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소기업 상생 협력을 위해 만든 동반성장위원회(이하 동반위)가 내년부터 위원회 사무국 운영비를 확보하지 못할 처지에 놓였다.

2일 서울 구로구에 있는 동반성장위원회의 한 직원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을 위해 2010년 만들어진 동반성장위원회는 전경련이 "자금 지원 창구역할을 할 수 없다"고 밝히면서 내년부터 사무실 운영비를 확보하지 못할 상황에 놓였다.

그동안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를 창구로 삼아, 삼성·현대차·SK· LG·포스코 등 5개 대기업에서 매년 총 20억원을 받아왔지만 최근 전경련이 동반위에 "더는 자금 지원 창구 역할을 할 수 없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동반위 측은 급한 불을 끄기 위해 5개 대기업에 직접 운영비 지원을 요청하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일부에서는 대기업 감시자 역할을 하는 동반위가 그동안 대기업 돈으로 운영해온 관행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발등에 불 떨어진 동반위… 외면하는 정부

2일 동반위 고위관계자는 "5개 대기업과 내년도 운영비 지원을 논의하고 있으며 삼성·LG·포스코는 전경련을 거치지 않고 직접 2018년분 예산을 미리 지원했다"며 "현대차·SK와는 현재 협의하고 있지만, 이들이 판단에 따라 지원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당장 내년부터 운영비가 모자라는 상황"이라며 "2019년부터는 5개 대기업이 모두 지원 불가라는 입장을 전해왔다"고 말했다.

동반위는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12월 '대·중소기업 상생법'에 따라 설립된 민간 자율 기구다. 당시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정부가 동반위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동반위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권고하고, 대기업들이 얼마나 중소기업과 상생하는지를 지표화한 동반성장지수를 매년 발표한다. 동반위 사무국은 현재 상근 직원이 30여 명이다. 동반위 전체 예산(51억원) 중 약 40%인 20억원을 5개 대기업이 지원한다. 중소기업중앙회가 1억원을 지원하고, 산업부·중기청에서 30억원 규모의 위탁 사업을 받아 예산을 충당하고 있다.

설립 당시에는 정부가 동반위에 힘을 실어주면서 대기업들이 바짝 엎드렸다. 2011~2015년까지는 전경련 중소기업협력센터에서 매년 20억원씩 총 100억원을 냈다. 2016년 이후에는 전경련이 5개 대기업의 지원금을 모아 동반위에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동반위는 신규 재원 마련을 위해 최근 새 정부의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경제2분과)에 "앞으로 운영비 확보 길이 막혔다"며 "공정위의 불공정거래 과징금(연간 6000억원 안팎) 중 일부를 동반성장발전기금의 형태로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동반위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신설되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이 문제 해결에 관심을 가져주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기업 돈 받으면서 대기업 견제하겠다는 민간기구

하지만 경제계에서는 '동반위 무용론'도 적지 않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최근 2~3년간 동반위가 각종 현안에서 대기업에 쓴소리를 하는 경우를 못 봤다"고 말했다. 예컨대 중기중앙회 등은 생계형 적합업종 제도의 법제화를 주장하고 있지만, 동반위는 이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는 것. 매년 발표하는 동반성장지수도 처음에는 대기업에 대한 압박 수단이 됐지만 지금은 대부분 대기업이 '최우수' '우수' 평가를 받는다는 비판이다. 대기업들의 시선도 차갑다. 대기업의 한 고위 관계자는 "대기업을 견제한다면서 대기업에 손을 벌려온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며 "누가 봐도 모순인데 정작 정부는 몰랐던 모양"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정권 출범 때마다 '좋은 일을 시작하니 돈은 대기업이 내라'는 식으로 되풀이돼온 관행이 문제"라고 했다.

연세대 성태윤 교수는 "정부의 공권력과 관련된 공적 업무를 하는 조직은 투명하게 세금을 활용해야지 특정 기업에서 돈을 받으면 제대로 운영되기 어렵다"며 "아무리 의도가 좋았더라도 현재 형태의 재원 조달 구조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동반위 입지는 더욱 좁아질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가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 관행 개선'을 주요 업무로 하는 '을지로위원회'를 대통령 직속 기구로 두기로 했기 때문이다. 동반위와 설립 목적이 거의 똑같은 조직이 생기는 셈이다. 고려대 조명현 교수(경영학과)는 "새 정부가 동반위의 기능이 더는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한다면 다른 유사 기구와 통폐합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