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암(癌) 의심 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기까지 약 2주가 걸린다. 하지만 바이오(BT)와 전자기술(IT)의 결합으로 약 10분 안에 자신의 스마트기기를 통해 암을 진단할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

2015년 설립된 바이오기업 하엘(HAEL)은 최근 스마트폰으로 조기에 암을 발견할 수 있는 자가진단기 개발에 성공했다. 이 회사는 현재 상용화를 위한 기술 보완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내년 제품 출시가 목표다.

하엘 대표인 김준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팀과 고대안암병원, 하엘 기업부설연구소 (HAEL Lab)가 공동 연구·개발한 암 자가진단기는 세계 최초로 혈액 단 한 방울만으로 암세포에서 분비되는 ‘RPS3’ 단백질을 수치화해 암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 후 암 재발 가능성 등을 추적 관찰할 수 있다.

19일 고려대학교 산학관 건물 6층 하엘에서 암 자가 진단기기 프로토타입(본격적인 상품화에 앞서 성능을 검증, 개선하기 위해 핵심 기능만 넣어 제작한 기본 모델) 시연을 직접 확인했다.

하엘이 개발한 암 자가 진단기기 프로토타입 시연 장면 중 하나로, 혈액 샘플을 장비에 올려 스마트폰과 연동하면 혈액 내 RPS3 농도가 측정된다.

이 회사가 개발한 암 진단기 내에는 엄지 손톱 크기의 칩(Chip)이 장착돼있다. 이른바 ‘칩 위의 실험실’ 랩온어칩(Lab-on-a-Chip)’으로, 이 칩 위에 피 한방울을 떨어뜨리면 혈액 내 ‘RPS3’라는 단백질의 농도가 정량화돼 측정되는 것이다.

‘RPS3’란 암 세포의 악성 정도에 따라 발현율이 높아지는 단백질이다. 지난해 김준 교수팀은 암 세포의 전이가 확산되면 이 단백질이 세포 밖으로 분비되고, 정상 세포에서는 분비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즉, 암 세포의 전이율이 높을수록 세포 밖으로 분비된 RPS3 단백질도 증가한다.

김학동 하엘 연구소장은 “RPS3는 암 진단 및 치료의 골든 마커로 기대된다”며 “현재까지 정상인과 암환자가 RPS3 단백질의 분비량이 다른데, 대장암, 간암, 위암 환자의 경우 RPS3가 정상인보다 과다 분비된다”고 설명했다.

김준 교수팀의 연구결과는 지난해 종양학 분야 국제 학술지 '온코타겟'(Oncotarget)’에 실려 주목을 받았다. 이후 약 1년만에 다양한 암 환자에서 특정적으로 분비되는 바이오마커를 활용해 암을 선별하는 원리를 IT와 접목시켜 혈액을 통해 간편하게 암을 발견할 수 있는 기기를 개발한 것이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 스마트 암 자가진단기의 위장관 암 환자에 대한 임상연구 결과 현재 암 선별검사를 위해 의료 현장에서 사용 중인 혈청학적 바이오마커들보다 민감도와 특이도가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자가진단기 이용 방법은 간단하다. 실제 프로토타입 시연에서 진단장비와 스마트폰을 블루투스로 연결하고 하엘 애플리케이션에 로그인을 한 뒤 스마트폰 화면 상에 ‘RPS3검사 진단 분석하기’- ‘측정하기’를 누르자 RPS3 숫자가 올라가기 시작하며 결과값이 숫자로 표시가 됐다. 이 결과값을 가지고 연구 결과를 통해 축적된 데이터와 비교하여 암의 진단, 위험도 등을 알 수 있는 시스템이다.

김성중 하엘 부장은 “시연에서 보여준 방식은 칩에 혈액을 떨어뜨린 후 2번의 워싱작업을 거치고 형광물질을 붙여 감지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일련의 작업을 거쳐 RPS3 농도를 측정한 것인데, 추후 상용화하는 제품은 일련의 과정을 모두 자동화해 이용자는 혈액을 떨어뜨리고, 스마트기기를 통해 농도를 측정하는 간단한 과정만으로 암을 조기 진단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김학동 하엘 연구소장과 김성중 하엘 부장(왼쪽부터)

이 자가진단기를 이용하면 암의 조기 발견 뿐 아니라 암 수술 혹은 항암치료 이후 환자 모니터링과 암의 전이 여부, 암의 발생 부위까지도 파악할 수 있을 전망이다.

김학동 소장은 “DNA칩만 계속 교환하면 가족 등 여러 사람이 검사할 수 있어, 여러 사람이 진단기를 이용할 수 있다”며 “편리하고 비용 부담이 없도록 해 암 검사의 대중화를 선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향후 선별검사용 진단기 개발과 상용화뿐만 아니라 관련 연구 결과들을 응용한 기능성 화장품과 항염증 및 항진균제 개발도 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김준 교수는 “대부분의 암은 조기에 발견하면 좋은 예후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빠르고 정확한 진단이 중요하다”며 “정확하고 간편한 진단법을 개발해 인류의 생명과 건강을 해치는 암의 위협으로부터의 해방이 더욱 빠르고 손쉽게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하엘은 올해 상반기 자가 진단기에 대해 6건의 국내외 특허 출원을 완료했다. 의료기기 상용화를 위한 허가 임상에 돌입해 내년 하반기 출시한다는 게 하엘의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