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미만 근로자, 지금도 300만명
2020년 자영업자 매출 인건비 비중 최대 6.6%P 증가
고용노동부 근로감독 강화에 자영업자 반발 가능성

정부가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매년 15% 이상 올리겠다고 선언한 가운데, 최저임금 기준이 제대로 지켜질 수 있을 지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많다. 무엇보다 지금도 최저임금에 못미치는 급여를 받는 근로자가 300만명에 달할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서울 송파구의 한 상업 지역.

15일 최저임금위원회가 2018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16.4% 오른 시간당 7530원으로 결정한 직후부터 최저임금 기준이 제대로 지켜질 수 있는 지 실효성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지금도 최저임금을 못 받는 근로자가 300만명이 넘을 정도로 많은 데, 기준을 높이다가 오히려 최저임금 제도가 유명무실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미준수 사례는 4인 이하 사업장 등 소상공인에 집중되어 있다. 정부가 최저임금 준수 단속을 강화하면 이들이 대거 범법자가 될 가능성도 있다.

통계청이 매년 8월 실시하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2016년 현재 최저임금 이하로 급여를 받는 사람은 280만명에 달한다. 전체 근로자 대비 비율은 14.6%다. 근로자 6.8명 가운데 한 명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일을 한다는 얘기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금융통화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2017년에는 최저임금 미달 근로자가 313만명으로 전년 대비 33만명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전체 근로자 대비 비율도 16.3%로 뛴다. 현재 경제활동조사 미시자료를 통해 파악하는 최저임금 미달자 파악 방식이 정확성이 떨어지긴 하지만 다른 나라와 비교해 한국의 미달자 비율이 유독 높다는 게 경제학자들의 설명이다. 권남훈 건국대 교수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등 다른 나라들을 보면 최저임금 미달자 비율이 높아도 5%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한국 근로자의 최저임금 미달률은 2001년 4.3%였다가,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가파르게 올랐다.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11.9%를 기록한 뒤 다소 등락은 있지만 소폭 상승 추세가 계속되고 있다.

최저임금을 못 받는 근로자들은 영세 소기업이나 자영업자 밑에서 일 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5년 발간한 ‘최저임금이 가계 및 기업에 미치는 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최저임금 미달 근로자가 일하는 곳은 4인 이하 사업장(45.5%·2014년 기준)이 절반에 육박했다. 5~9인 사업장은 24.2%였다. 고용 인원이 10명이 안 되는 사업장에 최저임금 미달 근로자의 70%가 몰려있는 것이다. 업종별로는 음식·숙박(19.6%), 도매·소매(16.6%), 사업관리·지원(10.1%), 보건·복지(9.3%) 등이었다.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서비스업에 최저임금 기준 위반이 몰려있는 양상이었다. 부가가치 창출 능력이 작은 영세 소상공인들의 경우 최저임금 기준 밑으로 임금을 줄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특히 60대 이상 고령 근로자는 절반가량이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연령대별 최저임금 미달 근로자 비율은 60세 이상이 43.1%, 50~59세가 12.1%, 24세 이하가 28.1%였다. 보고서를 작성한 오상봉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고령의 은퇴자들이 어쩔 수 없이 위법한 저임금도 감수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뛰면 이들 업종에서 인건비 부담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자영업자가 많은 업종에서 최저임금이 10% 인상될 경우 전체 매출 대비 인건비 비중 증가 폭을 추정했다. 관찰 및 분석이 어려운 이익 대신, 매출과 인건비 변화를 본 뒤 이를 토대로 이익 감소 폭을 추정하는 방식이다.

이 결과를 토대로 2018년 최저임금 증가율(16.4%)을 반영한 업종별 인건비 비중 증가를 보면 2018년에는 음식점은 1.2%포인트, 소매 1.0%, 경비나 청소 인력이 포함된 부동산 사업지원서비스는 1.9%포인트, 예술·스포츠·여가는 2.0%포인트 각각 인건비 비중이 느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저임금이 지금보다 54.6% 늘어난 시간당 1만원이 됐을 때 인건비 비중은 음식점 4.0%, 숙박 3.1%, 소매 3.1%, 사업지원서비스 6.3%, 예술·스포츠·여가 6.6%였다. 다른 비용 요인이 같다면 사업을 계속 꾸려나갈 수 없을 정도로 이익이 줄어드는 수준이다. 오 연구위원은 “영세사업자들의 열악한 경영환경을 고려할 때, 1∼2%포인트의 인건비 비중 증가의 충격이 한 번에 주어진다면 상당히 많은 사업체들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정민 서울대 교수는 “최저임금 미달률이 예상보다 대폭 뛸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내년에 16.4%의 임금 인상 충격이 가해질 경우, 사업자들이 소규모 조정을 통해 이를 감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임금이나 중간재 가격 등이 오르게 될 것”이라고 이 교수는 근거를 들었다. 그동안 최저임금 인상률이 높으면 높을수록 미달률도 가파르게 증가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결국 “규제가 심해지면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는) 비공식적인 시장으로 갈 인센티브가 사업자나 근로자 모두 생길 것”이라고 이 교수는 말했다.

문제는 최저임금 미준수 사업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정부의 단속도 강화된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저임금 1만원과 함께 최저임금 전담 근로감독관제를 신설하고, 상습적이고 악의적인 최저임금 위반 사업주를 제재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이미 정부는 지난달 '부당노동행위 근절방안'을 발표하고 노조활동 방해 금지 등 노동시장 질서 확립을 위해 대대적인 근로 감독에 나섰다. 아직은 감독의 초점이 노조파괴 행위에 맞춰져 있지만,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 등으로 근로 감독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최저임금 미준수에 대해 법 규정은 엄격하지만, 단속은 느슨하게 이뤄지고 있다. 최저임금액보다 적은 임금을 지급하거나, 최저임금을 이유로 종전 임금을 낮춘 자는 3년 이하 징역과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돼있다. 도급계약에서 도급인이 최저임금 규정을 지키지 않을 경우, 수급인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감독이 이뤄지지도 않고, 적발되더라도 처벌되는 경우가 드물다. 근로감독으로 적발한 최저임금 위반 사례에 대한 사법처리 건수는 2012년에는 6건, 2016년에는 17건에 불과하다. 대신 근로자 개개인이 최저임금법 위반을 신고해 사법처리된 경우는 2012년 360건에서 2016년 896건으로 늘었다. 정부의 느슨한 감독을 개인의 법률적 자기방어가 메우고 있는 모양새다.

이 때문에 새 정부가 최저임금 감독을 강화할 경우 영세 자영업자들의 반발이 커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가지 못하는 형편인 소상공인들이 결국 무더기로 잠재적 범법자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