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해운업체 머스크는 매년 9월마다 컨테이너 18대 분량의 버터쿠키 14만개를 주문한다. 12월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세계 120개국에서 근무하는 직원들과 화주‧포워더(운송대행업체)‧조선소 등 각 거래처에 선물로 나눠주기 위해서다.

머스크가 주문한 버터쿠키는 덴마크 뇌레스니드(Nørre snede) 지역에 있는 켈젠(kelsen) 제과점에서 구워진다. 1933년 설립된 켈젠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덴마크 버터쿠키 업체다. 덴마크 버터쿠키는 부드러운 식감에 고소한 맛으로 남녀노소 모두에게 인기가 많다.

머스크는 버터쿠키 뿐 아니라 덴마크 대표 제품인 레고(lego) 블록도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머스크가 자랑하는 1만8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 모델인 ‘트리플E'는 레고 모델로 제작돼 인기를 끌고 있다. 덴마크 국적 선사인 머스크가 자국 기업인 켈젠, 레고와 손잡고 시너지효과를 내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머스크쿠키를 받은 사람들이 SNS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 쿠키보다 깡통이 더 인기…연말 분위기 완성 아이템

머스크는 켈젠 제과점에서 만든 버터쿠키 14만개를 싣고 덴마크 오르후스(Århus)항에서 출발해 세계 주요 항만을 다니기 시작한다. ‘머스크쿠키’는 한국, 중국, 프랑스, 러시아 등 세계 120개국 지점에 배달된다.

쿠키를 담은 상자에는 ‘버터쿠키(Butter Cookies)’라는 문구와 함께 ‘머스크라인을 위해 특별히 제작됐다’는 설명이 적혀 있다. 덴마크 버터쿠키 자체는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제품이지만, 머스크쿠키는 구매할 수 없기 때문에 희소성이 있다. 세계 1위 컨테이너 선사인 머스크 로고가 들어가면서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다. 머스크는 ‘단순한 쿠키 그 이상(More than just a cookie)’이라고 말한다.

특히 밝은 하늘색 바탕에 흰 별로 구성된 로고 머스크블루(Maersk Blue)가 그려진 원통형 쿠키 깡통은 단연 인기다. 디자인이 깔끔하고 색감이 좋아 인테리어 용품이나 수납상자로도 재활용할 수 있다. 쿠키보다 깡통에 더 관심을 갖는 사람도 많다. 연말 선물로도 안성맞춤이다.

머스크쿠키통

해운업계에서 머스크쿠키는 연말 시즌을 상징하는 아이템이다. ‘덴마크에서 쿠키가 온 것을 보니 한 해가 다 갔나보다’라며 머스크쿠키로 연말을 실감하는 사람들도 있다. 관련업계에 근무하지 않더라도 버터쿠키를 선물로 받은 사람은 머스크가 어떤 회사인지 설명을 듣거나 알아보게 되면서 자연스러운 홍보도 이뤄진다.

이렇게 매년 연말 선물을 세계 각국에 대량으로 나눠주는 선사는 머스크가 유일하다. 다른 주요 선사들도 직원들이나 협력업체에 배지‧머그컵‧와인‧디지털액자 등을 선물로 주지만, 선박 명명식 등 일시적인 이벤트에 맞춰 제작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 1위 선사인 현대상선도 직원이나 협력사에 감사 인사를 전달하기 위해 선물을 주거나 파티를 개최하지만, 머스크처럼 회사를 상징할만한 선물을 대량으로 제작하지는 않는다.

머스크는 어느새 자사 상징이 된 버터쿠키를 이벤트 참여 선물 등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룹 차원에서 비용 절감을 위해 추진 중인 무인항공기(드론) 활용 실험에도 쿠키를 등장시켰다. 머스크는 지난 1월 덴마크 질란드 섬 인근에 정박한 대형 컨테이너선에 무게 1.17kg의 버터쿠키를 드론으로 전달하는 시험 운행에 성공했다. 머스크는 앞으로 선박 부품이나 의약품 등 긴급한 소형 화물을 나르는데 헬리콥터 대신 드론을 쓸 계획이다.

머스크 관계자는 “쿠키는 머스크그룹만의 특별한 유대감과 영향력을 나타내는 수단”이라며 “좋은 마케팅 방식이자 중요한 전통”이라고 했다.

머스크 컨테이너선 ‘트리플E’를 모델로 한 레고 제품

◆ 1974년부터 레고와 협업…주력 모델 ‘트리플E’는 단종 이후 가격이 두 배로

레고 마니아(mania) 사이에서도 머스크는 낯선 이름이 아니다. 머스크는 1974년부터 레고와 손잡고 컨테이너 박스를 운반하는 각종 운송수단을 블록으로 만들었다. 지금까지 트럭 3종, 선박 4종, 기차 1종이 출시됐다.

특히 머스크가 2011년 대우조선해양에 20척을 한 번에 발주해 화제를 모은 초대형 컨테이너선 ‘트리플E’ 레고 모델이 가장 인기다. 머스크는 트리플E로 1만8000TEU 이상 초대형 컨테이너선 선박 시대를 열면서 해운업계 판도를 뒤흔들었다. 트리플E는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 에너지 효율(Energy efficient), 친환경(Environmentally improved)을 의미한다.

2014년 1월 출시된 레고 트리플E는 모델 10241번으로 제작됐다. 블록 1518개로 구성돼 있는데, 프로펠러 스크류 블레이드, 트윈 8기통 엔진 등이 섬세하게 표현돼 있다. 컨테이너 블록은 착탈식이다. 방향타를 조정할 수 있고, 구명정도 따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등 세부 묘사에 많은 신경을 썼다.

크기는 높이 21cm, 길이 65cm, 너비 3cm로 레고 모델 중 큰 편에 속하기 때문에 장식용으로 인기가 있다. 모델 번호가 1만대인 레고 제품은 투자 수단으로도 이용된다. 특히 트리플E 모델은 단종(Retired Product) 되면서 값어치가 더 올라갔다. 출시 당시 가격은 150달러(17만원) 수준이었지만, 현재 아마존에서 배송비를 제외하고도 290달러에 판매되고 있다.

머스크는 레고 컨테이너선이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주력 컨테이너선인 트리플E를 홍보하는 효과를 톡톡히 봤다. 트리플E를 건조한 대우조선해양도 덩달아 기술력을 세계적으로 일반인에게 알릴 기회를 얻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주로 기업들의 화물을 실어 나르는 선사들은 일반 대중에게 알려질 기회가 거의 없다”며 “사람들에게 친근한 버터쿠키나 레고 블록 등을 활용한 머스크의 마케팅은 덴마크 기업끼리의 윈윈 사례여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