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지수가 6년여 만에 2200선에 안착했다. 글로벌 경기 회복에 따른 수출 증가로 기업 실적이 좋아진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코스피 시가총액의 23.8%를 차지하는 대장주 삼성전자의 자사주 매입이 큰 호재가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업이 자기 회사 주식(자사주)을 매입하면 시중에 유통되는 주식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통상 주가가 오른다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다.

그런데 기업의 자사주 매입은 무조건 좋은 일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기업이 여유 자금으로 자사주를 매입하면, 주주가 아닌 임직원들은 임금 상승이나 복지 향상 같은 혜택을 받지 못할 수 있다. 또 회사 여유 자금이 과도하게 주주 배당에 쓰이면 투자 부진으로 이어져 기업의 장기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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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자사주 매입 후 기대와 달리 주가가 떨어지면 주주 가치 증대라는 목적조차 달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엔 '차라리 그 돈을 신규 채용이나 설비투자에 썼더라면…'이란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자사주 매입을 둘러싸고 '주주 이익 극대화'에 충실할 것이냐, '미래를 위한 투자'를 우선해야 하느냐는 논란이 벌어지는 이유다.

◇자사주 매입 기업들, 주가는 오히려 후진

연 1조~2조원 규모였던 국내 상장사들의 자사주 취득 금액은 2015년을 기점으로 연 8조~9조원대까지 급증했다. 지난 2015년 정부가 3년간 한시적으로 도입한 기업소득환류세제가 계기가 됐다. 기업소득환류세제란, 기업이 임금·투자·배당에 쓰지 않고 남긴 돈에 법인세를 10% 추가 과세하는 제도다. 이에 따라 작년 말 코스피 상장사들의 자사주 보유 규모는 80조원으로 사상 최대치였다. 상장사 전체 시가총액의 6.5% 수준이다.

그런데 '자사주 매입=주가 상승'이란 공식은 꼭 들어맞진 않았다. 본지가 한국거래소에 의뢰해 지난해 자사주를 매입한 코스피 상장사 118개사의 연초·연말 주가 변화율을 살펴봤더니, 78개사(66%)의 주가는 오히려 뒷걸음질쳤다. 이 기업들의 평균 주가 상승률은 -0.45%로, 코스피 전체 상승률(3.32%)에 크게 못 미쳤다. 자사주 매입 카드의 주주 가치 향상 효과는 예상만큼 크지 않았던 셈이다. 신광선 거래소 팀장은 "기업들은 주가가 하락하거나 저평가되어 있다고 판단할 때 자사주를 매입한다"면서 "자사주 매입으로 추가적인 주가 하락은 방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강소현 자본시장연구원 박사는 "기업들이 주주 환원 차원에서 자사주 매입을 한다고 말은 하지만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면서 "취득한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는다면, 기업의 자사주 취득은 주가 관리나 경영권 방어 용도에서 활용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로 자사주 매입은 많지만 '소각'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지난해 자사주 취득 상장사 중 소각까지 해서 유통 주식 수를 줄여준 기업은 삼성전자 등 8개사(7%)에 불과했다.

◇"미래 투자·종업원 복지가 우선" 반론도

저성장·저금리 시대에 자사주 매입과 같은 주주 환원책 요구는 단기에 그칠 이슈가 아니다.

특히 지난달 삼성전자가 45조원 규모 자사주 소각 방침을 밝히면서 주주 친화 정책은 국내 주식시장에서 중요한 화두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윤석 삼성액티브운용 대표는 "국내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의 주주 환원책 파급효과는 생각보다 클 것"이라며 "앞으로 많은 재무담당임원(CFO)이 삼성전자처럼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라는 주주들의 요구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사주 매입 확대 움직임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나오고 있다. 자사주 매입이 과도하면 그만큼 투자 여력이 줄어들고, 결과적으론 기업의 미래 성장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 직원이나 협력업체 등 다른 이해관계자들은 물론, 기업의 미래에 필수적인 설비투자와 연구·개발(R&D)에 투입되는 자금 또한 줄어들 수밖에 없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유·무형 자산 취득액은 지난해 122조4946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2.9% 감소했다.

홍춘욱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은 "현금 보유는 늘었는데 마땅한 투자처 찾기가 어려운 상황에선 숲 속에 있을지도 모르는 열 마리의 새 대신 당장 손 안에 새 한 마리를 달라는 주주들의 목소리가 커지게 된다"면서 "기업이 인재 채용, 기술 개발 등 핵심 역량에 더 많이 투자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주고, 고용 인센티브를 확대하는 등 다양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