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티은행 개인 거래 중 지점을 통하는 비율이 5%에 불과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지점을 모두 유지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지점 활용과 고용 문제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지점을 대폭 줄이게 된 겁니다."

지점 125곳(기업 전문 영업점 제외)의 80%를 없애는, 한국 금융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파격적 지점 축소로 시장에 파란을 일으킨 씨티은행 박진회〈사진〉 행장은 "4차 산업혁명, 핀테크 쓰나미가 밀려오는 상황에서 지금 이대로는 도저히 생존할 수 없어서 불가피하게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1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금융감독원이 주최한 외국계 금융회사 연례 업무 설명회에서 만난 박 행장은 지점 10곳 중 8곳을 닫는 급격한 변화가 갑작스러운 결정이 아닌, 지난 2년간 '디지털'이라는 화두를 두고 고민한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씨티은행은 지난달 '차세대 소비자 전략'을 발표한 데 이어, 이달 초 지점의 80%를 줄이고 비(非)대면 거점인 고객가치센터·고객집중센터 등을 신설한다는 구체안을 발표했다. 박 행장은 이런 급진적 변화를 추진하는 데 대해 "인터넷 전문 은행이 나오는 등 디지털 트렌드는 강하고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대로 안주하다간 휩쓸릴 것 같은 위기감이 들었다"고 했다.

◇"디지털과 오프라인 WM 결합… 이길 수 있는 게임"

박 행장은 이번 변화의 배경을 설명하며 '다윗의 돌팔매'라는 문구를 여러 차례 이야기했다. 그는 "시중은행이 '골리앗'이므로 그들을 쓰러뜨리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점 수가 무의미한 디지털 금융 세상이 열렸고, 이 새로운 기술을 통해 우리 '몸집'으로도 지점 1000곳인 시중은행과 경쟁할 수 있는 방법을 손에 쥐었다는 확신이 든다는 뜻이다"고 했다.

그는 2015년 금융위원회가 인터넷 전문 은행을 위해 지점을 찾아가지 않아도 온라인으로 계좌 개설이 가능하도록 규제를 완화해준 것이 이번 조치의 출발점이었다고 했다. 대출을 중심으로 디지털 '실험'을 지난 2년 동안 진행했는데, 결과가 예상을 뛰어넘었다. "디지털로 들어오는 대출자들은 대면 채널(지점) 고객과 비슷하거나 더 우수한 고객들이었습니다. 30~40대 경제활동 인구를 중심으로 디지털 고객군이 형성되더군요. 디지털 금융이 먹히겠다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은행에 '30~40대 경제활동 인구'는 예금·대출을 많이 쓰면서도 직장과 소득이 있어 신용도가 비교적 높은 '우량 고객'이다.

그는 그러나 '디지털 온리'(오로지 디지털)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그가 직접 만들었다는 말 '허브 앤 디지털'은 고객 자산 관리(WM·wealth management)를 중심으로 한 오프라인 거점 지점을 한 축으로, 디지털 채널을 다른 한 축으로 하는 융합 모델이다. '합체'에 가깝지 '꼬리 자르기'는 아니라고 그는 설명했다.

◇"씨티는 지점이 1000개인 시중은행과 달라야 산다"

이날 만난 박 행장은 "인간은 낯선 행복보다 익숙한 불편을 좋아하는 믿기 힘든 경향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든다"고 말했다. 그의 전망은 불안보다는 낙관에 가까워 보였지만, 이미 역풍(逆風)이 만만치 않다. 폐쇄될 지점 인력을 재배치하는 문제를 두고 노조는 "영업점에 몸이 익은 직원을 콜센터로 몰아내려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고액 자산가만 챙기고, 제주 등 씨티은행 지점이 사라지는 몇몇 도시의 고객을 버리고 가려 한다는 안 좋은 시선도 있다.

박 행장은 노조가 '콜센터'라고 주장하는 신설 기구인 고객가치센터 등이 콜센터와는 완전히 다른, 기존 금융에선 볼 수 없던 새로운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의 콜센터 직원과 달리 금융 자격증이 있는 은행 정규 직원이 투입되면 금융 상품 상담과 판매까지 할 수 있다. 지난 두 달 정도 파일럿팀을 운영했는데 투입됐던 직원들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지방 지점에 대해선 "일반 대중 고객은 디지털로 오면 수수료 등이 다 면제니까 그것을 잘 쓰도록 우리가 도울 것이다. 서류 등을 받아야 할 일이 있으면 우리가 사람을 고객에게 보낼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지점이 1000곳에 이르는 시중은행과 우리의 전략은 달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