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던 ‘생계형 적합업종 법제화’와 관련해 유통업계 일각에서 우려의 시선이 나온다. 그동안 동반성장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합의 형태로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지정해 왔는데 아예 법제화하겠다고 밝히면서 사업 철수 강제 등의 조치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유통업계에서는 새 정부 들어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과 함께 적합업종 법제화마저 추진된다면 단기간 내 너무 큰 부담이 집중된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현재 적합업종 제도는 동반위 권고에 따라 지정되며 3년마다 연장하는 구조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은 제과점, 외식업 등 서비스업과 장류, 순대, 두부(비포장) 등 제조업을 포함해 총 74개 품목이다. 이 가운데 대기업·중견기업이 기존에도 영위했던 제과와 외식, 장류, 두부 등 일부 사업은 계속 허용하되 확장 자제 권고가 내려졌고, 세탁비누 등 일부의 경우 철수가 권고됐다.

전통시장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 문 대통령은 지난 2월 전통시장을 방문해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공약했다.

◆ 새 정부, 적합업종 법제화 속도낼 듯

17일 국회와 유통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적합업종 법제화’ 구상은 이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올해 초 발의한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이 뼈대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 법안은 중소기업청장이 생계형 소상공인 보호 육성 기본계획(3년)과 시행계획(매년)을 수립해 시행토록 하는 것이 골자다.

현재 대기업이 시행하는 사업이더라도 생계형 적합업종에 지정되면 사업 철수, 혹은 사업 이양의 조치가 내려진다. 대기업이 계속 생계형 적합업종 사업을 영위하려면 부담금(이행강제금)을 내야 한다.

이 법안은 산업통상자원부의 반대로 현재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주형환 산업부 장관은 지난 2월 산자위 전체회의에 참석해 “미국을 중심으로 적합업종 제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면서 “통상마찰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2014년 보고서에서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무역장벽으로 지목한 바 있다.

그러나 ‘생계형 적합업종 법제화’ 공약을 내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이 법안이 공론화될 분위기다. 특히 소상공인 보호 정책을 주로 담당하는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우원식 의원이 16일 원내대표로 선출되면서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적합업종 법제화는 소상공인 보호 법안이라 자유한국당이나 바른정당 등 보수 정당들도 대선 정국에서 크게 반대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앞서 백재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법) 개정안’도 지난 3월 말 비교적 순탄하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법안은 1년 내 적합업종 합의가 도출되지 않으면 중소기업단체가 직접 중기청장에게 사업조정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소개

◆ 유통업계 “정부에 목줄 내줬다” vs 중소기업계 “소상공인 보호정책 꼭 필요”

유통업계에서는 적합업종이 법제화되면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법제화된다면 세부적인 규제 내용은 시행령(대통령령)으로 관리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식품 기업의 경우 사실상 목줄을 정권에 내놓은 것이 되기 때문에 불안감이 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적합업종 법제화와 문 대통령의 또 다른 공약인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제로 정책이 동시에 추진될 경우 유통업계의 영업에 큰 지장을 받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제과, 외식업 브랜드 중 일부는 아직 비정규직이 수천명에 달하는 대기업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기업의 경우 적합업종 논란을 피해야 하는 동시에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으로 인한 인건비 부담까지 감내해야 한다.

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부담금을 내면서 프랜차이즈 사업을 계속하더라도 인건비 부담 증가로 인해 가맹점주 모집에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서 “사업을 계속할 수 있을지를 원점에서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중소기업계는 법제화가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중소기업계가 3년마다 업종 현황을 파악하고 적합업종 재지정을 신청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생계형 적합업종 법제화는 기존 적합업종 제도의 한계점을 보완하는 것”이라며 “대자본의 탐욕적인 침투로부터 경제적 약자계층인 소상공인을 보호하고 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들을 중산층으로 육성하려는 노력”이라고 했다.

통상 마찰 우려감도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김경만 중기중앙회 본부장은 “지난 2006년 폐지된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의 경우에도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기구나 다른 국가의 폐지 권고는 없었다”며 “실제 국가 간의 통상 마찰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고 했다.

◆ 적합업종 제도 효과 있었나?…의견 팽팽

가맹 사업자를 모집 중인 프랑스 베이커리 브랜드 콘트란쉐리에

유통업계에서는 생계형 적합업종 법제화 작업 착수 전에 기존 적합업종 제도로 인해 소상공인이 입은 혜택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제과 브랜드는 자체 조사한 결과, 2011년 적합업종 제도 도입 이후 국내 대기업·중견기업 프랜차이즈의 사업 확장에 제동이 걸리면서 외국계 브랜드가 대폭 늘었다고 밝혔다. 국내 기업이 역차별받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프랑스 베이커리 브랜드 콘트란쉐리에의 점포 수가 30여개 이상으로 증가했으며, 글로벌 디저트업체 브리오슈도레도 프랜차이즈 형태로 국내 사업을 확장할 계획일 정도로 국내 시장이 무주공산이 됐다는 것이 이 회사의 입장이다.

제과 브랜드 관계자는 “내부적으로는 적합업종 제도로 인해 소상공인 제과점이 늘어나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면서 “보다 면밀히 조사해 대응 전략을 수립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특별법을 추진 중인 이훈 의원실은 이같은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입법 과정에 참여한 법무법인 아인의 차상익 변호사는 2010~2012년 적합업종 대상 36개 업종 481개 회사의 성과를 분석한 결과, 적합업종 지정 대상 중소기업 매출이 2011년과 2012년 각각 29.6%, 20.7% 증가했다고 밝혔다. 차 변호사는 “가끔 ‘대기업 진출만 막고 아무 효과가 없었다’는 주장이 나오곤 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