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잘 만들어야 팔리지 않겠습니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산 자동차가 한국에서 팔리지 않는 것을 예로 들며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시사하자 자동차업계에서 나오는 반응이다.
관세 장벽은 이미 없어진지 오래고 비관세 장벽 때문에 미국차가 국내에서 팔리지 않는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괜한 트집잡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미국차 경쟁력이 떨어져 국내에서 판매가 많이 이뤄지지 않을 뿐 비관세 장벽 때문에 차가 팔리지 않는다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라는 것.
미국측이 주장하는 비관세 장벽은 온실가스규제(연비규제)와 깜빡이(방향지시등) 규제, 수리이력 규제 등이다. 그러나 깜빡이 규제에 해당되는 차량은 현재 없는 상태이며 수리이력 규제는 미국도 이미 시행하는 부분이라 문제될 것이 없다. 온실가스규제 정도가 판매에 제약이 될 수 있으나, 이 역시도 미국 기준에 맞춰 낮추더라도 미국차의 국내 판매가 갑작스레 늘어날 가능성이 크지 않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과 교수는 "'미국에서 10대 팔면 한국도 10대 사라'는 관점에서 불공정 무역의 사례로 자동차를 들었는데, 미국과 한국은 자동차 시장 규모의 차이가 있어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미국차 브랜드가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한국시장에 판매한 차량 대수는 7795대로 전체 수입차 시장에서 약 8.3%에 불과하다.
◆ 온실가스규제, 이미 배출가스 배기량 낮은 차 위주로 수입
한국의 자동차 온실가스 배출 기준은 2020년 km당 97g을 목표로 순차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미국은 2020년까지 km당 113g으로 한국 기준이 상대적으로 높아 미국차를 한국에 판매하는데 제약이 된다는 주장이다.
온실가스배출 기준은 전체 차량 판매대수에서 차량 평균을 낸 값으로 이 기준을 그대로 미국차에 적용하게 되면 미국산 픽업 차량, 스포츠카 등은 한국 판매가 어렵다.
그러나 한국에 판매되는 미국차 대부분은 세단과 중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다. 대형 SUV와 스포츠카, 대형 픽업차량 등 고배기량 차량에 대한 국내 수요가 많지 않아 판매하지 않을 뿐이다. 또 온실가스배출 기준을 맞추는 방법으로는 전기차나 하이브리드 차량 판매를 늘리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문제다.
연비규제의 경우 미국은 리터당 16.6km인 반면 국내는 17km가 적용되고 있다. 이 역시도 국내에만 적용되는 불합리한 규제는 아니다. 또 미국차 뿐만 아니라 국산차와 유럽차, 일본차도 동일한 규제를 적용받는다. 김필수 교수는 "EU는 18.1km로 우리보다 더 엄격한 규제가 적용되고 있고 일본은 한국과 비슷한 수준인 16.8km다"라고 말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동차 제조사는 온실가스규제나 연비규제 중 한가지를 선택해서 기준을 맞추면 된다"며 "최근 미국은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 등으로 이 같은 규제를 맞출 필요가 없다 보니 연비와 온실가스규제를 가지고 비관세장벽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배출 규제는 한-유럽연합(EU), 한미 FTA 등과 연동돼 있어 한국이 함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 수리이력 고지, 이미 미국도 시행중
수리이력 고지는 차가 출고된 이후 소비자한테 인도되는 시점까지 문제가 생겼을 경우 수리하면 이력을 남겨야 하는 규제다. 이는 소비자 보호를 위한 제도로 직접적인 차량 판매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특히 수리이력 고지의 경우, 미국 36개 주에서 한국과 비슷한 제도를 이미 시행 중이어서 한국 수출차도 같은 규제를 받고 있다.
미국차업체 관계자는 "고객에게 인도하다가 사고가 발생해 수리하는 경우는 1년에 몇건 없다"며 "만약 수리하게 됐는데도 고객에게 알리지 않고 파는 것은 너무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깜빡이(방향지시등) 규제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는 깜빡이를 주황색을 사용해야 한다. 반면 미국은 빨간색도 허용하고 있는데 이런 차량을 한국에 수출하기 힘들다는 게 미국측 주장이다. 하지만 1년에 2만5000대 이하를 수입하는 업체는 이 규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지난해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미국차가 1만대 이하인 점을 감안하면 적용 대상 차량이 없다고 보면 된다.
실제 한국GM에서 수입해 판매하는 임팔라와 카마로의 경우 현재 빨간색 방향지시 등이 장착된 채 판매되고 있다. 오히려 최근 들어서는 브레이크등과 방향지시등이 같은 빨간색일 경우 사고 위험성이 높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미국내 판매차도 주황색으로 방향지시등을 바꾸는 추세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비관세 장벽이라는 것은 사실상 미국의 억지주장이라고 보면 된다"며 "깜빡이 규제에 해당되는 차량은 없고 수리이력 고지 등도 판매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아니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 한국차 관세 올리기 위한 명분 쌓기 지적도
지난해부터 미국산 자동차의 국내 수입관세율과 한국산 자동차의 미국 수출관세율은 0%로 낮아졌다. 한미FTA 발효 4년 후 승용차에 대한 관세를 철폐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자동차업계에서는 미국이 비관세장벽을 명분으로 한미FTA 재협상에 나선 뒤 결국에는 한국차에 대한 미국 수출관세율 2.5%를 환원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과 미국의 불균형 무역의 예로 자동차 분야를 콕 집어 이야기한 만큼 향후 FTA 재협상이 시작되면 자동차 분야에 대한 압박이 거세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무역 불균형을 이유로 한국차 관세율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문제는 미국차가 국내에서 많이 팔리면 해결되는데, 디자인이나 연비, 품질 등에서 한국차보다 떨어지다 보니, 많이 팔리지 않는 것"이라며 "미국이 무역적자를 이유로 한국차도 미국에서 많이 팔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쓸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미국이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율을 올리면 미국 현지 생산 비중을 올리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