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규제연구센터 소장·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지난 5월 하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표단이 한국을 방문해 지난 1년여 동안 우리나라의 규제 정책에 대한 평가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우리나라 정부가 추진해야 할 핵심 정책 과제들을 제시했는데, 그 첫째가 지난 정부에서 추진돼온 규제 개혁의 모멘텀(동력)을 새 정부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성장 기조가 굳어지고 경제 활력이 눈에 띄게 줄어든 한국에서 경제의 역동성을 되살리기 위한 제1의 정책 수단은 규제 개혁인데, 정권이 교체되면서 규제 개혁의 동력이 상실될까 우려했기 때문으로 이해됩니다.

우리나라에는 규제 개혁에 대해서 크게 세 가지 오해가 있습니다. 규제 개혁을 규제 완화 또는 탈규제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하나입니다. 또 하나는 규제 개혁이 주로 대기업에 대한 것이라는 시각입니다. 이와 함께 생명과 안전을 다루는 규제는 강화해야지 완화해서는 안 되며, 규제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는 오해도 있습니다. 뒤에 언급한 두 오해는 규제 개혁을 규제 완화와 동일시하는 첫째 오해와 바로 연결돼 있습니다.

"규제 개혁, 환경 변화를 반영해 지속적으로 규제를 합리화하는 과정"

규제 개혁이 규제 완화를 의미한다는 오해를 풀기 위해서는 규제의 정당성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규제는 사회 구성원의 특정 행위를 통제하거나 유도하거나 관리해서 어떤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도입된 일체의 규칙들을 말합니다. 규제를 통해 달성하려는 목적으로는 독과점이나 정보 비대칭성으로 인한 시장 실패 교정, 금융시스템 안정, 기후변화 대응 등이 있습니다. 규제가 도입되면 규제받는 대상이 규제를 지키는 과정에서 금전적·시간적 비용이 발생합니다. 규제가 기업에 적용된다면 인건비나 교육훈련비가 추가로 발생하고, 원재료를 교체하거나 생산 방식을 바꿔야 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규제가 사회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으려면 규제 목적이 정당해야 함은 물론 피규제자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규제 내용이 설계돼야 합니다.

사회·경제 환경이 변하면 규제의 목적이 더는 정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는 목적은 정당하더라도 내용이 비효율적이거나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도입 당시에는 합리적인 규제였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비합리적인 규제로 바뀔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그 타당성을 따져봐야 합니다. 그래서 필요하면 해당 규제를 수정·폐지하거나 다른 수단으로 대체해 규제의 정당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노력을 우리는 규제 개혁이라고 부릅니다. 즉 규제 개혁은 일방적으로 규제 완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의 행동을 과도하게 제약하거나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환경 변화를 반영해 지속적으로 규제를 합리화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규제 개혁, 대기업 전유물 아냐… 기업 규모별로 강도 달라야"

규제 개혁이 대부분 대기업을 위한 것이라는 둘째 오해는 다음 두 가지 사실을 통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나라 전체 사업체에서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0.1%도 안 된다는 점입니다. 10인 이상 사업체로 범위를 좁혀도 그 비중은 1%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전부 중소기업입니다. 또 공정거래법, 하도급법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규제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에도 유사하게 적용된다는 점입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어떤 규제 개혁이 기업에 이로운 것이라면 대기업보다는 오히려 중소기업에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갈 것입니다.

그런데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규제를 준수할 수 있는 능력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회사별로 직원 다섯 명씩 규제 관련 교육에 참여해야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경우 대기업은 직원 다섯 명이 빠지더라도 생산에 큰 차질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다섯 명이 빠지면 생산에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같은 강도의 규제가 적용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를 감안해 현재는 규제의 형평성을 유지한다는 차원에서 기업 규모별로 규제 강도를 다르게 하는 방안이 규제 개혁의 중요한 과제로 부각돼 있습니다.

"생명·안전 위한 규제, 반드시 필요하지만 합리화해야"

생명과 안전을 다루는 규제는 당연히 강화돼야 한다는 생각을 오해라고 말하기엔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지난 1960년대 이후 30~40년간 온 국민이 경제개발, 수출 증대에 집중하면서 생명과 안전에 상대적으로 소홀해 왔고 지금도 생명 경시, 안전 불감증으로 인한 사고가 끊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난 정부에서 세월호 사고, 경주 마우나리조트 사고, 구미 불산 유출 사고를 겪으면서 우리나라에서 생명, 안전 규제는 규제 개혁 대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성역이 된 듯합니다.

정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을 책임질 의무가 있으며, 필요하면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그러나 규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해서 규제의 합리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생명, 안전 규제가 합리적이려면 그로 인해 실제로 국민의 생명이 보호되고 안전이 증진돼야 합니다. 생명과 안전을 도모한다는 이유로 국민에게 너무 큰 부담을 줘서는 안 됩니다. 일례로 2015년 우리나라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10만 명당 9.1명입니다.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줄일 목적으로 자동차 뒷좌석 안전벨트 착용을 의무화하는 것은 합리적이지만 교통사고 사망자를 줄이자고 차량운행 2부제를 실시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최근 전기용품뿐만 아니라 옷이나 신발, 타올과 같이 사람 피부에 닿는 모든 생활용품은 정부의 KC(국가통합인증마크) 인증을 받도록 의무화하는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이 사회적으로 논란거리가 된 바 있습니다. 다양한 품목을 소량 거래하는 의류제조업자, 의류판매업자의 경우에는 의무 규정으로 인해 떠안아야 할 경제적 부담이 소비자가 얻게 될 안전상 편익보다 너무 크다는 문제가 제기된 것입니다. 소비자를 대신해서 다양한 제품을 해외에서 소량 구입하는 구매대행업자에게 들여오는 제품마다 안전인증을 받으라는 요구 또한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더구나 생명, 안전 관련 사고가 발생하면 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국회나 정부는 사고 원인이나 대응 방안의 실효성, 국민, 기업이 부담해야 할 비용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단지 비슷한 사고의 재발을 막는다는 목적으로 불필요하게 강력한 규제를 도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지적이 현실적 근거를 지닐수록 생명, 안전 규제의 타당성을 분석하고 규제를 합리화해야 할 필요성이 그만큼 커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생명과 안전의 가치가 지금보다 훨씬 더 강조돼야 하겠지만, 이런 사실이 비합리적인 규제 도입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