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은 기원전 1000년 전부터 아궁이 형태의 온돌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만해도 주로 음식을 조리하는 데 활용했지만, 기원 후 1100년대부터는 방바닥을 데우는 데도 온돌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온돌은 바닥을 데워 나오는 복사열을 이용한 난방 시스템이다. 1900년대 초부터는 영국, 유럽, 일본 등에서도 온돌 문화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공기 자체를 데우는 에어컨디셔닝 시스템보다 바닥을 데우는 온돌 시스템의 에너지 효율이 더 좋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 고유의 전통 주거(住居) 양식 발전을 한국이 주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온돌 자재 기업은 핀란드의 우포너(Uponor)다. 이 회사에 따르면 온돌 플라스틱 배관 시장만 2015년 기준 24억유로(약 3조1000억원)에 달한다. 각종 자재와 시스템 엔지니어링 분야까지 포함하면 시장 규모는 더 커진다.

지난 9일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전통문화의 현재를 짚어보고 과학기술 융합을 통해 전통문화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과학기술·전통문화융합연구 포럼’이 열렸다. 전통문화와 과학기술 융합을 시도하는 각 분야 전문가들은 “한국이 전통문화의 부가가치를 높여 세계 시장을 주도해야 하는 데 그렇지 못했다”면서 “과학기술을 통해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 건축물 자재 독성 제거하는 데 탁월한 온돌...공기 제어 연구 결합해야

김광우 서울대 교수 연구팀이 에너지 효율과 밸런스를 제고하기 위해 연구중인 온돌 복사냉난방 시스템.

온돌이 실내 공기질을 개선하는 이른바 ‘베이크아웃(bake out)’에도 효과가 탁월하다는 속속 나오면서 다시 한번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베이크아웃이란 새로 지은 건축물이나 개·보수 작업을 마친 건물 등의 실내 공기온도를 높여 건축자재나 마감재료에서 나오는 포름알데히드와 같은 유해물질을 제거하는 방법이다.

김광우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온돌의 복사열이 공기만 데우는 게 아니라 건축 자재들의 온도도 높이면서 독성 물질이 빠르게 배출되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온돌의 우수성이 알려지면서 온돌 기술도 고도화하고 있다. 플라스틱 배관을 바닥 전체에 설치하고 온수를 공급해 방을 데우는 온수 순환 온돌이 나온 것이 1960년이다. 최근에는 각 방의 온돌 온도를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개발됐고 난방뿐만 아니라 복사 냉방(냉수 순환 방식) 시스템까지 개발돼 항공기 격납고나 스포츠 경기장, 병원 등에서 쓰이고 있다.

김 교수는 “에어컨디셔닝 시스템보다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복사냉난방 시스템인 온돌”이라면서 “이 시장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정밀한 컨트롤과 에너지를 적게 쓰는 열원 개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따뜻하거나 차가운 공기를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과 미세먼지를 걸러내는 기술, 습도 조절 기술 등을 온돌에 접목하면 3조원 이상으로 추산되는 세계 온돌 시장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장독대는 김치냉장고로, 가마솥은 전기 압력솥으로 발전했는데...소줏고리는 소리도 없이 사라져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 중에서 세계 시장에서 저평가되고 있는 또다른 분야는 증류주다. 우리 전통 증류주인 소주는 해외에서도 인기가 많다. 브랜디나 꼬냑, 고량주 등 해외 유명 증류주에 비해 도수가 높지 않은데다 맛이 깔끔하기 때문이다.

증류주란 양조주보다 순도 높은 주정을 얻기 위해 1차 발효된 양조주를 다시 증류시켜 알코올 도수를 높인 술이다. 양조주를 서서히 가열하면 끓는점이 낮은 알코올이 먼저 증발하는데, 이 증발하는 기체를 모아서 냉각시키면 다시 고농도의 알코올 액체를 얻어낼 수 있다. 증류는 알코올과 물의 끓는점의 차이를 이용하여 고농도 알코올을 얻는 주조법이다.

21세기 들어 세계 각국에서 증류주를 명품화해 시장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한국 전통소주는 이 대열에서 밀려나 있다. 위스키, 고량주, 럼, 데킬라, 보드카 등 각 증류주는 자신만의 증류기를 내세우며 문화 마케팅을 하고 있다.

증류주인 꼬냑이 만들어지는 전통 증류기. 세계 각국은 전통 증류기를 이용해 문화상품으로 증류주를 내세우고 있다.

한국에서는 증류주가 고려 후기 원나라(몽고)로부터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개성이나 안동, 제주 지역에서 주로 증류주를 만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 전통 증류주인 소주를 제조하는 고유의 증류기도 없는 상황이다.

김재호 한국식품연구원 우리술연구팀 박사는 “한국 고유의 증류 방식인 ‘소줏고리’라는 게 있었지만 일제 강점기 문화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한국 고유의 증류식 소주 제조를 단속하면서 한국만의 증류식 소주 제조 기술이 발전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식품연구원은 한국 전통 소줏고리의 증류에너지 측정, 재질 및 증류 적합성 평가 등을 거쳐 소줏고리의 과학적 원리를 규명하고 증류기 내부 열공급 조절이 어려운 소줏고리의 단점을 극복한 새 증류기를 개발 중이다.

한국 고유 전통 소줏고리.

김재호 박사는 “땅에 장독대를 묻어 김치를 숙성시켰던 원리에서 김치냉장고가, 가마솥의 원리를 이용해 전기밥솥이 개발된 것처럼 소줏고리를 과학적으로 해석해 우리 고유의 증류기를 개발, 전통주인 소주의 세계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