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은 대한민국 전체 기업의 99%, 고용 인원의 88%를 차지한다. 여기서 따온 ‘9988’은 중소기업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상징한다. 새 정부 출범 닷새 만에 맞은 중소기업주간(15일~19일), 중소기업계는 문재인 정부 출범을 계기로 우리 경제 패러다임을 중소기업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에 조선비즈는 ‘대기업-중소기업’으로 이분화된 산업 구조를 진단하고 중소기업이 나아갈 방향을 진단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경기 시흥 시화공단에 소재한 오성테크의 공장은 금형 제조공장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조용하다. 300kg에서 1t에 육박하는 대형 금형을 만드는 이 공장에선 금형을 옮기기 위해 여러 명이 함께 움직이는 모습도 보기 어렵다. 대신 낮은 탁자처럼 생긴 무인운반차(AGV, Automated Guided Vehicle)가 조용히 오간다. AGV는 차체에 수동 또는 자동으로 화물을 적재하고 지시된 장소까지 옮겨주는 차량으로, 물류 자동화의 핵심 장비다. 최근엔 자율주행 기술과 로봇 기술을 결합해 스스로 알아서 작업현장을 오가며 필요한 공구나 부품을 옮겨주는 스마트 기기로 진화하고 있다.

경기 시흥 시화공단에 소재한 오성테크 공장에서 AGV(가운데 흰색 장비)가 이동하고 있다. 오성테크는 AGV 도입으로 생산성이 20% 증가했다.

AGV는 공정 자동화의 필수 장비로 꼽히지만 비용이 비싸 중소기업이 도입하기엔 부담이 된다. 하지만 오성테크는 이 비용을 지급하고 AGV 도입을 추진했다. 공정 데이터까지 더해지면서 오성테크의 생산성은 크게 향상됐다.

현재 오성테크 공장에서 가동 중인 AGV는 1대. 바닥에 부설한 마그네틱 센서를 이용해 자기유도 방식으로 NC기기 7대와 조립라인, 사상라인, 검사라인까지 모든 공정 사이를 오간다. 공정 제어(PLC, Programmable Logic Controller) 모니터에 금형을 운반해야 할 시간과 위치를 입력하면 알아서 이동한다. AGV엔 레이저 센서가 달려 있어 1m 전방에 물체가 감지되면 스스로 멈추기 때문에 안전사고도 방지한다.

AGV 본체와 레인, 프로그램 구축에 든 비용은 7000만 원. 중소기업으로선 만만치 않은 금액이다. 하지만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현장 직원은 금형 운반으로 인한 피로도가 줄었다. 금형 오투입으로 인한 공정 손실도 줄어 납기일 단축 효과까지 얻었다. 오성테크는 AGV 도입 후 생산성이 20% 이상 상승했고, 불량률은 30% 줄었다.

김중일 오성테크 대표는 “작업자의 피로도와 공정 효율화를 위해 과감하게 AGV 도입을 결정했다”며 “생산성이 급증한 데다 직원들의 표정까지 밝아져 매우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그래픽=박길우

◆ 4차 산업혁명에 관심없는 中企.. “우리와 상관없는 이야기”

4차 산업혁명은 디지털화에 인공지능(AI)·빅데이터·사물인터넷 (IoT) 등의 기술을 융합해, 생산·관리·경영의 전반적인 변화가 예상되는 차세대 기술혁명을 말한다. 모든 사물과 사람을 서로 연결해 정보를 교류하는 ‘초연결성’과 수집된 데이터를 학습해 기계가 인간처럼 스스로 판단을 내리는 ‘초지능화’가 4차산업혁명의 핵심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은 4차 산업혁명으로 인간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WEF는 4차 산업혁명이 2025년까지 현실화할 것으로 내다보면서 인구의 10%가 인터넷과 연결된 의류를 착용하거나 3D프린터로 자동차를 생산하고 간 이식까지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고 있지만 국내 중소기업의 대응 수준은 상당히 미흡하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작년 말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2.3%가 “(4차 산업혁명을)전혀 모른다”고 답했다. “들어만 봤다”는 응답도 36.3%에 이르렀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인식이 낮기 때문에 대응 수준도 낮을 수밖에 없다. 중기 CEO 10명 중 9명은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지 못하는 이유(중복응답)로는 ‘제품 특성상 불필요하다’가 42.7%로 가장 많았다. 이어 ‘전문인력이 부족하다’(35.9%), ‘수요 창출이 불확실하다’(24.9%), ‘투자자금이 부족하다’(14.9%) 순이었다.

산업계에선 4차산업혁명에 대한 중소기업 인식 수준이 낮은 만큼 대응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부품 등 제조기술 대체로 타격이 우려되는 업종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스마트 공장 도입을 늘리기 위한 컨설팅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래픽=박길우

◆ 제조업 혁신, 스마트공장이 첫걸음

중소기업의 4차 산업혁명 대응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스마트공장화’를 첫걸음으로 제언한다.

스마트공장은 제품기획과 설계, 생산, 유통·판매에 이르는 전 과정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 생산시스템을 최적화해 공장의 효율을 극대화한 공장을 말한다. 많은 기업인이 스마트공장을 ‘공정 자동화’와 혼동하는데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가장 큰 차이는 AI 스스로가 데이터를 통해 학습하고, 공정 과정을 자체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학습의 기본이 되는 데이터는 각종 장비의 IoT 시스템을 통해 스스로 획득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AI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제조업에선 주로 개별 장비의 사용 데이터와 현 상태를 AI가 스스로 분석해 정비가 필요한 시점을 알려주는 방식이 가장 많이 상용화됐다. 좀 더 발전하면 AI가 공정 데이터를 분석해 현재 생산라인을 지나가고 있는 제품이 ‘불량’일 확률을 알아낼 수도 있다. 이런 예측 기능을 잘 활용하면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가 있다.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의 스마트 공장에 대한 관심 수준은 상당히 낮은 상황이다. 중소기업 중앙회가 올 초 실시한 스마트공장화 인식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 2곳 중 1곳은 “스마트공장화 계획이 없다”(전혀없다 22.2%, 관심있지만 구체적 계획 없다 32.8%)고 답했다.

스마트공장 도입 시 중소제조업의 우려사항으로 ‘투자자금 부담’ (83.3%)이 가장 많이 꼽혔고, ‘유지·보수 및 업그레이드 등 사후관리 부담’(57.4%)‘전문인력 확보 어려움’(35.7%) 순으로 나타났다. 스마트공장화 자금지원 확대와 유지보수 지원 등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올해 목표로 한 누적 5000개사의 스마트공장 달성 목표를 위해 예산 580억원(산업부 408억, 지역특화 22억, 중소기업청 150억)을 투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는 전체 중소제조업체 수(39만개) 대비 1.3%에 불과해 턱없이 부족하다고 중소기업계는 평가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달 20일 서울 여의도 중기중앙회관에서 가진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스마트공장 보급 지원 사업 예산 확대와 업종별 차별화된 스마트공장 도입 모델 마련을 요청했다.

정명화 한국전자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간담회에서 “정부 지원이 지속적으로 확대됨에도 스마트공장에 대한 중소기업 수요는 여전히 높은 수준으로 지원사업 예산이 크게 부족하다”며 “조기 소진된 지원사업 예산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주형환 장관은 “우리나라가 스마트공장을 통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세계 제1의 제조업 생산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2025년까지 스마트공장 3만개를 구축하도록 정부에서 적극 지원하겠다”고 답했다.

정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대부분의 기업들이 4차 산업혁명 준비가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와 기업의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며 “향후 관련 시장·산업의 변화 등 미래 변화 예측과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을 대비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경영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형 민관합동 스마트공장추진단 팀장은 “스마트공장화가 개도국의 인건비 우위를 상쇄시켜 중국 등 개도국 업체들과의 경쟁이 가능해질 것”이라며 “원격지 데이터센터로부터 솔루션 기능을 서비스 형태로 제공하는 클라우드형, 에너지 신기술을 적용한 클린에너지형 등 다양한 유형의 스마트공장 모델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인포그래픽스

◆ 선진국의 4차 산업혁명 대응 방안… 벤치마킹이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의 선두주자로는 독일이 꼽힌다. 독일은 2006년 시작한 ‘하이테크 전략 2020’을 바탕으로 2011년 ‘인더스트리(산업) 4.0’이라는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인더스트리 4.0을 통해 조성된 스마트공장은 하나의 제품을 대량생산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고객 지향형 맞춤형 생산을 하고 있다.

일본은 ‘일본 재흥전략 2016’을, 중국은 ‘중국제조 2025’를 국가전략으로 삼고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고 있다. 일본은 로봇 분야에서, 중국은 드론과 AI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코트라 중국시안무역관은 “중국제조 2025의 5대 중점 프로젝트 중 하나인 스마트 제조업은 운영비용, 상품 생산주기, 불량률이 각각 50%로 감소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5~10년 내 중국 스마트 설비 성장률은 연평균 25%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전망했다.

미국은 구글, 아마존, 애플 등 IT기업을 중심으로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한다. 항공기 엔진 업체였던 GE는 ‘산업인터넷’(Industrial Internet)을 바탕으로 한 솔루션 기업으로 진화했다. 자사 제품의 정보를 IoT를 통해 획득하고 이를 GE만의 제품진단 프로그램으로 분석해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우리나라는 선진국보다 한발 늦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새 정부의 4차 산업혁명 정책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설치해 미래성장동력을 확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전기차, 자율주행차, 신재생에너지, 인공지능 등 핵심기술 분야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했다.

조선일보 DB

4차 산업혁명을 바라보는 기업인의 태도와 생각도 달라져야 한다. IBK경제연구소는 지난 18일 발간한 ‘중소기업 CEO를 위한 내 손안의 4차산업혁명’ 보고서에서 '중소기업 CEO를 위한 4차 산업혁명 10계명'을 제시했다.

가장 먼저 ‘나와 상관없다’는 생각을 버리고 ‘CEO부터 공부하라’고 했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는 지난해 미래 리더십이 가져야 할 5가지 자질로 민첩성, 변혁성, 연결성, 증폭성, 보편성을 강조했다. IBK경제연구소는 “CEO부터 변해야 한다. 해외와 국내 벤치마킹 사례를 배우고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회사의 강점을 적극 활용’하고, ‘4차 산업혁명에 적합한 인재를 확보하라’고 했다. 기술의 발전과 융합으로 국경 및 업종·영역 경계가 허물어진 만큼 ‘플랫폼을 먼저 장악’하고,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사업을 전환하라’고 조언했다.

이와 함께 “중소기업은 성장과 혁신을 멈추면 죽는다는 사실을 명심하라”면서 ‘퍼스트무버(First Mover)가 되라’고 했다. 아울러 ‘모든 것을 4차 산업혁명에 맞게 변화’하고, ‘융·복합 추구’, ‘정부·관련 기관의 도움을 적극 활용’하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