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간 고유의 영역이었던 문화예술 창작에서 기계나 로봇 알고리즘에 의한 유사창작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고흐나 렘브란트 화풍을 그대로 따라하는 AI 화가가 등장하고 비틀즈 스타일로 작곡하는 컴퓨터도 등장했다.

인공지능(AI)이 곡을 쓰거나 그림을 그렸다면, 누구의 창작물일까? AI가 다른 사람의 노래 가사나 그림을 베꼈다면, 누구한테 지식재산권(知識財産權) 침해에 관한 책임을 물어야 할까.

이병일 법무법인 세움 변호사는 "실험실 수준의 AI 창작 활동이 곧 상업 시장에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AI 창작물의 지적재산권 등 법제도 개선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림그리는 인공지능으로 불리는 구글 딥드림을 활용해 광화문 광장을 그린 그림. 고흐의 화풍을 배우게 한뒤 광화문을 그리게 하자 고흐 화풍대로 그림을 그렸다.

◆ "창작 수준 보면 소름 돋아"...미술·음악·소설까지 접수한 AI

AI가 예술 시장에서 활개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AI 화가는 구글이 탄생시킨 '딥드림(Deep Dream)'이다. 딥드림은 기존에 학습한 회화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작품을 모사하는 훈련을 받았다. 딥드림이 그린 29점의 작품은 지난해 2월 샌프란시스코 미술 경매에서 총 9만7000달러(약 1억1000만원)에 판매됐다. 딥드림의 '작품' 중에는 한 점당 8000달러(920만원)에 팔린 것도 있다.

지난해 4월엔 마이크로소프트와 네덜란드 연구진이 '넥스트 렘브란트'라는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빛의 마술사'로 불리는 네달란드의 화가 렘브란트 반 레인(Rembrandt Van Rijn)의 작품 346점을 기계에 딥러닝 기법으로 학습시켰다.

당시 개발팀은 학습을 마친 AI에 '모자를 쓰고 하얀 깃 장식과 검은색 옷을 착용한 30~40대 백인 남성'을 렘브란트의 화풍으로 그리라고 명령했다. 3D프린터로 인쇄된 이 그림은 유화의 질감과 물감의 두께까지 렘브란트의 화풍을 그대로 재현했다.

(왼쪽부터) 일반 사진, 고흐, 뭉크, 피카소 스타일로 그려진 그림.

일본의 소니 컴퓨터 과학 연구소(Sony Computer Science Laboratory)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유튜브에 자체 개발한 AI '플로우머신즈(FlowMachines)'가 작곡한 2곡을 공개했다. 플로우머신즈는 LSDB로 불리는 데이터베이스(DB)에 담긴 1만3000여곡을 바탕으로 사용자가 원하는 스타일대로 곡을 만들어 준다. 이번에 공개된 'Daddy's Car'는 비틀즈 스타일로, 'Mr Shadow'는 콜 포터와 듀크 엘링턴의 스타일로 만들어졌다. 소니는 올해 AI가 작곡한 음악을 모아 앨범으로 낼 계획이다.

일본에서는 AI가 작성한 소설이 '니케이 호시 신이치' 문학상 공모전의 예선을 통과하는 파란도 있었다. 소설 제목은 '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날'이며 A4 용지 3페이지 분량의 단편이다. AI의 '생각'과 '감정'을 묘사하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 AI는 저작자가 될 수 있나? 없나?...세계적으로 논의 '활발'

한국과 일본, 중국과 독일, 프랑스 등 이른바 대륙법계 저작권은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과 감정이 표현된 창작물'로 정의하며 인간을 저작권자로 특정하고 있다. 반면, 영미법계(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홍콩, 싱가포르, 인도 등) 저작권은 저작권자보다 저작물을 중심으로 한 것이 특징이다. 저작권을 창작 활동 그 자체보다 창작물을 통한 재산적 이익을 볼 권리 확보하고 보기 때문이다.

대륙법계의 전통을 따르는 우리나라의 저작권법에 따르면, AI를 '도구'로 삼은 소유자(점유자)가 AI의 창작물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AI 지재권 침해에 대한 책임도 지게 돼 있다. 현행법상 기본권을 가진 주체가 '자연인(自然人·법률상으로는 유기적인 생물학적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애완동물이 사고를 쳤을 때 애완동물 소유자인 인간에게 책임을 묻는 것과 비슷하다. 반면, 영미법계 전통이 확고한 영국 저작권법은 "컴퓨터에 기인하는 어문, 연극, 음악 또는 미술 저작물의 경우에는, 저작자는 그 저작물의 창작을 위해 필요한 조정을 한 자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본은 10년 전부터 AI 창작물에 대한 보호 논의를 해왔으며 지난해 의미있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2016년 1월 일본 지식재산전략본부는 차세대 지식재산 시스템 검토 위원회를 발족, 같은 해 4월 'AI 창작물의 저작권 보호에 관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에는 AI이 만들어낸 창작물에 대한 보호의 필요성, 보호 방안 및 AI 창작물이 기존 지식재산 제도에 미치는 영향 등을 담고 있다.

일본 지적재산전략본부는 'AI 창작물'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 조항을 조만간 신설할 방침이다. 인간의 창작물과 AI 창작물 간의 경쟁이 불가피하고, 연관산업에 미칠 파급력이 클 수 있다는 점을 다각도로 고려한 조치이다. 이 법이 신설되면, 일본에서는 AI 창작물을 무단 도용하는 사람에게 배포 정지를 요구할 수 있고 AI 창작물에 대한 손해배상에 대한 청구도 가능해진다.

정보기술(IT) 시장조사업체 IDC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세계 AI 시장 규모가 2016년 80억달러(약 9조2600억원)에서 2020년 470억달러(약 54조4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연평균 55.1%씩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허청에 따르면 한국은 한 해 20만건이 넘는 특허가 출원되는 세계 4위의 특허 선진국이다. 하지만 AI 특허 등록건수는 306건으로 세계 AI 특허 중 3%에 머물고 있다.

손승우 단국대 법학과 교수는 "AI 시장의 선점을 위해서는 AI 산업의 발전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는 법제도를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면서 "규제 철폐와 개방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