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B하나은행이 장기적으로 영업지점을 대폭 줄이는 방안을 내부 검토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모바일 뱅킹이나 인터넷 뱅킹 등이 활성화되면서 고객이 은행 지점을 직접 찾는 일이 줄어드는 금융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것이다.

또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금융 산업이 급격히 변화하는 상황에서 기존의 방식을 유지하는 것이 은행 경영의 한계에 도달했다는 판단도 지점 축소 검토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서울 을지로 KEB하나은행 본사

◆ "지점 매년 50개씩 줄이자"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최근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은행 영업점 축소에 대한 구상을 구체적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당분간 매년 50여개씩 점포들을 줄여나가는 것이 김 회장의 구상"이라고 22일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런 고민은 김 회장이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금융산업의 구조적 변화에 대한 관심이 많기 때문"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전국에 300여개의 영업점만을 남겨 놓고 모든 금융서비스는 온라인과 모바일로 제공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지점을 대형화, 집중화, 복합화시켜 지점에서 종합적인 금융서비스가 가능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하나금융 관계자는 "지주 회장이 직접적으로 은행 점포에 대해 계획을 세우지는 않는다"며 "모든 결정은 함영주 은행장의 의사에 따라 결정되는 구조"라고 했다.

하지만 KEB하나은행은 이미 영업점 축소 과정에 돌입한 것으로 분석돼 김 회장의 장기적 계획이 현실화 될 가능성이 높다.

2015년 10월 옛 하나은행과 옛 외환은행이 통합해 출범한 KEB하나은행은 그 해 연말 기준 934개의 국내 점포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음해인 2016년에는 862개로 국내 점포가 72개(7.7%) 줄었다. 인접 점포를 중심으로 지점을 정리했다.

올해 들어서도 점포 축소는 계속되고 있다. KEB하나은행의 현재 점포는 828개로 지난해 말보다 34개가 줄었다. 5개월이 지나지 않아 30개가 넘는 점포가 사라진 것이다. 이런 추세로 보면 올해에도 50개 이상의 점포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관련 금융권 관계자는 "하나은행이 상반기 중에 40여개의 점포를 축소하거나 통합하기로 한 계획을 밝혀왔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그래픽 = 조숙빈 디자이너

◆ 은행 영업점 시대 끝나나…4~5년내 거리 점포 대부분 사라진다

KEB하나은행의 영업점 축소는 한국씨티은행이 100개의 영업점(약 80%)을 한 번에 없애기로 한 것과 함께 은행 영업점 시대의 종언으로 읽힌다. 4차 산업혁명과 신기술의 발달로 더 이상 1000여개에 가까운 영업점을 유지할 필요성이 없어진 은행들이 영업점을 축소, 통폐합하거나 거점 점포 형식으로 영업점 효율화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미 해외 분석기관들은 영업점 중심의 오프라인 은행 영업이 막바지에 달했음을 예고하는 분석이 많다.

세계적 컨설팅회사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오는 2020년에 모바일과 인터넷 등 비대면 채널을 이용해 거래를 하는 비중은 전체 은행 거래의 66%까지 상승한다. 100건의 은행 거래가 있다면 이 중 66건은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이용해 처리한다는 이야기다.

신탁업무나 예·적금 가입 등 은행이 판매나 자문을 해 주는 서비스도 전체의 40%는 모바일과 인터넷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BCG는 예측했다.

이런 변화에 발 빠르게 적응한 글로벌 은행들은 이미 글로벌 금융위기가 온 2008년부터 점포를 급속히 줄여왔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Bankscope의 분석에 따르면 2007년 6149개의 지점을 갖고 있던 Bank of America(BoA)는 2013년에 5151개로 점포를 줄였고 같은 기간 HSBC(홍콩상하이은행)도 1만개에서 6300개로 점포를 대폭 없앴다. 씨티그룹도 8247개에서 3729개로 점포를 축소했고 RBS(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는 4176개에서 3580개로 줄였다.

은행 점포의 효율적 운영을 위한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국내 은행들도 적극 추진하고 있는 클러스터링이다. 클러스터링은 적게는 5개에서 많게는 10여개의 점포를 묶어 영업을 하는 것이다. KB국민은행은 파트너십 그룹(PG·Partnership Group)을, 신한은행은 커뮤니티(Community)를, KEB하나은행은 콜래보(Collabo) 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금융권에선 점포 효율화와 통폐합은 거스를 수 없는 추세가 될 것으로 본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인터넷은행이 영업으로 번 총이익에 대한 인건비나 판매관리비의 비율을 40% 이하로 맞춰서 설계했는데 주요 은행들은 아직도 이 비율이 50~60%를 차지하고 있다"며 결국 인건비와 오프라인 영업점을 줄이고 비대면채널로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전략을 빠르게 하는 은행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했다.

오정근 건국대 교수(금융IT학과)는 "예전에는 위치가 좋은 곳의 네거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은행 점포의 상징이었지만 거의 대부분의 은행 업무를 모바일로 처리하는 지금은 고객들은 안 오는데 비싼 임대료를 내고 그렇게 점포를 운영해서는 감당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일부 현금이 필요한 고객들이 영업점을 찾지만 이들도 ATM(자동입출금기)을 사용하고 결제나 예금, 대출 거래도 모바일로 하기 때문에 은행 점포를 축소하는 작업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이뤄질 것"이라며 "앞으로 4~5년 내에 거리의 점포는 상당부분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