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1999년 금융감독원 내에 보험사기 전담조직 설치를 시작으로, 약 18년간 적극적으로 보험사기와의 전쟁을 펼쳐왔다. 지난해 9월 보험사기방지특별법이 시행되면서 보험사기가 범죄라는 인식이 확대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기업·조직화되는 보험사기 근절을 위해선 개선돼야 할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다.

선진국들은 형법을 통해 보험사기에 대한 강력한 처벌조항을 담고 있다. 독일은 보험사기의 예비행위에 해당하는 행위는 처벌하는 규정, 즉 보험남용죄를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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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형법 265조에 보면 “자기 또는 제3자에게 보험금 지급을 위해 보험에 가입된 물건을 훼손, 파괴, 그 사용을 침해·제거하거나 또는 타인에게 교부하는 행위”를 규정해, 사기행위의 사전단계에 있는 보험의 ‘남용’을 제한하고 있다. 오스트리아도 형법 151조에 보험남용죄를, 중국은 형법 198조에 보험사기 유형을 열거하고 보험사기 심각성을 고려해 차등처벌하는 방안을 규정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은 보험사기행위를 ‘보험사고의 발생, 원인 또는 내용에 관하여 보험자를 기망하여 보험금을 청구하는 행위’라고 단순하게 정의하고 있다.

보험사기 양형도 일반 사기에 비해 약한 편이다. 일반사기는 그 피해자가 고스란히 드러나지만, 보험사기는 살인 등 강력범죄가 아닌 이상 피해자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보험사나 보험공단이 피해자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보험사기 피해는 결국 다른 보험가입자의 보험료를 부당하게 올리는 피해로 이어진다.

지난 2012년 6월 발생한 보험사기 사례를 보자. 보험사기범 A씨는 오토바이로 대구 북구 산격동 근처에서 아파트단지 출구로 나오는 B씨의 차량을 고의로 접촉해 B씨의 보험사에서 인적·물적 피해 보상으로 270만원의 보험금을 수령했다. 이 탓에 B씨는 150만원의 보험료가 할증됐다. 하지만 작년 11월 A씨가 고의사고 유발 및 보험금 편취 혐의가 인정돼 징역 8개월을 선고받으면서 보험사가 A씨에 대해 민사소송을 통해 잘못 나간 보험금을 환수, B씨에게 지급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 2006년 6월부터 올 3월까지 자동차 보험사기로 부당하게 보험료가 할증돼 26억6000만원을 계약자 6254명에게 환급했다. 1인당 환급보험료는 평균 42만원 수준이다. 황지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원은 “보험사기에 대한 양형이 자칫 피해자 없는 범죄로 생각돼 양형이 관대해지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보험사기 법적 근거 마련됐지만…비용·인력 탓 심평원과 마찰

또 특별법을 통해 수사기관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입원적정성 심사를 의뢰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지만, 심평원이 비용 및 인력 문제를 이유로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 탓에 보험사기를 입증할 증거 수집이 느려져 제대로 수사가 되지 않는 결과가 초래된다.

특별법 제7조 1항은 “수사기관은 보험사기행위 수사를 위해 보험계약자등의 입원적정성 심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그 심사를 의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2항에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제1항에 따른 의뢰를 받은 경우 보험계약자등의 입원적정성을 심사하여 그 결과를 수사기관에 통보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심평원은 보험사기를 위한 입원적정성 심사를 하는 것이 보험사의 업무인데, 이를 국민 세금으로 하는 것이 문제가 있다며 특별법 개정을 통해 해당 비용을 보험사가 부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을 특별법에 넣는 것 자체가 복잡하고 까다로워 보험사기 수사가 원활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타인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이 서면 동의만 있으면 가능하다는 점도 문제다. 인력사무소장 C씨는 장애인 D씨를 피보험자로 교통재해사망특약을 최고 한도로 설정한 두 개의 보험에 가입했다. C씨가 보험료를 대납하고 있었던 상황. 이후 E씨와 공모해 농장 앞 공터에서 1톤 트럭을 후진, 바닥에 누워있던 장애인 D씨를 치었다. D씨는 바로 사망했고 단순 사고사로 처리돼 화장했다. D씨의 사망보험금 8억원은 보험금 수령자였던 C씨에게 지급됐다.

이처럼 타인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은 계약자와 피보험자가 일치하지 않는다. 상법 731조에 따라 타인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은 보험계약 체결시 타인의 서면 동의만 있으면 계약자가 가입할 수 있다.

피보험자의 생사와 무관한 사람이 서면동의만 있으면 타인의 생명보험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하는 현행법이 보험금을 노린 살인을 막는 데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험금을 노린 살인사건 가운데 수익자 변경 내용을 모르고 동의한 경우가 많아서다. 이 때문에 보험계약을 체결하고 수익자를 변경할 때 보험자가 실제로 동의했는지 확인을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송윤아 보험연구원 연구원은 “피보험이익의 존재를 보험계약의 성립 및 존속의 필요조건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가족관계 또는 재산적 이익의 관계에 있지 않은 자도 피보험자의 서면동의가 있을 경우 타인의 사망을 담보로 하는 보험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망사고 조사 강화·보험사기전담조직 설치해야

보험금을 노린 살인을 막기 위해 사망사고 조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달 말 100억원의 보험금을 노린 캄보디아 만삭 아내 살해사건이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로 환송된 것을 보면, 법원에서 보험금을 노린 살인이라고 판결하기에 정황 증거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때문에 부검을 강화하고 보험가입 정보를 범죄수사 목적으로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우리나라 부검률은 전체 사망자 대비 2.0%에 불과한 수준이다. 보험을 노린 살인사건은 완벽범죄를 위해 일반 교통사고나 재해사고로 위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 탓에 살인으로 처리되지 않고 일반 사망으로 처리돼 시신을 화장, 증거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보험사기 방지를 위한 조직과 조사권도 문제다. 보험사기가 기업형 범죄로 확대되는 만큼 보험범죄에 전문 지식과 경험을 가진 수사관으로 구성된 보험사기 전담수사기구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과 영국 등은 보험사기조사국을 설치해 보험사기 수사를 전담하고 있다. 나아가 금융당국과 보험사에도 조사권을 부여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그동안 검찰청과 경찰청, 금융당국이 보험사기 수사를 위해 매우 열심히 일해 왔고 소기의 성과도 이뤘다"며 "하지만 보험전담조직이 없고 정부합동 보험사기대책반이 상설기구가 아니라 임시조직이다보니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