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자산 순위 26위 영풍그룹이 올해들어 순항 중이다. 본업인 아연제련 사업의 수익성이 좋아지고 있는 데다 최근 몇년간 적자를 냈던 인쇄회로기판 등 전기전자 자회사들이 '턴어라운드' 국면에 진입했다. 증권업계에선 영풍그룹이 4년 만에 적자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영풍그룹의 지주사격인 영풍은 연결 기준 2014년 292억원, 2015년 552억원, 지난해 42억원 등 3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한 바 있다.

하지만 영풍그룹은 일감몰아주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영풍개발의 내부거래 비중은 90%를 넘어선다. 장형진 영풍그룹 회장의 장남인 장세준 영풍전자 대표와 차남 장세환 서린상사 대표, 딸 장혜선 씨가 영풍개발 지분을 11%씩 보유하고 있다.

◆ '한 지붕 두 가족 경영'…3세 장세준·최윤범 공동 승계 유력

고(故) 장병희·최기호 공동 창업주가 1949년 창립한 영풍(000670)이 영풍그룹의 모기업이다. 두 가문은 공동경영 체제를 유지하면서 그룹 내에서 각자 다른 사업 영역을 맡고 있다. 장병희 창업주의 아들 장형진 영풍그룹 회장이 영풍을 맡고 있고, 최기호 창업주의 아들 최창근 고려아연 회장은 고려아연을 총괄한다.

장형진 영풍그룹 회장(왼쪽)과 최창근 고려아연 회장.

2세에 이은 3세 승계 작업은 순조로운 편이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 사이트인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최씨 일가 지분 중 40.7%가 3세에게 승계됐다. 이는 5년 전보다 5.8%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장씨 일가의 지분 중 51.8%도 3세에게 넘어갔다.

각 가문의 3세 후계자로는 장세준 영풍전자 대표와 최윤범 고려아연 부사장이 꼽힌다. 영풍 지분 16.89%를 보유한 장 대표는 2013년부터 영풍전자 대표를 맡아 그룹의 의사결정에도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최 부사장은 호주 태양광발전소 건립 사업 등 고려아연의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등 10년 전인 2007년부터 고려아연의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최 부사장은 영풍 지분 2.18%와 고려아연 지분 1.81%를 보유 중이다.

일각에서는 장씨와 최씨 가문이 이끄는 사업 영역이 나뉘어 있고 각각 가족회사를 계열사로 운영하는 점을 들어 영풍그룹이 계열분리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최창영 고려아연 명예회장의 장남인 최내현 알란텀 대표는 지난 1월 황산니켈 제조회사 켐코를 설립했으며 차남인 최정일씨는 지난해 5월 영풍그룹의 비상장 계열사인 엑스메텍의 지분 51%를 확보했다. 지난 2012년 유한회사 형태로 설립된 경영컨설팅업체 씨케이의 경우 장형준 회장 일가가 지분을 나눠갖고 있다.

영풍그룹 측은 "현재로선 계열분리 계획은 없다"며 "3세 경영도 장씨·최씨 가문이 공동으로 운영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 영풍, 4년만에 흑자 전환 전망…'천덕꾸러기' 전자계열사 '턴어라운드'

영풍그룹이 최근 3년 연속 적자를 낸 것은 인터플렉스(051370), 시그네틱스(033170), 영풍전자 등 전기전자 자회사들의 실적이 부진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부품인 연성인쇄회로기판(FPCB)을 제조하는 인터플렉스는 FPCB 시장이 포화되기 시작한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2281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특히 갤럭시노트7 단종 악재까지 겹치면서 지난해 4분기 영업손실은 333억원에 달했다. 매출도 전년동기대비 23.4% 줄어든 1245억원에 그쳤다.

같은 이유로 비상장사 영풍전자의 경우도 2013년 396억원을 기록했던 영업이익이 2014년 13억원으로 급감한 데 이어 2015년에는 적자로 돌아섰다. 2015년 35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던 반도체 전문업체 시그네틱스도 지난해엔 55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경기도 안산시에 위치한 인터플렉스 본사.

이들 전자계열사의 올해 실적은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애플 아이폰과 삼성전자 갤럭시S용 FPCB 공급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인터플렉스는 오는 9월 출시되는 아이폰8(가칭) 디스플레이용 FPCB를 연간 5000~6000만대씩 공급할 예정이며, '갤럭시S8 플러스'용으로 터치스크린패널(TSP)도 단독 공급한다. 영풍전자는 5월부터 아이폰8에 필요한 TSP용 FPCB를 애플에 납품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영풍의 연결 기준 올해 영업이익은 4년만에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관측된다. 게다가 주사업분야인 아연제련업의 경우 글로벌 아연 공급부족으로 날개를 달았다. 고려아연의 올 1분기 영업이익은 23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 늘었다. 올해 말로 예정된 공정 합리화 공사가 끝나면 전력비 및 가공비 절감으로 내년 실적도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영풍은 영풍전자와 시그네틱스의 지분을 각각 100%, 31.62% 보유하고 있다. 인터플렉스의 최대주주(34.81%)는 코리아써키트(007810)이며, 영풍은 코리아써키트의 2대주주다. 또 영풍은 고려아연의 최대주주(26.91%)다.

◆ 일감몰아주기·순환출자 논란은 과제

그러나 영풍그룹은 몇 가지 논란과 마주하고 있다. 첫 번째는 일감몰아주기다. 최근 10여년간 줄곧 내부거래율이 매출의 90%를 넘고 있는 영풍개발이 그 중심에 있다. 영풍개발은 영풍그룹 오너 자녀의 지분율이 33%인 비상장 계열사다. 영풍개발은 영풍그룹 계열사들의 건물을 임대 및 관리해 수익을 얻는다.

2007~2016년 영풍개발 내부거래 비중 추이.

영풍개발의 지난해 매출액은 19억2022만원이었다. 이 중 92.2%에 해당하는 17억7059만원이 영풍그룹 계열사간 내부거래에서 나왔다. 2014년, 2015년 영풍개발의 내부거래 의존도는 각각 96%, 94%를 기록했다.

현행법상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은 오너 일가의 지분이 일정 기준(상장사 30%, 비상장사 20%) 이상인 계열사로 내부거래가 200억원 또는 연간 매출의 12%를 초과하는 경우다.

이밖에 테라닉스, 서린정보기술, 서린상사 등 3개 계열사도 공정위 규제 대상에 들었다. 오너일가 지분율이 각각 33.33%, 41.27%인 서린정보기술과 테라닉스의 지난해 내부거래 비중은 10.95%, 8.8%였다. 서린상사의 오너일가 지분율은 33.33%이며 지난해 내부거래 비중은 8.64%를 기록했다.

순환출자 해소도 과제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새 정부에서 기존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법안이 시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순환출자는 출자 관계가 'A→B→C→D→A'로 이어지는 기업 지배구조를 뜻한다. A기업의 대주주(오너)가 나머지 B·C·D기업 지분을 직접 보유하지 않고도 우회적으로 지배할 수 있어 주로 재벌들이 적은 지분으로 그룹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한다.

영풍그룹의 순환출자 구조는 총 7개로 ▲영풍→영풍문고→영풍개발→영풍 ▲영풍→시그네틱스→코리아써키트→테라닉스→영풍 ▲영풍→영풍문고→시그네텍스→코리아써키트→테라닉스→영풍 ▲영풍→영풍전자→시그네틱스→테라닉스→영풍 ▲영풍→코리아써키트→테라닉스→영풍 ▲영풍→고려아연→서린상사→영풍 ▲테라닉스→시그네틱스→코리아써키트→테라닉스 등이 있다.

영풍은 지난 6월 보유하고 있던 영풍문고 지분 10%를 영풍문화재단에 증여했다. 이로써 오너 일가의 영풍문고 지분은 77%로 증가했다. 영풍문고는 영풍그룹의 핵심 순환출자 구조 중 하나인 '영풍→영풍문고→영풍개발→영풍'를 잇는 연결고리다. 이에 대해 영풍그룹 측은 "금리가 떨어지면서 재단의 이자 수익이 나지 않아 그룹에서 증여한 것"이라며 "순환출자 규제를 의식한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