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형태의 전자담배인 필립모리스의 '아이코스(IQOS)'가 출시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가운데 정치권에서 때아닌 담배 세금 논쟁이 벌어졌다. 아이코스는 담뱃잎으로 만든 궐련을 태우지 않고 전기로 가열해 찌는 방식으로 연기를 발생시는 방식의 담배다. 전자담배와 일반담배 중 어느 쪽으로 볼 것이냐에 따라 세금은 크게 달라진다.
전자담배로 보는 현재는 1갑당 1588원의 세금과 부담금이 부과된다. 일반담배로 볼 경우 3323원까지 올라간다. 올 초 전자담배로 판정한 일부 법안이 이미 통과된 상황에서 일반담배로 봐야 한다는 법안이 새로 발의됐다. 인기가 없을 서민 부담 증세안을 야당에서 들고 나온 것도 이례적이다.
3일 기획재정부와 국회 등에 따르면 자유한국당 김광림 의원 등 야당과 무소속 의원 10인은 지난달 16일 아이코스와 같은 '궐련형 전자담배'에 일반담배와 동일한 세금을 물리자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지방세법, 개별소비세법, 국민건강증진법 등 3개 법에 대한 일부 법률 개정안이다.
국회는 지난 1월 지방세법과 국민건강진흥법 등 2개 법에 대한 개정안을 통과시키며 아이코스를 전자담배로 보고 낮은 세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박남춘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이다.
당시 개별소비세법 개정안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기재부는 애초 박남춘 의원 안대로 아이코스에 전자담배의 세율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지만, 지금은 뚜렷한 의견을 내지 않고 있다.
① 전자담배인가 일반담배인가
김광림 의원 등은 궐련형 전자담배가 일반 담배처럼 담뱃잎을 원료로 하고, 모양과 흡입 방식이 같은데다, 입에서 증기 형태의 연기가 배출된다는 이유로 일반담배와 사실상 동일한 제품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반대쪽에서는 가열형 전자담배는 기존 담배와 전혀 다르다고 주장한다. 불을 붙여 태우지 않아 유해물질이 훨씬 덜 나오고, 기존 담배의 문제점이던 냄새와 담뱃재가 없다는 점 등이 다르다는 것이다. 기차의 형태라고 새마을호와 KTX를 같지는 않다는 논리다.
이들은 또 이미 제품이 출시된 상당수 국가에서 궐련형 전자담배를 일반 담배가 아닌 전자담배로 본다는 것을 근거로 든다. 실제 제품이 출시된 독일과 일본 등 전세계 20여개국 중 일반담배로 분류한 국가는 아직 없다. 국내서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와 안전행정위원회에서는 궐련형 전자담배를 전자담배로 분류해 이미 박남춘 의원 법안을 통과시켰다.
② 개별소비세 취지에 맞나
궐련형 전자담배의 세금을 정할 때 형태만 볼 것이 아니라 취지를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정부가 담배에 개별소비세를 물리는 것은 건강을 해치는 상품인 만큼 소비를 줄이려는 의도에서다. 담배에 물리는 세금은 이른바 죄악세(Sin tax)인 셈이다. 국민건강진흥법을 보면 형태나 흡연방식 등에 따라 담배가 9가지로 구분돼 세율이 저마다 다르다. 유해성이 클수록 높은 세금을 부과받는다.
담배업계 등에서는 가열형 전자담배가 유해성이 적은 만큼 개별소비세도 일반담배보다 적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담배회사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가열형 전자담배는 일반 담배보다 유해물질이 95% 이상 적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김광림 의원 측에서는 이것이 담배회사의 주장에 불과한데다 중독을 유발하는 물질이 적으면 담배를 더 자주 피우게 된다고 주장한다. 현재 일반담배가 니코틴이나 타르 등 유해물질의 양과 상관없이 동일한 세금을 내는 것도 근거로 삼는다. 특히 전자담배가 유해물질이 적다고 홍보하는 것은 청소년 흡연을 부추길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이에 대해 담배업계는 일본 등의 사례를 보면 궐련형 전자담배를 선택한 대부분의 사람이 기존 흡연자였기 때문에 담배 수요를 늘리지는 않았다고 반박한다. 또 유럽 등의 학회에서도 담배를 아예 피우지 않는 것이 가장 좋지만, 모든 사람이 금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궐련형 전자담배를 피우는 것이 일반 담배를 피우는 것보다 낫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는 것도 근거로 제시한다.
③ 담뱃값 오를까
김광림 의원 측은 세금이 오르더라도 궐련형 전자담배의 수입·판매사들이 판매가격에 모두 반영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미 세금이 올라갈 것을 가격에 반영해놨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세율을 올리지 않을 경우 이들의 추가 이익을 보장하는 꼴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필립모리스 등 담배업계에서는 현재 논의되는 수준의 증세라면 담뱃값을 올리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궐련형 전자담배가 생산 단가가 일반 담배보다 높다는 점과 막대한 연구개발비용이 들어갔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 경우 서민 부담 증세 논란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지난해 담뱃값 인상은 일각에서 꼼수 증세라는 비판을 받았다. 세수가 크게 늘었지만 금연 효과는 별로 없었다는 시각이다.
특히 궐련형 전자담배는 출시된 지 한 달만에 세금이 오르는 것이어서 이미 제품(전자기기)을 산 소비자의 경우 크게 반발할 우려가 있다. 법안 2건이 통과된지는 불과 5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는 데 다시 고치는 것이 법적 안정성을 저해한다는 비판도 있다.
④ 국제 추세는 낮은 세금이라는데?
가열형 전자담배는 유럽 등 해외에서 먼저 출시됐다. 글로벌 담배회사들은 유해성을 줄이면서 소비자의 기호를 충족하는 대규모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신제품도 계속 출시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궐련형 전자담배가 먼저 출시된 국가들은 일반 담배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했다. 유해성이 적다고 판단한 셈이다. 영국은 일반담배의 12% 수준의 낮은 세율을 적용한다. 네덜란드(16%), 덴마크(18%) 등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김광림 의원 측은 "담뱃세가 한 국가의 재정체계, 건강에 대한 국민적 관심 등에 따라 큰 편차를 보이는 만큼 세율의 국제적 형평성 논의가 단순 참고 이상이 될 수 없다"고 반박한다. 실제 담배 세율과 담배 가격은 국가마다 천차만별이기도 하다.
⑤ 담뱃세 올리면 누가 이익을 보나
정부 입장에서 흡연은 무조건 줄여야 하는 대상이고, 세금은 많이 걷히면 좋다. 담뱃세가 대표적인 서민 부담 세금이어서 증세 논의가 어려운데 국회, 그것도 야당에서 들고나온 만큼 부담도 적다. 특히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이행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상황이다. 기획재정부는 애초 전자담배로 보는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에서 국회에서 정하는 대로 따르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업계 입장에서 보면 궐련형 전자담배의 가격이 오를 경우 수요는 한풀 꺾일 가능성이 크다. 현재 유일한 제품인 아이코스를 출시한 필립모리스에 가장 큰 타격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선점효과를 워낙 크게 누린 상황이지만, 수요 자체가 타격을 받으면 점유율은 의미가 크지 않다.
조만간 궐련형 전자담배를 출시할 BAT도 다소 부담을 느끼고 있다. 전략상품인 만큼 전체 시장을 키울 필요가 있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반면 국내 기업인 KT&G는 상대적으로 느긋하다. 제품을 출시할지 결정도 하지 않은 상태여서 세금이 높아진다 해도 당장 손해날 일은 없는 상황이다.
외국 브랜드 담배업계 한 관계자는 "궐련형 전자담배에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유해성을 줄인 제품을 확산하면서 흡연율을 낮추려는 글로벌 담배시장 흐름을 역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