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라~ ‘빅스비’ 실행은 안되고 다른 게 실행되네.”

스마트폰을 자유자재로 잘 다룬다는 A씨(35)는 신형 스마트폰 ‘갤럭시S8’을 구입한 후 새 인공지능(AI) 서비스 ‘빅스비’를 실행하다 연신 실수를 저질렀다. 그동안 출시된 스마트폰의 경우 ‘홈버튼’을 길게 눌러 인공지능 서비스를 구동시켰다. 갤럭시S시리즈와 LG전자 G시리즈를 비롯해 애플 아이폰까지 마찬가지였다. A씨가 평소 습관처럼 홈버튼을 눌렀더니 빅스비가 아닌, 구글의 AI 서비스 ‘구글 나우’가 실행됐다. 빅스비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단말기 왼쪽에 마련된 ‘빅스비 전용 버튼’을 눌러야 했다.

삼성전자 갤럭시S8는 빅스비와 구글 어시스턴트 등 2개의 인공지능 비서 서비스가 탑재됐다. 갤럭시S8 단말기로 빅스비(왼쪽)와 구글 어시스턴트(오른쪽)를 실행시킨 모습

삼성전자가 AI 버튼의 명당(明堂) 자리인 홈버튼 대신 별도 버튼을 만든 이유를 두고 협력자이자 경쟁자인 삼성전자와 구글의 ‘한지붕 두 AI’, ‘불편한 동거’가 시작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빅스비는 삼성전자가 지난 21일 출시한 갤럭시S8의 대표 기능이다. 단 한번의 음성 명령만으로 정보 검색은 물론 갤러리, 전화번호부, 설정, 메시지, 카메라 등 스마트폰 내부 기능을 실행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조만간 빅스비 개발도구(SDK)도 공개해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 전자상거래를 연동해 독자적인 AI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지만, 초반부터 홈버튼을 구글 어시스턴트에 내주는 등 어려운 싸움에 나서고 있다.

미국 뉴욕에서 열린 삼성전자 갤럭시S8 언팩 행사에서 발표된 인공지능 비서 서비스 ‘빅스비’

◆ ‘한지붕 두 AI’ 삼성 빅스비와 구글 어시스턴트…불편한 동거 시작

갤럭시S8에는 빅스비 이외에 구글의 AI 서비스 ‘구글 어시스턴트’도 탑재됐다. 안드로이드 7.0(누가)가 설치된 갤럭시S8에서 사용 언어를 ‘영어’로 설정할 경우 구글 어시스턴트를 사용할 수 있다. 갤럭시S8의 사용 언어를 한국어로 했을 경우에는 어시스턴트의 전 단계인 구글 나우가 실행된다.

현재 구글 어시스턴트는 영어와 독일어 버전만 출시된 상태다. 구글은 올해 연말쯤 어시스턴트의 한국어 버전을 출시하겠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가 빅스비의 경쟁 서비스인 구글 어시스턴트를 병행 탑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구글간의 계약 탓으로 풀이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구글은 지난 2014년 안드로이드 비경쟁계약(Non-compete Pact)을 체결했다. 이 계약에는 구글의 서비스와 경쟁하는 서비스를 출시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사장이 미국 뉴욕에서 열린 갤럭시S8 언팩 사전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실제 올 초 삼성이 빅스비를 갤럭시S8에 탑재키로 한 것에 구글이 강하게 이의를 제기했고, 때문에 빅스비 탑재가 어려울 것이라는 소문도 흘러나왔다.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사장은 AI 병행 탑재와 관련해 “빅스비와 구글 어시스턴트는 기술(인공지능)은 같지만 내용이 다른 서비스”라며 “빅스비가 자체 앱을 제어해 스마트폰 기능을 실행하고 연결된 다른 제품을 제어하는 것에 특화됐다면, 구글 어시스턴트는 검색을 기반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데 특화돼 있다. 서로 경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두 회사가 그동안 견고한 안드로이드 동맹체제를 유지해왔다는 점에서 결국 빅스비와 구글 어시스턴트를 병행 탑재하는 선에서 합의점을 도출한 것 같다”며 “구글 어시스턴트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동안 구글이 축적한 정보와 기술력에 비교하면 빅스비는 매우 불리한 싸움을 벌여야 한다”고 말했다.

◆ 삼성전자 ‘빅스비 버튼’ 사수…“홈 버튼 마음대로 못쓰는 상황 뼈 아파"

최근 빅스비 전용 버튼을 카메라 등 다른 용도의 버튼으로 사용할 수 있는 ‘버튼 리매핑(재설정)’ 기술이 나왔다. 이에 삼성전자는 펌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빅스비 버튼을 오로지 빅스비 사용을 위한 버튼으로 제한했다.

삼성전자 미국 법인의 필립 번 책임자는 트위터에 “빅스비 버튼을 다른 용도로 활성화하는 것을 공식적으로는 지원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화면 왼쪽에 빅스비 전용 버튼을 길게 누르면 빅스비가 실행되면서 음성명령을 인식할 준비를 마친다.

이를 두고 정보기술(IT) 전문 매체들은 빅스비 생태계 발전을 원하는 삼성전자의 조치로 분석했다. 구글 어시스턴트, 아마존 알렉사 등 글로벌 기업의 AI 기술과 경쟁하고 점유율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갤럭시S8의 빅스비 버튼이 빅스비 전용으로 사용되는 게 삼성전자한테는 유리하기 때문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홈버튼을 사용하고 싶어도 못쓴 것은 구글과의 계약 등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별도의 버튼을 만든 만큼 빅스비 버튼을 빅스비 구동에만 활용하게 하는 삼성전자의 사수 의지는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부 개발자와 소비자는 “빅스비 버튼을 어떤 용도로 사용할지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라며 삼성전자를 비판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구글의 어시스턴트가 홈버튼을 장악한 상황에서 빅스비를 띄우고 차별화 시키기 위해서는 눈에 잘띄고 사용이 편리한 별도의 버튼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했다”며 “홈버튼울 마음대로 활용할 수 없는 것은 운영체제(OS) 주도권이 없는 삼성전자의 상황을 뼈아프게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