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문을 열어보니 앞쪽 휀더 부분에 우산이 들어가 있다. 우산 꼭지 부분을 누르면 딸깍하고 튀어나온다. 롤스로이스만의 특징이다.

"이거 신기하네요. 이 우산 얼마죠?"

"검은색 우산이 120만원부터 시작합니다. 색상을 바꾸거나, 로고나 문양을 넣으면 더 비싸져요."

시승 시작 전부터 사람 기를 죽인다. 비싼 차라는 것은 알았으나 사은품 수준의 평범한 우산 하나가 120만원이라니.

롤스로이스는 직접 운전할 기회는 물론, 길에서 보기도 쉽지 않은 차다. 최소 4억~5억원대부터 시작하는 가격에다 유류비 및 소모품 교체 등 유지비도 만만치 않다. 여기에 차량 색상과 내장재 등을 주문 제작(비스포크, bespoke)하면 기본 가격에 1억~2억원이 추가된다. 일반인은 범접하기 어렵지만 한국에서도 롤스로이스 판매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올해 들어 매달 평균 10대씩 판매되고 있다.

롤스로이스 던. 코치도어 방식으로 열리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마법의 양탄자, 도로 위의 요트라고 불리는 롤스로이스의 진면목을 느끼기 위해 서울 강남에서 인천 영종도까지 왕복 130km를 운전해봤다. 시승에 사용된 차는 롤스로이스 ‘던’이다. 롤스로이스 대표 모델인 고스트의 스포츠쿠페형 차량으로 소프트탑이 장착돼 있다. 가격은 4억원대 중반부터 시작되고 시승에 사용된 차량은 일부 옵션이 추가돼 5억원대다.

◆ 가장 럭셔리한 컨버터블, 4인 탑승 부족함 없어

롤스로이스 던이 어떤 차인지부터 살펴보자. 최고속도는 시속 250km,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하는 데 5초가 걸린다. 웬만한 스포츠카 뺨치는 스피드다. 차량 무게는 2560kg. 이 차의 공인연비는 리터당 6km 안팎. 차량 무게와 엔진 출력을 감안하면 의외로 연비가 좋다. 다른 롤스로이스 모델과 마찬가지로, 던도 6.6리터 트윈 터보 V12 엔진이 장착됐다.

롤스로이스 던은 세계에서 가장 럭셔리한 컨버터블 차량으로 꼽힌다. 롤스로이스 던은 컨버터블의 약점인 뒷좌석 공간의 부족함을 극복하고 성인 4명이 편안하게 탑승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 긴 보닛, 짧은 프론트 오버행, 긴 리어 오버행, 높은 숄더 라인 등 롤스로이스 특유의 디자인 원칙을 그대로 계승했다.

롤스로이스 던 앞모습. 시동을 끄면 보닛 위에 있던 환희의 여신상이 안으로 들어간다.

던이 고루한 영국 신사 이미지의 롤스로이스를 보다 젊게 만든 모델로 꼽히는 것은 이런 특징 덕분이다. 롤스로이스에 따르면 다른 모델의 평균 고객 연령이 50대라면 던의 경우에는 40대 중반이 가장 많이 찾는다고 한다.

뒷좌석은 생각보다 넓었다. 2도어인 쿠페들은 대부분 뒷좌석이 좁지만 던은 좁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앞좌석을 통해 타고 내려야 하기 때문에 불편한 것은 어쩔수 없지만, 일단 탑승한 상태에서는 부족함이 없다.

◆ 계기판·대시보드 등 클래식한 느낌 살려

차 문부터 영국 전통 혈통임을 강조한다. 자동차 문은 거꾸로 열렸다. 전통 마차를 모티브로 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2도어지만 롤스로이스의 특징 중 하나인 코치도어 적용으로 뒷좌석의 승객도 편안하게 탑승할 수 있다.

차 문을 완전히 열고 운전석에 앉으면 차 문손잡이가 닿지 않는다. 대시보드 왼쪽 창가 부근에 'Door'라는 버튼을 누르니 차 문이 저절로 닫혔다.

시트에 앉으면 계기판과 대시보드의 화려함에 놀라게 된다. 계기판과 송풍구 디자인은 롤스로이스 특유의 아날로그 감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속도계 바늘은 시계바늘을 연상시키고, 계기판의 전체적인 디자인도 매우 클래식한 모습이다.

롤스로이스 던 내부. 왼쪽 중간 반원 모양 위의 버튼을 누르면 우산이 튀어나온다.

스티어링 휠은 직경이 크고 림(rim)이 얇다. 클래식 자동차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다. 나무로 둘러진 대쉬보드, 의자부터 문 안쪽까지 스칸디나비아 산의 소가죽을 사용했다. 이 차 한대를 만들기 위해 소 18마리가 희생된다고 한다. 가죽 장인이 공들여서 만든다고 하는데, 막상 만져보면 고급 승용차에 사용된 가죽보다 좋아보이지만, 그렇다고 아주 특별한 느낌은 아니다.

◆ 젊은 감각은 아니다...그래도 운전하는 맛은 살아 있다

2도어 쿠페이긴 하지만 주행 감각이 스포티하거나 젊지는 않다. 가속페달을 밟자마자 뛰쳐나가는 수입 고성능 차량과는 거리가 멀다. 또 대형차인 만큼 스포츠카처럼 기민한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운전을 하면 할수록 롤스로이스만의 안락함과 정숙함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면서도 달리는 주행감은 부족함이 없다. 스티어링 휠을 꺾으면 원하는 만큼 정확하게 움직인다.

소프트 탑을 닫는 모습.

코너링 성능도 인상적이다. 서스펜션(현가장치)이 부드럽다 못해 둥둥 뜨는 느낌이지만,
급코너에서는 롤링(차가 좌우로 쏠리는 현상)이 거의 없이 안정적으로 돌아간다.

소프트 탑을 닫고 주행하면 이 차가 컨버터블이라는 생각이 잊힐 정도로 조용하다. 시속 100km 넘게 주행해도 풍절음이 크지 않다.

차를 타보면 이 차가 왜 비싼지 알 수 있다. 운전과는 전혀 상관없는 부분에 과도하게 신경 쓴 부분이 많다. 예컨대 롤스로이스 차량은 주행 중에도 바퀴에 붙어 있는 롤스로이스 로고 'RR'을 볼 수 있게 고안됐다. 옆에서 봐도 롤스로이스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게 한 것이다. 또 롤스로이스는 시동을 켜면 보닛 끝에 숨겨져 있던 ‘환희의 여신상’이 튀어나온다. 이 여신상 가격은 최소 450만원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120만원 상당의 롤스로이스 우산.

럭셔리카 끝판왕답게 운전중 타인의 시선은 덤이다. 육중한 차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마어마한 존재감은 자동차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한 번쯤 뒤돌아보게 만든다. 롤스로이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질주하다 보면 주변 차량이 홍해처럼 갈라지는 특이한 경험도 할 수 있다.

다만 기자 입장에서는 타인의 시선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일본 사무라이 영화에 서양인이 나온 것처럼 아무리 내차처럼 운전하려 해도 운전자와 차가 겉도는 느낌이다. 영국에서 기사 작위라도 받게 된다면 롤스로이스를 내 차처럼 몰아볼 자신감이 생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