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놀라운 고백을 했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유방암 발병이 우려되자 자신의 유방 양쪽을 모두 절제했다는 것. 이런 내용이 세상에 알려지며 국내외에서 유방암 예방을 위한 유전자 검사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커졌다.

정현용 마크로젠 대표.

당시 주목받았던 유전자는 ‘브라카(BRCA1)’ 유전자다. 현재 국내에선 의뢰자의 조건에 따라 보험 적용 여부가 다르지만, 비용을 지급하면 병원에서 일명 ‘브라카 검사’를 할 수 있다.

브라카 유전자에 대한 논란이 사라질 때 쯤 뜻밖의 오해가 생겨났다. 원래 이 유전자는 다른 유전자의 잘못된 부분을 고쳐주는 기능을 하는데, 일반인들 사이에선 마치 질병을 유발하는 것처럼 잘못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유전자라는 말은 추상적으로 막연하게 이해되는 게 현실이다.

정현용 마크로젠 대표(48⋅사진)는 “보통 유전자라고 하면 발병한 질병에만 한정해서 바라보는 시각이 많다”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 유전자 정보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건강한 사람이 건강하게 사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크로젠 창업 초기 창업자 서정선 회장(앞줄 왼쪽에서 다섯번째)과 임직원이 함께 한 단체 사진.

◆ ‘실험용 쥐’에서 ‘유전체 분석 정보’까지

마크로젠은 1997년 6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유전체의학연구소를 모태로 설립됐다. 창업자인 서정선 회장이 연구를 통해 의학을 바꾸겠다는 신념으로 시작한 것이다. 사업 초기에는 실험용 쥐를 통해 질병 모델을 만들어 국내외 연구소와 제약사에 공급했고 미국, 일본에서 생명 특허도 받았다.

회사 설립 2년여 만에 국내 바이오 벤처기업 최초로 코스닥에 상장했다. 유전공학은 1980년대 미국에서 처음 태동한 분야로 마크로젠은 지난 20년간 꾸준히 연구개발에 매달렸다. 마크로젠의 주 고객은 전 세계 153개국 1만8000여 개 연구기관이다.

지난 2001년 한국인 유전체 지도 초안을 구축했으며, 지난해에는 정확도가 97%에 달하는 아시아인 표준 유전체 지도를 완성하며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현존하는 가장 완벽한 인간 게놈(유전체) 지도”라고 평가했다.

마크로젠 직원 371명은 모두 정규직이다. 이 가운데 박사 34명을 포함해 175명(47%)이 연구개발(R&D) 인력이다. 지난해 매출 911억원 중에 49억원(5.4%)을 연구비로 사용했고, 이는 월드클래스300 선정 기준(2%)을 훨씬 넘는 수치다. 올해는 처음으로 매출 1000억원 돌파를 목표로 하고 있다.

마크로젠 연구원들이 유전체 정보 분석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 연구 분야 유전체 분석 시장 점유율 세계 1위

서울 금천구에 있는 본사 연구소에서는 24시간 분석 장비와 빅데이터 서버들이 켜진 채 유전자 정보를 분석한다. 주된 업무인 유전자 분석은 염기서열(DNA를 이루고 있는 염기의 순서) 정보를 읽어내는 것을 말한다. 분석 결과는 국내외 연구기관에 보내져 각종 의학연구에 사용된다.

염기서열을 필요한 부분을 정확히 구분해 DNA가 망가지지 않게 하는 ‘라이브러리’ 과정이 제일 중요하다. 마크로젠이 보유한 NGS(차세대 염기서열 분석)핵심 기술 중 하나다. 유전자검사 정확도가 90% 이상(분석 장비 제조업체 기준 80%)이다. 세계적으로 기술력을 인증을 받으며 연구 분야 유전체 분석 시장 점유율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마크로젠은 고가의 분석 장비 100여 대를 보유하고 있다. 세계 공공기관을 포함해 세계 5위 수준이다. 지난 2014년 유전자 분석 장비업체인 미국 ‘일루미나’는 세계 단 3곳에 차세대 유전자 분석 장비를 공급했다. 일반 기업으로는 유일하다. 마크로젠의 기술력을 인정한 셈이다.

마크로젠의 암 유전체 관련 데이터들은 국제 암 협회에 기탁돼서 전 세계 연구자들이 같이 공유하고 공동 연구에 활용되고 있다. 매일 세계 각국에서 국제 특송 우편으로 유전자 정보 분석을 의뢰한다. 고객 편의를 위해 실시간으로 배송 정보부터 분석 결과까지 확인 가능한 ‘림스 시스템’도 개발했다. 이 같은 서비스 기반으로 해외 매출 비중이 70%에 달한다.

◆ “개인 유전자 검사 대중화 추진”

미국 정부는 지난 2015년 정밀의학 분야에 2억1500만 달러(한화 2200억원)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정밀의학이란 진단부터 치료에 이르는 모든 단계에서 환자 개인의 유전⋅환경⋅생물학적 특성 등을 고려하는 맞춤의학을 말한다. 영국, 캐나다 등 주요 국가들도 정밀의학 분야를 선도하기 위해 유전체 분석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마크로젠은 이런 의료분야 패러다임의 변화를 예측하고 다가올 정밀의학 시대를 주도하기 위해 준비해 왔다. 현재 분당서울대병원, 국립암센터 등 국내외 주요 의료기관과 협력해 정밀의학센터를 설립하고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정현용 대표는 “정밀의학 연구를 위해 사람들의 운동량, 유전자 정보 등을 모아 새로운 가치의 빅데이터를 확보해야 한다”면서 “아시아인 10만 명의 유전체 정보를 분석하는 ‘게놈 아시아 100K 이니셔티브’ 프로젝트는 미래 핵심사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크로젠은 유전자 검사의 대중화도 추진하고 있다. B2B(기업 간 거래)에서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로 시장을 확대하기 위함이다. 주 고객이 연구기관들인 상황에선 회사의 성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지난 4년간 개발한 것이 바로 ‘암 유전자 검사 패널’이다. 폐암, 난소암, 유방암 등 주요 암에 대해 400개 유전자를 동시에 진단할 수 있다. 상용화 단계를 넘어 기술 고도화 과정에 있다.

암 유전자 검사 패널을 이용하면 병원에서 암 검사를 받는 환자들이 암 진단을 명확하게 받을 수 있다. 아직까진 유전자 검사에 대한 법적 제약이 많아 널리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마크로젠 회의실에는 사훈 ‘홍익인간’이 씌여진 액자가 걸려 있다. 유전체 정보로 무병장수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겠다는 의미다. 정 대표는 “사람은 죽기 1년 전에 모은 돈 전부를 치료비로 다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운동, 식생활, 투약 등 다양한 생활패턴과 유전자 정보에 대한 연구로 개인의 건강한 삶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