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청년층(15~24세) 실업률이 4월 기준 11.2%로 지난해 12월 8.7%에 비해 2.5% 높아졌다고 밝혔다. 이 기간 OECD 회원국 중 청년층 실업률이 오른 나라는 오스트리아, 이스라엘, 독일, 일본, 한국 뿐이다. 한국은 청년층 실업률 상승폭이 가장 컸다. 최악의 취업난은 '호모 인턴스'라는 신(新)인류를 탄생시켰다. 우리 사회에서 인턴은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그림자같은 존재다. 정부가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한다며 갖가지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사각지대에 놓인 인턴들은 오늘도 우리 사회를 표류하고 있다. [편집자주]
한 서울 소재 4년제 대학교에 재학중인 취업준비생 A(여·23)씨는 올해 말 졸업을 앞두고 취업용 스펙을 쌓기 위해 10여개의 공기업 인턴에 지원했다. 모두 서류전형 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A씨는 같은 학과 B씨(여·23)가 한 지방 소재 공기업에서 약 2개월 동안 체험형 인턴으로 일하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B씨는 학사 관리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고, 학기 중에도 수업을 빠지고 해외 여행을 가던 동기다.
B씨가 간 공기업의 인턴 채용 정보는 공기업 홈페이지나 채용 관련 사이트에서 한번도 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A씨는 B씨에게 인턴 채용 공고를 어디서 봤냐고 물었고, B씨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아버지가 해당 공기업에 근무 중인데 지원해보라는 이야기를 듣고 지원서를 넣었다"며 "서류 정리나 문서 작업 등 간단한 서무 일만 빨리 하면 남는 시간에는 자기 공부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청년들이 좁아진 취업문을 통과하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인턴 생활을 반복하고 있지만, 공정하게 부여되지 않은 기회와 정규직 전환되지 않는 현실, 낮은 업무 만족도 등이 끊임없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 인턴에도 카스트제도 있다… "흙턴이라도 하는게 나아"
일반적으로 인턴은 사회 경험을 쌓는 기회를 주자는 취지로 기업 등이 운용한다. 1920년대 미국에서 의료계 인턴과 비슷한 수습 제도를 회계 등 일반 경영 분야에도 도입해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 의회 등 정치계에서 인턴십 제도를 도입해 수습 직원들을 채용했고, 일반 기업으로도 확대되면서 현재와 같은 인턴이 기업에 나타났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 들어 대우그룹, 이랜드, 두산그룹 등이 인턴을 뽑아 신입 사원을 채용하기 시작하며 확산됐다. 외환위기 시절 채용 시장에서 정규직 채용의 '전단계' 역할을 하면서 인턴이 하나의 취업 경로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현재 인턴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최상위에는 금턴이 있다. 금수저 출신만 갈 수 있어 붙여진 용어다. 소위 '백'이라고 부르는 인맥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비공개로 채용하는 공기업이나 대기업, 아는 사람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유명 법무법인, 국회의원실 인턴 등이 대표적인 금턴으로 꼽힌다. 금턴은 근무 강도가 약할 뿐만 아니라 근무 시간의 일부를 자기계발에 활용할 수 있어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는 '꿈의 인턴'으로 불린다.
금턴 아래에는 은턴이 있다. 지원 직종 업무를 경험할 수 있고 노동에 대한 보수도 적당히 주어지는 인턴을 뜻한다. 공개적으로 뽑는 일반 대기업 인턴들이 이에 속한다. 인턴 최하위 계층은 흙턴이다. 흙턴은 일반 정규직의 업무를 그대로 하면서 최저임금 수준에도 못미치는 수당을 받는 '열정페이' 인턴이나 딱히 배우는 것도 없이 회사의 허드렛일이나 문서 복사 등 단순 사무 업무를 하는 인턴을 말한다.
취업준비생들은 좁은 일자리 문을 뚫기 위해 흙턴 자리라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직장을 구할 때 이력서에 기재할 인턴 경력 하나가 소중하기 때문이다. 일부 대학에서는 인턴 경력을 졸업 필수조건으로 정해놓기도 했다. 취업준비생 남지연(23)씨는 "정규직 원서를 넣으면서 인턴 취업도 준비하지만, 불공평하게 느껴질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라면서 "그래도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기회만 주어지면 일할 생각" 이라고 말했다.
◆ 희망고문에 지친 청년들… "직무만족도 낮은 문제도"
어렵게 인턴 자리를 잡았어도 문제는 여전하다. 청년들은 인턴으로 일하면서 정규직 전환을 꿈꾸는 경우가 많다. 사회경험을 쌓도록 돕는다는 상당수 기업의 생각과 다르다. 문제는 이런 청년의 희망을 이용하는 기업이 상당수 있다는 점이다. 정규직 전환 가능성을 내비치며 열심히 일하라고 해놓고는 정작 정규직 전환 기회를 전혀 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지난 1일부터 8일까지 52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인턴 경험자 중 정규직으로 전환된 인턴은 5명 중 1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적지 않은 인원이 인턴으로 채용됐지만, 상당수 청년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희망고문'만 받다 인턴을 끝낸다. '티슈처럼 쓰고 버려진다'는 의미의 '티슈 인턴'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이런 일은 공공기관에서도 일어났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등은 정규직 채용과 연계된 '채용형 인턴'을 채용하고도 한 명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았다.
업무에 대한 만족도가 낮은 것도 청년들이 불만인 요소다. 인크루트의 '인턴 근무 만족도' 조사 결과 인턴 경험자들의 만족도는 100만 만점에 62.3점에 그쳤다. 인턴 근무에 대해 '약간 불만족했다'(29%), '매우 불만족했다'(18%)라고 답한 응답자들 중 24%는 '평균보다 낮은 인턴 급여'를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다. 또 '단순 업무만을 반복적으로 했기 때문'과 '인턴십 프로그램이 체계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답한 응답자도 각각 15%를 차지했다.
일부 응답자들은 "항상 무시 당했다",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받았다", "아파도 쉴 수 없었던 데다 몸 관리를 못한다고 욕을 먹었다", "정직원 전환을 미끼로 쓸 수 있는 만큼 부려놓고 일주일 전에 퇴사 통보받았다"라며 인턴 근무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교육과 경험이라는 인턴 본래 취지를 기업들이 따르도록 인식 개선을 해야 한다고 본다. 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은 "인턴은 안정적 일자리로 나아가는 교량이나 디딤돌 역할을 해야하는데 본래의 역할을 하지 못한 채 기업들이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는 수단으로 오남용 되고 있다"면서 "기업들이 인턴의 취지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턴 제도를 악용하는 기업에 대한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병훈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인턴을 둘러싼 문제점은 대부분 인턴을 교육생이 아닌 실제 직원처럼 생각하고 부당하게 대우하는 기업의 문제"라며 "정부 규제나 기업 자체의 통제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들 기업에 대해 소비자와 시민사회가 감시하고 사회적 규제를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