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한 저축은행에서 명의를 도용한 작업대출이 승인 직전에 적발됐다. 1차 서류 심사는 통과했지만, 대출 신청자의 인적 사항에 의심을 품은 저축은행 직원이 이를 집요하게 파고든 것이다.

이 직원은 주소지와 직장이 서울인 대출 신청자가 지방 영업점에서 대출 신청을 했다는 점을 이상하게 여겼다. 또 대출 신청서의 연락처가 대출 신청인의 기존 금융 거래 정보에 저장된 것과 다르다는 것도 수상하게 생각했다. 이 직원이 명의자를 직접 찾아가 확인하니 본인은 “대출을 신청한 적이 없다”고 했다.

조사 결과 친동생이 형 명의를 빌려 대출 신청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형제간에 외모가 비슷하다는 점과 비대면 대출이라는 점을 악용해 친형 명의를 도용한 것이다. 대출 심사 직원의 기지가 아니었다면 대출이 승인됐을 상황이었다.

이 저축은행 관계자는 “최근에 대출 심사 기준이 강화되고 노하우도 많이 쌓여 작업대출은 99% 서류 심사에서 걸러진다”며 “하지만 범죄자들이 작정하고 직원들이 파악하기 어려운 내용을 속여 대출 심사를 하면 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작업대출은 금융사의 대출 심사 고도화와 당국의 꾸준한 단속 등으로 최근 몇년간 줄어드는 추세다. 시중은행의 경우 내부 조력자 없이 작업대출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만큼 범죄자들의 작업대출 수법도 발달하면서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제2금융권과 대부업체가 비대면 대출을 파고들어 생김새가 비슷한 가족의 명의를 도용하거나 무직자가 직장이 있는 것으로 속여 대출을 받는 경우가 늘고 있다. 대출심사가 다소 느슨한 정책자금대출도 작업대출의 표적이 되고 있다.

◆ 작업대출은 감소세…범죄 수법과 방식은 진화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작업대출 적발건수는 299건으로 전년 420건 대비 28.8%(121건) 감소했다. 금감원은 은행과 상호저축은행 등 제도권 금융기관이 서민 금융지원상품에 대한 취급을 확대하면서 저신용자 등 취약계층을 겨냥한 작업대출이 줄어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금감원은 주기적으로 인터넷 상의 불법금융행위를 조사해 수사기관에 통보하고 있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금융당국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범죄자들은 상대적으로 적발이 어려운 소셜네트워크나 모바일 메신저 등으로 숨어들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와 모바일 메신저로 작업대출 광고를 해서 대출자를 모집하는 것이다. 이 경우 피해자가 신고하기 전에는 적발이 쉽지 않다.

금감원 관계자는 “인터넷 광고를 통한 작업대출 범죄는 모니터링을 통해 적발이 가능하다”며 “소셜네트워크나 모바일메신저는 금감원에서 검사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조사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또 범죄조직과 짜고 재직 증명서를 조작하는 작업대출은 금융사가 걸러내기 쉽지 않다. 재직 증명서 조작은 작업대출 범죄조직이 가짜 회사를 설립하고 무직자에게 허위 재직증명서를 발급해주는 방식이다. 보통 대출 심사 과정에서 금융사 직원은 대출 신청자의 회사에 전화를 걸어 재직 여부를 확인한다. 범죄자들이 전화를 받아 재직 확인을 해주면 대출이 승인된다. 금융사 직원이 직접 회사를 찾아가기 전까지는 적발이 불가능하다.

가족 명의 도용도 비슷하다. 비대면 대출 허점을 노리고 부모, 형제, 친인척의 명의를 도용해 대출 신청을 하는 방식이다.

한 제2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명의도용 작업대출은 거의 가족과 친인척 사이에서 일어난다고 보면 된다”며 “이런 경우 대출 심사를 꼼꼼하게 해도 적발이 쉽지 않다”고 했다.

◆ 심사 느슨한 정책자금 대출 노려… 피해금 수십억원

대출 심사가 다소 느슨한 편인 정책자금을 노리는 경우도 있다. 최근 서울서부지검에 명의 대여자를 모집해 20억원대 전세자금 작업대출을 받은 범죄자 일당이 붙잡혔다. 이들은 노숙자 15명에게 수수료를 주겠다며 명의를 빌린 뒤 서류를 조작해 금융사에서 전세자금 대출을 받았다.

노숙자 이름을 임차인으로 하는 가짜 부동산 전세계약서를 만든 뒤 서민들을 위한 전세자금 정책금융 상품을 받아낸 것이다. 범죄자들은 전세대출 심사 과정에서 대부분 현장실사를 하지 않고 대출 심사도 느슨하다는 점을 노렸다.

지난해 11월에도 재직증명서와 임대차 계약서 등을 위조해 13억4000만 원의 불법 대출을 받은 일당 10명이 붙잡혔다. 지난해 6월에도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의 명의를 이용해 가짜 서류로 전세자금 대출을 받은 일당이 검거되기도 했다.

금융권에서는 정책자금대출의 경우 정부기관에서 대출금의 90% 이상을 대신 변제해주기 때문에 금융사들이 심사가 느슨하게 한다고 지적한다.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전세자금 사기대출로 법원 확정판결을 받고 주택금융공사가 대신 변제한 경우는 최근 5년간(2011∼2015년) 422건 총 250억 원에 달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사 직원들이 전세대출 심사를 하면서 직접 현장심사를 나가기 쉽지 않다”며 “자체적으로 대출 심사 과정에서 차주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는 등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