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전문지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최근 경영데이터 분석기관 에퀼러(Equilar)의 '2016년 CEO 연봉 톱 200' 보고서에서 미국 하이테크 기업 CEO(최고경영자)들만 따로 뽑아 연봉 상위 30명을 선정했다. 하이테크는 모바일, 네트워크, 컴퓨터 등 IT(정보기술)를 묶는 개념이다.
그 결과 연봉 상위 5명 중 3명이 여성 CEO였다. 오라클의 공동 CEO 사프라 캐츠가 지난해 4090만달러(459억원)를 벌어 2위였고, 휴렛팩커드(HP)의 멕 휘트먼 CEO가 3290만달러(368억원)로 4위, IBM 버지니아 로메티 CEO가 3230만달러(362억원)로 5위에 이름을 올렸다. 같은 순위에서 머리사 메이어 야후 여성 CEO는 7위를 차지했다. 1위는 4110만달러(460억원)를 받은 남성 마크 허드 오라클 CEO였다.
업계에서는 "테크놀로지 업계에서 유리천장이 깨지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실제 실적에 비해 과대평가됐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함께 나오고 있다.
◇여성 CEO 전성시대… 대통령직 인수위원 발탁, 차기 대통령 후보로도 거론
지난해 여성 CEO 연봉 1위를 차지한 캐츠 오라클 CEO는 이스라엘 태생 미국인이다. 그는 6세 때 미국으로 건너와 와튼스쿨, 하버드 로스쿨 등을 졸업했다. 1999년 오라클에 입사한 지 불과 2년 만에 이사회 일원이 됐고 2011년에는 최고재무책임자(CFO)로 발탁됐다. 2005년 103억달러(11조5000억원)에 경쟁 소프트웨어 업체 피플소프트 인수를 추진하는 등 과감한 업무 추진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2014년 오라클 창업자 래리 엘리슨의 뒤를 이어 CEO로 고속 승진했다. 경영 능력을 인정받은 덕분에 그는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인수위원회에 위원으로도 발탁됐다. 휘트먼과 로메티, 메이어 등도 캐츠처럼 명문대를 졸업해 굵직굵직한 IT 기업에서 경력을 쌓은 뒤 초고속으로 CEO로 승진한 인물들이다.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COO(최고운영책임자)는 연봉 순위에 들지는 않았지만 지난해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 중 7위에 이름을 올렸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등 미국 언론은 3~4년 전부터 그를 '미래의 유력한 여성 대통령 후보'로 거론하고 있다. 1995년부터 2년간 매킨지에서 경영 컨설턴트로 일하며 경력을 쌓은 샌드버그는 1996~2001년 미국 재무부에서 일했다. 이후 구글 부사장을 거쳐 2008년 페이스북으로 스카우트됐다. 2012년에는 페이스북 최초 여성 이사회 일원이 됐다. 그는 여성들의 사회 참여를 독려하고 각종 서적을 발간하며 사회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해 말 여성 인권 증진과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 1억3만달러어치(1120억원) 페이스북 주식을 자선기금으로 기부하기도 했다. 자신의 자서전 이름을 따서 여성 인권 단체 '린 인(Lean In)'도 만들었다.
여전히 전체 평균 연봉은 여성이 남성보다 낮지만 여성 CEO 연봉이 남성만큼 높은 이유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기업에서 일하는 여성 중 극소수만 CEO에 오를 수 있다"며 "따라서 이들은 대부분 능력이 출중한 수퍼스타급 CEO일 경우가 많다"고 보도했다. 남성은 수퍼스타급 인재가 아니라도 CEO에 오를 수 있지만 여성은 최고 중의 최고 인재만 CEO에 오를 수 있어 자연스레 연봉도 높게 책정이 된다는 뜻이다.
◇성과에 비해 지나친 연봉 지적도
일각에서는 일부 여성 CEO가 성과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연봉을 받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한다. 메이어 야후 CEO가 대표적이다. 2012년 그가 CEO에 취임한 뒤 야후는 스마트폰 시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구글에 완전히 밀렸다. 2014년 10억 건에 달하는 고객 정보 대량 유출 사건까지 발생했다. 결국 야후는 주력 부문인 인터넷 사업 부문을 미국 통신업체 버라이즌에 매각하는 신세가 됐다. 하지만 메이어 CEO는 매각 작업이 끝나는 이달 중 퇴직금 2300만달러(257억원)를 받고 회사를 떠날 예정이다. 미국 CNBC는 메이어가 주요 IT 기업 CEO 평가에서 100점 만점 중 32.8점으로 꼴찌였다고 1일 보도했다.
로메티 IBM CEO도 2012년 IBM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랐지만 눈에 띄는 성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 IBM은 최근 20분기 연속 매출 부진을 겪고 있고 올 1분기에도 지난해 동기 대비 2.3% 매출이 줄었다. 1993년 도입한 재택근무까지 폐지하고 회사 출퇴근이 불가능한 직원들에게는 "회사를 떠나라"고 통보했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도 최근 "IBM의 미래 가치를 잘못 평가했다"며 지분 21%를 매각했다.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은 "기업 내 성평등 문제가 불거지지 않도록 각 기업이 여성 CEO의 연봉을 일부러 높게 책정하려는 경향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