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퀄컴의 특허 소송 전선(戰線)이 확대됐다. 지난 6일 퀄컴으로부터 특허 침해 소송을 당한 폭스콘, 페가트론, 위스트론, 콤팔 등 4곳의 애플 협력사들이 퀄컴을 상대로 맞소송에 나서기 때문이다.

19일(현지시간)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JS)에 따르면 폭스콘, 페가트론, 위스트론, 콤팔 등 대만 기반의 애플 협력사들은 18일(화요일) 퀄컴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 애플 제품을 조립생산하는 이들 기업들은 대리인을 통해 퀄컴의 불공정한 라이센스 관행에 대한 누적된 불만으로 소송에 참여하게 됐다는 입장을 밝혔다.

◆ 애플+협력사 VS 퀄컴…"참을만큼 참았다"

애플과 퀄컴의 특허료 분쟁은 갈수록 격화(激化)하고 있다. 애플이 지난 1월 퀄컴을 상대로 10억 달러(약 1조2000억원) 규모의 청구 소송을 제기하자, 퀄컴은 4월, 7월 각각 미국 법원과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자사의 특허권을 침해했다며 애플을 제소했다. 여기에 퀄컴이 애플의 협력사를 제소하자, 애플과 협력사들 사이에 '반(反) 퀄컴' 연합군이 만들어지는 모양새다.

지난 5월 퀄컴은 미국 샌디에이고의 연방법원에 폭스콘 등 애플 협력사 4곳을 특허 라이센싱 계약 위반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 업체들이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생산하면서 사용한 퀄컴 기술에 대한 로열티 지급을 중단했다는 게 소송의 이유였다. 퀄컴 측은 밀린 로열티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기존 계약에 따라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퀄컴 빌딩의 모습

퀄컴은 이동통신 원천기술(표준필수특허·SEP)을 무기로 휴대전화 제조업체로부터 스마트폰 가격의 일부를 특허사용료로 받는다. 이른바 '퀄컴세(稅)'이다. 애플은 퀄컴이 퀄컴 제품인 칩셋(메인보드, 그래픽 카드 등을 통합 및 제어하는 장치)의 가격이 아닌 스마트폰 값을 기준으로 특허사용료를 받는 체계가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퀄컴이 특허와 시장 지배력을 무기로 불공정 거래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아이폰에는 네트워크 접속을 위한 인텔과 퀄컴의 모뎀이 들어간다. 아이폰 7이 나오기 전까지는 퀄컴이 독점 공급했다.

애플은 지난 6월 성명에서 "퀄컴이 수년간 관련도 없는 기술 특허와 지식재산권 로열티를 강요하는 불공정 행위를 해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애플은 "퀄컴의 불법적인 비즈니스 관행으로 애플과 업계 전반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밝혔다.

애플은 아이폰 시리즈를 출시할 때마다 퀄컴칩에 관계없이 디스플레이의 크기를 키우거나 고성능 카메라를 탑재하는 등 부가가치를 높여 아이폰의 가격을 올렸다. 이 과정에서 퀄컴의 도움을 받지 않았지만 로열티로 지급해야 했다.

◆ 애플, 소송 왜?...협력사와 부품 혁신은 곧 경쟁력

아이폰 출시 10주년이 되는 2017년은 애플에 굉장히 중요한 시기다. 애플은 10주년 기념 아이폰에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를 적용하는 등 대대적인 혁신을 준비중이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애플이 비용·시간·노력이 많이 투입되는 퀄컴과의 소송전을 불사하는 이유는 부품사들의 혁신 경쟁력이 곧 아이폰의 경쟁력으로 이어진다는 철학 때문으로 풀이된다.

애플은 그동안 '3D(3차원)터치', '레티나 디스플레이', 고성능 카메라 등 아이폰 시리즈를 통해 애플과 아이폰을 세계 최고의 혁신 기업·제품으로 올려놓은 다양한 신기술을 선보였다. 혁신적인 기술을 적기(適期)에 구현할 수 있었던 애플의 경쟁력에 대해 상당수 전문가들은 협력사와 부품의 혁신이 애플의 제품 개발 능력과 합쳐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예컨대 LG디스플레이는 오랜 기간 애플에 디스플레이 패널을 납품해왔다. 애플의 창업자 고(故)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4를 공개하는 자리에서 "만약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사용해본다면 되돌아 갈 수 없을 것"이라고 디스플레이 성능을 강조했다. 바로 아이폰4의 경쟁력이 됐던 요소인 디스플레이를 납품한 LG디스플레이를 치켜 세운 셈이다.

협력사와 부품의 중요성을 어느 기업보다 잘알고 있기에 애플은 부품을 한 업체에서만 받지 않고 2~3개 업체에 물량을 나누는 다원화 방식을 채택한다. 경쟁을 통해 가격 경쟁력 강화와 품질 확보, 천재지변에 따른 부품공급 중단 등 여러가지 경제·위협요소를 감안한 결정이다.

일각에서는 퀄컴의 독점적 지위가 이러한 부품 협력기업들의 경쟁력을 방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라이센스비를 내지 않으면 칩셋도 판매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퀄컴에 대해 애플 협력사들은 퀄컴의 독과점으로 인해 독립적으로 사업을 유지할 수 없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애플 입장에서도 퀄컴뿐만 아니라 인텔, 삼성전자 등 여러 기업들의 제품을 놓고 성능도 비교하고, 가격도 비교하면서 부품을 공급받고 싶어할 것"이라며 "하지만 현재와 같은 폐쇄성으로는 부품 기술의 혁신성을 기대하기 어렵고 결국 세트 사업의 혁신속도에 부품업계가 뒤따라오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 퀄컴, 사면초가…정부·제조사·협력사·소비자까지 '불만'

퀄컴은 각국 정부와 정보통신기술(ICT) 기기 제조사, 부품업체, 소비자 등 여러 이해관계자와 동시다발적으로 싸워야하는 '사면초가(四面楚歌)'상태에 처했다. 이미 퀄컴은 한국, 미국, 중국 등 세계 곳곳에서 독점적 지위를 앞세운 불공정 행위로 소송을 당하거나 정부 당국의 조사·제재조치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퀄컴은 휴대전화의 핵심 반도체의 독점을 유지하기 위해 경쟁을 저해했다는 이유로 미국 연방무역위원회(FTC)로부터 제소됐다. 지난해 12월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혐의로 1조30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퀄컴이 본거지인 미국에서도 궁지에 몰린 것이다.

FTC는 퀄컴이 독점적 지위를 남용해 스마트폰 제조사에 비싼 라이선스를 구매하도록 강압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퀄컴은 자사의 특허를 사지 않으면 스마트폰 핵심 부품인 '베이스밴드 프로세서'를 공급하지 않겠다며 고객사를 협박한 혐의를 받고 있다. 베이스밴드 프로세서는 2G, 3G, LTE 등 이동통신 기술과 휴대폰 본체를 연결해주는 기능을 하는데, 퀄컴은 관련 라이선스 분야에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한국의 공정위 역시 퀄컴이 국제특허법을 따르지 않고 특허 사용료를 과다 책정해 38조원에 달하는 부당이익을 취했다고 판단, 과징금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퀄컴은 이에 반발해 지난 2월 서울고법에 과징금 결정 취소 소송과 함께 시정명령 집행정지 신청을 냈다. 퀄컴의 불공정행위를 심의한 전원회의는 지난해 7차례 열렸으며 여기에는 삼성전자, LG전자, 애플, 인텔, 화웨이, 에릭슨 등 세계 각국의 IT 기업들이 대거 참여했다.

퀄컴은 지난 2015년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로부터 비슷한 이유로 60억 위안(약 1조64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기도 했다.

이와 함께 퀄컴은 휴대폰과 모바일 기기를 사용하는 소비자들에도 소송을 당하며, 외면받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지난 1월 십여명의 소비자들이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연방지방법원에 퀄컴이 반독점법을 위반함으로써 초래한 피해를 보상해줄 것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퀄컴이 지적재산권을 남용해 자사의 모바일 칩을 사용하는 기기에 과다하고 부당한 로열티를 매겨 소비자들이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게 됐다는 게 원고측 주장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퀄컴은 특허와 독특한 방식의 수수료 책정 등 오래된 관행을 유지하면서 스마트폰 산업생태계를 폐쇄적으로 만들었다"며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소송과 제재 부과가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한국 공정위의 결정은 해외에서 진행중인 각종 소송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