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포틀랜드가 스포츠용품 산업에서 손꼽히는 중심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도시 근방에 스포츠 레저 명소가 많을 뿐만 아니라 도심을 보행자 친화적으로 바꾸는 등 시 정부가 산업경쟁력 확보에 노력했기 때문이다. 스포츠용품 회사 아디다스가 포틀랜드를 배경을 촬영한 광고 사진.

도로 한복판에 자전거전용 도로를 만든 미국 서부 포틀랜드에서는 자동차 만큼이나 자전거를 많이 볼 수 있다. 중앙정부가 주도하던 획일적인 도시 재개발이나 간선도로 확장을 지양하고 자전거와 대중교통, 보행자 중심으로 도시를 설계했다. 외곽 개발도 억제했다. 도심을 고밀도화해 자동차를 쓰지 않아도 될 환경을 만든 것이다.포틀랜드는 또 스포츠산업에 대해서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포틀랜드에서는 스포츠 및 스포츠용품 관련 행사가 연간 1000여건 이상 개최된다. 참가자는 200만명에 달한다.

지방자치단체의 이련 노력으로 포틀랜드에는 최근 언더아머, 킨, 아이스브레이커, 야키마와 같은 아웃도어 기업들이 속속 이전했다. 해발 3425m 후드산이 도심에서 1시간 거리에 있어 겨울에는 스키, 여름에는 트레킹을 즐길 수 있는 자연환경에 더해 산업환경이 조성되자 기업이 몰려온 것이다. 포틀랜드에는 이제 나이키 본사와 아디다스 미주 본사를 필두로 800여개 스포츠용품 기업이 밀집해 있다. 이들 기업의 종사자만 1만4000여명에 달한다. 미쓰비시총합연구소는 최근 발간한 '지방창생' 보고서에서 "나이키 등 대기업 뿐만아니라 많은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 발전한 생태계가 포틀랜드 스포츠용품 산업의 핵심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주도 일변이던 산업정책이 지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포틀랜드 뿐만아니라 스웨덴의 벡셰 등 성공 사례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한국도 지역정책을 통한 산업 활성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모종린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경제 발전의 단위가 국가에서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창의적 인재, 라이프스타일, 문화 등 '소프트요인'을 지역이 어떻게 갖추느냐가 관건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린네대는 스웨덴에서 손꼽힐 정도로 창업 지원 프로그램이 잘 갖춰져 있다. 린네대를 거점으로 창업이 활성화 되면서 벡셰시 등 인근 지역에 젊은 연령대 인구가 계속 유입되고 있다. 린네대 캠퍼스 전경.

◆스웨덴 대표 깡촌, 창업 거점으로 되살아나

스웨덴 남서부 스몰란드(Småland) 지방의 소도시 벡셰(Växjö)는 인근 린네대학과 연계해 창업 문화를 활성화한 곳이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해도 이 지역은 스웨덴에서도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꼽혔다.

벡셰시가 첨단 산업 중심지가 된 것은 2010년 이후다. 린네대학은 이 지역 산업에 필요한 인력과 기술을 공급하는 중추로, 대학 내에 산학 협력을 주도하는 IEC(정보기술센터)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또 벡셰시 당국, 린네대학, 민간 기업이 각각 3분의 1씩 출자해 운영하는 인큐베이터(초기 벤처기업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를 운영한다. "IT 등 기술 산업에서 중요한 것은 첫째도 사람, 둘째도 사람이다"며 "기업가 육성은 지역이 생존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벨프 뢰베 IEC 센터장(현 린네대 교수)은 설명했다.

린네대는 1학년을 대상으로 예비 창업과정을 운영하는데, 전체 학생 가운데 절반 정도가 참여한다. 벡셰시도 아예 외부 비영리기관(NGO)에 위탁하는 형태로 고등학교에서부터 1년간 창업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할 정도로 적극적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창업 관련 수업이 실시될 정도다. 벡셰시는 린네대 학생을 대상으로 홈스테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매년 수백명을 시 홍보대사로 임명하는 등 대학과 정서적 네트워크를 쌓는 데도 노력한다. 대학에 모든 걸 맡기지 않고 지역 내에서 창업 문화를 북돋는 지역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다.

벡셰시 내에는 1만여개의 기업이 있고, 이중 상당수는 IT·에너지 분야의 벤처·중소기업이다. 매년 벡셰시에서 새로 설립되는 기업 수는 500여개에 달한다.인구도 2000년 이후 매년 1%씩 늘어나고 있다. 보 프랑크 벡셰 시장은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사회, 경제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라며 "이제 스웨덴에서 가장 활력 넘치는 도시 가운데 하나가 됐다"고 말했다.

영국 버밍엄은 탈산업화로 쇠락한 옛 도심을 상업 및 관광 중심지로 되살린 도시재생의 대표 사례로 손꼽힌다. 하지만 새로 창출되는 일자리 숫자가 적을 뿐만 아니라 질도 낮아 실업과 빈곤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글로벌 경쟁력 갖춘 지역 경제권 육성 경쟁

과거 영국이나 유럽의 도시재생은 탈산업화에 대한 대책으로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비게 된 도심 공간에 새로 주택 단지를 짓거나 유통·레저·관광 등 서비스 관련 시설을 입주시키는 방식이 전형적이었다. 문제는 질 낮은 일자리들만 생기고 빈부격차 등이 확대됐다는 것이다. 도시재생의 성공사례로 줄곧 거론되는 영국 버밍엄의 실업률은 6.4%로 영국 전체(2.5%)는 물론 인근 지역(웨스트미들랜드·3.8%)보다 훨씬 높다. 평균 임금은 잉글랜드 지역의 89%에 불과하다.

지역 개발에서 영국을 대표하는 학자로 꼽히는 존 토매니 영국 런던대(UCL) 교수는 "도시 재생 전략의 문제는 저임금, 저숙련의 '질 낮은 일자리' 위주로 고용을 늘린다는 것"이라며 "한계가 명확하다"고 지적했다.

토매니 교수는 "해외직접투자(FDI)와 서비스 산업 발전을 통해서 낡은 산업을 완전히 대체하는 방식의 전략은 부분적인 성공만 거뒀을 뿐"이라며 "반면 기존 제조업을 현대화하면서 지역 경제 구조를 개편하는 전략의 경우 좋은 성공 사례들이 여럿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적극적인 형태의 산업 정책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처방이다.

때문에 미국·일본·유럽 등 선진국들은 산업 진흥을 통한 지방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탈공업화·도심 노후화·인구 고령화 등으로 활력을 잃은 지역을 되살리는 데 중앙 정부의 시혜적 예산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그리고 활성화된 지역 경제가 국내 시장을 넘어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겠다는 점도 동일하다.

유병규 산업연구원 원장은 "결국 지역정책과 산업정책을 한데 묶은 패키지형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유 원장은 "이러한 관점에서 산업정책 입안 과정에서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환경부 등 여러 유관부서들이 긴밀히 협조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