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5월 20일은 ‘세계 임상시험의 날(Clinical Trials Day)’입니다. 세계 최초로 임상시험을 한 의사는 스코틀랜드 해군의 제임스 린드(James Lind)인데요. 그가 1747년 5월 20일 항해 중인 해군 함대에서 괴혈병의 정도가 비슷한 선원 12명을 대상으로 시작한 임상시험을 기리기 위해 매년 5월 20일을 세계 임상시험의 날로 정하고 있습니다.

국내 신약 개발 단계 및 관련 규정

신약 개발에서 꼭 필요한 핵심 과정으로 불리는 임상시험은 의약품의 ‘안전성(부작용이 없는지)’과 ‘유효성(기존 약과 다른 효과가 있는지)’을 사람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연구의 전(全) 과정을 말합니다. 의약품은 사람의 생명에 직접 영향을 주기 때문에 임상시험이라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 안전성과 유효성이 증명돼야만 허가가 납니다.

임상시험 진행의 설계, 컨설팅, 데이터 관리, 임상시험 수행 등 임상시험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를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기관을 ‘임상시험수탁기관(Contract Research Organization·CRO)’이라고 합니다. 신약이나 바이오의약품 개발이 활발한 미국과 유럽 등 선진 의약국에서는 CRO의 위상은 높습니다. 전 세계 CRO 시장은 약 215억달러 규모(2010년 기준)로 연평균(2010~17년) 10.5%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처럼 글로벌 CRO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의 경우 글로벌 제약사 등의 의뢰자가 CRO에 위탁한 임상시험 승인 건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위탁 임상시험 원개발사 수는 2015년 61개에서 2016년 77개로 26.2% 늘었습니다.

한국임상시험산업본부는 “위탁 임상시험 원개발사 또한 다양화되고 있다”며 “임상시험의 효율성 감소와 원개발사의 다양화로 인해 CRO로의 위탁은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밝혔습니다.

이같은 배경에는 2008~09년부터 한국이 임상시험 환경이 좋은 나라로 알려지면서 국내에서 글로벌 임상시험이 늘어나기 시작한 덕분인데요. 동시에 글로벌 제약사들이 자국 CRO에 전 세계 임상시험을 관리하도록 하면서 외국계 CRO들 역시 한국에 지사를 차리며 국내 시장에 진출했습니다. 2000년에 한국에 지사가 설립된 퀸타일즈코리아가 외국계 CRO의 대표 주자 격입니다. 1983년 설립된 미국의 퀸타일즈(Quintiles)는 세계에서 가장 큰 CRO입니다.

2010~15년까지 임상시험수탁기관 매출 추이(단위: 억원). 국내 CRO와 외국계 CRO의 매출 간의 간극이 점차 커지고 있다.

문제는 해외 제약사들도 인정하는 국내 CRO의 수준을 국내 제약사들이 평가절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국내 제약회사들이 신약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글로벌 임상시험을 국내 CRO에는 잘 맡기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은 국내 CRO와 외국계 CRO의 매출 간의 간극이 커지고 있는 데서 잘 드러납니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CRO 매출이 최근 5년 동안 3배 가까이 증가하는 동안 국내 CRO의 매출은 2배 조금 넘게 성장하는데 그쳤습니다. 외국계 CRO 매출은 2010년 800억원에서 2015년 2285억원으로, 국내 CRO는 같은 기간 450억원에서 946억원으로 증가했습니다.

국내 제약사들은 국내 CRO가 글로벌 임상시험 경험이 없다는 점과 영어 커뮤니케이션이 능숙하지 못하다는 점을 들며 외국계 CRO를 선호한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한국임상CRO협회장을 맡고 있는 이영작(75·사진) 엘에스케이글로벌파마서비스(LSK Global PS) 대표는 "국내 제약사들의 편견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엘에스케이글로벌파마서비스 제공

그는 “국내 연구자(Investigator)들과 의사들도 수많은 글로벌 임상시험을 경험했기 때문에 정보가 많다"면서 “토종 CRO의 임상 시험 가격도 외국 CRO에 비해 저렴하다”고 밝혔습니다.

이영작 대표는 또 “임상시험은 제약 등 업계 관계자들과의 협력이기 때문에 국내 제약사가 토종 CRO를 이용할 경우 커뮤니케이션 자체도 쉽고 빠르다”며 “외국계 CRO가 국내의 임상시험 용역을 받아 기획하고 진행할 경우에는 국내 시스템과 환경 등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국내 제약사가 이들과 원활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 어려운 측면도 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이 대표는 “데이터 관리와 같은 부분에서도 외국계 CRO는 자사의 일정에 따르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국내 제약사가 자신들의 상황을 고려 받기가 여러 가지로 불편할 수밖에 없다”면서 “또 해당 업무를 실행할 프로젝트 매니저(PM)도 경험 많고 영향력 있는 담당자가 배정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검증을 마친 후 글로벌로 진출해도 늦지 않는다”며 “한미약품의 경우도 국내에서 진행한 임상시험을 토대로 기술수출에 성공한 경우”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토종 CRO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토종 CRO가 성장해서 국내 제약사의 파트너가 되는 것이 국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상생의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한국임상시험산업본부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는 총 42개의 CRO가 설립돼 있습니다. 이중 국내 토종 CRO가 25곳, 나머지 17곳은 외국계 CRO입니다. 국내 최대 CRO인 엘에스케이글로벌파마서비스의 경우 2001년 설립 이후 지난해까지 국내에서 877건의 임상시험을 수행했는데요. 이 중 글로벌 임상시험은 약 110건이었습니다. 오는 20일 세계 임상시험의 날을 맞아 국내 CRO의 선전을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