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디지털 카메라 시장을 호령하던 일본 카메라 업계가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스마트폰 카메라의 성능이 좋아지면서, 디지털 카메라 시장 규모가 매년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니, 캐논, 니콘, 올림푸스 등 전통의 카메라 업체들은 오랜기간 쌓아온 카메라 제조⋅광학 기술력을 바탕으로 각종 신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왼쪽부터) 니콘, 캐논, 소니, 올림푸스 카메라의 모습

7일 일본카메라영상기기공업협회(CIPA)에 따르면, 일본 카메라 업체들이 지난해 세계 시장에 판매한 디지털카메라는 총 2만4190대로 2015년(3만5395대)보다 31.6% 줄었다. 불과 6년 만에 시장이 5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든 것이다.

◆ 위기를 기회로 소니∙올림푸스…"원천 기술로 파생 시장 공략"

카메라 시장의 축소로 생존 위기에 내몰린 카메라 업계는 파생 기술을 응용한 다양한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한 상태다. 일본 소니는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비메모리 반도체 '이미지센서(CIS)' 시장에서 일찌감치 진출해 활약하고 있다.

소니의 이미지센서 제품군의 모습

소형화⋅경량화를 잘하는 소니는 콤팩트 카메라에 탑재되는 CMOS 이미지센서 기술을 고도화했다. 작은 크기의 칩에서도 빛을 많이 받아들여, 고화질의 이미지를 촬영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이미지센서는 시스템 반도체의 한 종류로 카메라 렌즈가 포착한 시각·영상 정보를 전기신호로 변환해 이미지를 만드는 기술이다.

소니는 삼성전자와 애플 등 주요 스마트폰 업체에 이미지센서를 공급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IHS마켓에 따르면 지난해 소니의 이미지 센서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44.5%(매출액 기준)에 달한다. 2위인 18%의 삼성전자를 훌쩍 앞서 있다.

소니는 올해 달러당 엔화 환율이 110엔 수준을 이어간다면 이미지 센서 사업에서만 1000억엔(약 1조24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기대한다. 전자 업계 관계자는 "스마트폰이 1대 팔릴 때마다 소니는 20달러(2만2400원)를 번다"면서 "이미지 센서가 소니 실적 회복의 일등 공신"이라고 말했다.

배우 전지현을 광고 모델로 내세워 국내에서 '전지현 카메라'로 유명했던 일본 올림푸스는 광학기술을 이용해 의료기기 시장에 진출했다. 현재 올림푸스는 세계 소화기 내시경 시장에서 70%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병원에서 위, 대장내시경을 할 때 사용하는 카메라의 대부분이 올림푸스 제품이라는 의미다.

올림푸스 내시경 장비의 모습

올림푸스의 2016년 회계연도 연간 매출액은 총 7481억엔(약 7조5962억원)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의료사업 부문 매출은 5752억엔(약 5조8406억원)으로 약 77%에 이른다. 카메라를 포함한 영상사업부문 매출은 656억엔(약 6661억원)으로 8.8%에 불과하다. 카메라 회사보다는 의료기기 전문 업체에 더 가까운 셈이다. 최근에는 외과 3차원(3D) 복강경 수술시스템, 통합수술실시스템 '엔도알파' 등으로 의료기기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올림푸스 관계자는 "빛을 사용하는 현미경과 카메라 등 광학 기술을 꾸준히 연구개발(R&D) 해오면서 어두운 환경에서도 선명한 촬영이 가능한 기술을 갖게 됐다"며 "어두운 위와 대장 등 몸속 환경에서 최적의 영상 품질을 제공하는 것이 올림푸스 내시경의 기술력"이라고 말했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는 "소니와 올림푸스는 카메라 시장 강자에서 빠르게 이미지센서와 의료기기의 강자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며 "카메라 사업으로 오랜기간 축적해온 광학, 정밀제조, 영상∙이미지 처리 등에 관한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애플∙삼성∙LG도 쩔쩔 매는 캐논과 니콘…"장비 만들면 우리한테 팔아줘"

최근 디스플레이 업계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장비 업체는 일본 니콘이다.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소비자들에게는 카메라 업체로 알려진 니콘이 생산하는 노광(露光,) 장비에 목을 맨다.

노광장비는 액정표시장치(LCD) 및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생산에 공통적으로 사용된다. 노광은 반도체 실리콘 웨이퍼에 회로 패턴을 새기는 공정이다. 현재 디스플레이용 노광장비는 일본 니콘과 캐논만 만들 수 있다. 특히 디스플레이 업계의 화두인 10.5세대(2740mm X 3370mm)급 장비는 오직 니콘만 생산할 수 있다.

일본 캐논도키 공장 전경

니콘과 함께 캐논의 자회사 캐논도키도 디스플레이 업계의 사랑을 받고 있다. 캐논도키는 1967년 특기(특별한 기계) 주식회사로 시작해 30년 이상 진공 증착 제조 설비를 만들어오며 기술력을 인정받은 업체다. 증착(蒸着)은 디스플레이 공정에서 반도체(실리콘) 기판 위에 매우 얇은 박막 입히는 장비다. 캐논도키는 2005년 캐논의 투자를 받으면서 캐논 그룹에 합류했다. 이후 사명을 캐논도키로 바꾸고, 로고를 함께 쓰기 시작했다.

캐논도키는 밀려드는 설비 주문에 지난 2016년 생산 설비를 2배로 확장했지만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밀려 있는 주문만 100억 엔(약 1015억원) 수준으로 대기 기간은 약 2년이라고 한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에 장비를 공급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캐논도키가 설비를 공급하지 못하면 OLED가 탑재된 애플의 아이폰8이 출시되기 어렵다는 얘기가 나올만큼,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시장조사기관 디스플레이서플라이체인컨설턴트(DSCC)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세계 디스플레이 장비 시장에서 캐논은 매출 1위를 기록했다. 캐논은 디스플레이 노광기와 증착기 시장에서 각각 50% 이상을 점유, 작년 동기 대비 504% 성장했다. 전체 디스플레이 장비 시장 매출의 16%를 차지했다. 같은 조사에서 니콘은 6%의 점유율로 3위를 기록했다.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노광기와 증착기 등의 장비는 광학기술과 정밀계측, 가공기술, 재료기술의 결정체"라며 "니콘과 캐논은 렌즈의 원료부터 가공, 카메라 생산까지 가능한 기업으로, 이러한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 유일의 디스플레이 장비 생산 업체로 진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