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잠이 줄어드는 것은 초기 인류가 맹수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진화한 행동의 결과라는 주장이 나왔다. 노년기의 불면증이 병이 아니라 고귀한 희생의 흔적이라는 말이다.

미국 듀크대 찰리 넌 교수 연구진은 12일(현지 시각) “다양한 연령대가 함께 사는 원시 부족에서도 연령대에 따라 수면 시간이 달라 최소한 한 사람은 깨어 불침번 역할을 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문명과 동떨어져 사는 아프리카 탄자니아 하드자족(族) 남녀 33명에게 동작 감지 센서를 팔목에 차게 하고 20일간 관찰했다. 나이는 20~60세로 다양했다. 이들은 낮에 사냥과 채집 활동을 하다가 밤이 되면 오두막이나 난롯가에 모여 같이 잠을 잤다. 예상대로 하드자족 역시 50~60대가 20~30대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다. 도중에 잠에서 깨는 경우도 많았다.

연령대에 따라 수면 시간이 달라지면서 하드자족은 수면 시간 중 구성원의 3분의 1 이상은 늘 깨어 있거나 선잠을 자는 것으로 드러났다. 자연스럽게 늘 누군가가 불침번을 선다는 말이다. 부족원 모두가 동시에 잠이 든 시간은 조사 기간 동안 전체 수면 시간 220시간 중 단 18분에 불과했다.

연구진은 “초기 인류에게 야행성 맹수가 가장 큰 위협이었을 것”이라며 “결국 나이가 들면서 잠이 줄어드는 것은 몸에 이상이 생겨서가 아니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생긴 진화의 유산”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를 ‘잠 못 드는 조부모 가설’이라고 이름 붙였다. 나이 든 여성이 직접 자식을 낳는 대신 손주들을 돌봐 집단에 도움을 준다는 ‘할머니 가설’처럼 할아버지·할머니가 잠을 줄여 집단을 보호한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영국 왕립학회보 B'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