미들아웃 경제의 기치를 내걸지 않았다.

미들아웃 경제학은 검증되지 않은 이론이다. 낙수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미들아웃이 맞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폴 크루그먼 같은 진보진영 학자들도 미들아웃 경제학에 회의적이었다. 정치적 구호로는 쓸모가 있었지만 이를 국정 지침으로 삼을 수는 없었다. 오바마 정부의 신중한 접근은 당연했다.

그런 측면에서 문재인 정부가 ‘소득 주도 성장’을 공식화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에서 ‘경제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주장하며 4대 정책방향의 첫번째로 소득 주도 성장을 내세웠다. ‘일자리 중심 경제’ ‘공정 경제’ ‘혁신 성장’ 등 다른 3개 정책방향과는 달리 소득 주도 성장은 전례가 없는 새로운 구호다.

소득 주도 성장과 그 원전(原典)인 ‘임금 주도 성장(wage-led growth)’은 미들아웃 경제학과 마찬가지로 검증되지 않은 이론이다. 세계 경제학계에서 극소수 학자들이 이를 주장하고 있다. 실제 국가 정책으로 집행된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사상 초유의 실험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정책인 J노믹스 설계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조차 소득 주도 성장에 회의적이다. 그는 최근 출간한 저서 ‘경제정책의 전환’에서 ‘선진국 복지국가 모델이 한계에 봉착하고 글로벌화에 따른 경쟁 격화로 오늘날에는 현실 적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금 주도 성장의 대표 논문인 2012년 국제노동기구(ILO) 논문을 보면 ‘모든 나라들이 동시에 노동친화적인 분배정책을 단행하면’이라는 조건이 나온다. 은행이 대출을 하지 않고 예금과 지급결제만 하는 기관으로 축소돼야 한다는 비현실적인 주장도 담고 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가는 임금 주도 성장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암시하기도 했다.

결국 소득 주도 성장에 대한 국제 공조가 없는 상황에서 한국처럼 수출 의존도가 높은 나라가 이를 추진하는 것은 무리수가 아닐 수 없다. 수출 경쟁력이 무너지고 경제가 더 수렁에 빠져들 위험이 있다. 과감한 게 아니라 무모하고 무책임한 정책이다. 기존 처방이 잘 먹히지 않는다는 이유로 감당하지도 못할 판돈을 걸고 도박을 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한 가지 기대할 부분은 겉과 속이 다를 가능성이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 성장’이나 박근혜 정부의 ‘창조 경제’ 모두 내용보다 포장에 더 치중했다. 구호만 그럴듯 하고 실속은 별로 없었다. 문재인 정부의 ‘사람 중심 경제’ ‘소득 주도 성장’도 허장성세(虛張聲勢)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과거 정부는 생색 내기 위한 전시 행정과 겉치레가 큰 흠이었다. 현 정부는 차라리 그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폭주 기미를 보이고 있다. 어디까지 가려는 것인지 불안하기만 하다. 너무 늦기 전에 소득 주도 성장과 정규직 전환, 탈원전 등에 제동을 걸 수 있어야 한다. 내친 걸음이라고 낭떠러지를 향해 질주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