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 라면이 진화하고 있다. 국내 짜장 라면 역사는 농심이 1984년 짜파게티를 출시하며 시작됐다. 짜파게티는 '일요일은 내가 짜파게티 요리사'라는 광고 카피와 함께 20년 넘게 단독 1위를 질주했다. 당시 조리법은 단 하나였다. 봉지 뒤쪽에 새겨진 대로 팔팔 끓는 물에 면을 삶은 뒤 수프와 올리브유를 잘 비벼 먹는 방식이었다. 좀 다르다면 생야채를 곁들여 먹는 정도였다.
◇짜파구리의 탄생: 나만의 방식으로 만들어 먹는다
변화는 2013년 시작됐다. 한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조합한 일명 '짜파구리'가 등장한 것. 신기하고 묘한 맛과 식감에 이끌린 소비자들의 '폭풍 흡입'이 이어지며 두 제품의 매출이 급신장했다. 소비자들은 이후 짜파게티와 신라면, 짜파게티와 오징어짬뽕 등 다양한 조합을 시도하며 국내 라면 시장에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했다. 제조업체의 조리법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만들어 즐기는 '모디슈머'(modisumer)의 영향력을 실감한 사례였다.
모디슈머는 수정하다(modify)와 소비자(consumer)라는 두 단어를 합성한 말. 1인 가구의 급증으로 혼밥, 혼술을 즐기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최근에는 모디슈머에서 더 진화한 '컨셰프'(conchef)라는 말도 나온다. 소비자와 요리사(chef) 두 단어를 합성해 '요리하는 소비자'라는 뜻의 신조어다.
◇짜왕과 계란의 결합: 고소함과 부드러움의 조화
농심은 2015년 4월 한 봉지에 1500원인 짜장 라면 '짜왕'을 출시했다. 3㎜짜리 굵은 면발을 사용해 쫄깃함을 높였고, 면 반죽에 다시마를 첨가해 감칠맛을 더한 제품이다. 고온 쿠커를 사용해 중화요릿집에서 만드는 짜장의 깊은 맛을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개발 과정에서 소스에 불맛을 입히기 위해 100여 개의 프라이팬을 태워 먹었다고 한다.
짜왕 출시 이후 소셜 미디어 공간에서는 '짜왕 맛 10배로 즐기기' 같은 다양한 응용 레시피가 돌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계란을 함께 먹는 방식. 농심 관계자는 "짜왕의 춘장 소스와 계란이 어우러지면 더욱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이 난다"고 말했다. 실제로 많은 소비자가 짜왕과 반숙된 계란 프라이를 함께 즐기는 레시피에 높은 점수를 줬다. 일부 짜왕 마니아는 수란(水卵)을 올려 먹기도 했다. 껍질 없이 뜨거운 물에서 익힌 수란은 계란 프라이보다 맛이 훨씬 담백하다. 또 스크램블드 에그를 만들어 짜왕과 비벼 먹는 이색적인 방법도 나왔다. 농심 영양연구팀 관계자는 "계란을 함께 먹으면 질 좋은 단백질을 함께 섭취해 영양학적으로 좋다"며 "계란 대신 두부나 닭가슴살을 얹어 먹어도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짜왕 매운맛: 새로운 '불짜왕'의 등장
농심은 이달 24일 '짜왕 매운맛' 신제품을 출시했다. 기존 짜왕이 진하고 풍미가 깊은 간짜장이라면, 짜왕 매운맛은 고추의 강렬한 매운맛이 인상적인 사천짜장이다. 매운맛의 정도를 나타내는 스코빌 지수가 5000에 달해 신라면(3400)보다 훨씬 높다.
농심은 10~20대 짜왕 소비자들이 매운 김치나 고춧가루를 곁들여 먹는 점에 주목했다. 농심 홈페이지에는 "혀가 얼얼할 정도로 매운 '불짜왕'을 만들어 달라"는 고객들의 요청이 올라오기도 했다. 짜왕 매운맛은 현재 농심에서 판매하는 제품 가운데 가장 맵다. 농심 관계자는 "강렬한 매운맛을 내기 위해 하늘초 고추를 통째로 찧어서 조미유에 담았다"고 말했다. 분말 짜장 수프에도 하늘초 고추를 갈아 넣었다고 했다.
농심 연구팀은 짜왕 매운맛에 치즈를 올려 먹는 방법도 추천했다. 매운 짜장에 고소하고 부드러운 치즈가 어우러져 풍미를 더 한다는 것. 또 냉장고에 흔히 있는 오징어나 조개 등 해산물을 넣어 함께 볶아주면 '사천식 삼선 짜왕'을 즐길 수 있다고 했다. 농심 관계자는 "짜왕 매운맛과 뭔가를 결합하면 지금까지 상상하지 못했던 깜짝 놀랄 맛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며 "전국의 모디슈머와 컨셰프들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