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 기반 확충을 위해 정부가 추진 중인 면세자 비율 축소 정책이 표류하고 있다. 5월 대선을 앞두고 후보들이 수조원이 추가로 필요한 공약을 내놓으면서도 재원조달 방안으로 주로 법인세 인상과 고소득자 소득세 인상 등만 언급할 뿐, 면세자 축소 방안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면세자 축소가 차기 정부에서도 어려운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2015년 기준으로 근로소득자 중 세금을 1원도 내지 않는 면세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46.8%에 달했다.

◆ 세금 0원 내는 근로소득자 46.8%…정부, 표준공제 축소·최저한세 신설 등 검토

국세청의 2016년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15년 귀속 근로소득세 신고 인원 1733만명 중에서 결정세액이 없는 면세자는 810만명에 달했다. 비율은 46.8%로 절반에 가깝다. 돈을 벌면서도 세금을 안 내는 면세자 비율은 2011년 36.2%, 2012년 33.2%, 2013년 32.4%로 줄어드는 추세였으나 2014년 48.1%로 껑충 뛰었다.

정부가 지난 2014년 과세 기반 확충을 위해 소득세의 주요 공제항목을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전환하자, 근로자의 세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고 결국 정부가 공제 혜택을 확대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문제는 저소득층으로 볼 수 없는 면세자가 늘어났다는 점이다. 5000만~6000만원 소득자 중 면세자 비율은 2013년 0.5%에서 2014년 6.1%로 증가했다. 연봉이 1억원이 넘는 면세자도 1441명이나 됐다.

면세자가 급증하면서 공평과세 원칙이 흔들린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국회에서 뒤늦게 면세자 축소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2015년 7월 국회 조세소위에 ▲표준세액공제 금액 축소 ▲특별세액공제 종합한도 설정 ▲근로소득 최저한세 신설 ▲근로소득공제 축소 4가지 방안을 보고했다.

기획재정부는 작년 면세자 비율을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표준세액공제는 교육비, 의료비 등을 공제하는 특별세액공제와 달리 최소한 얼마 이상은 공제 해주는 것으로 현행 13만원으로 규정돼 있다. 기재부에 따르면 표준세액공제를 1만원 낮추면 면세자 비율이 1%포인트 축소될 것으로 추정됐다. 다만 교육비, 의료비 공제를 거의 받지 못하는 1인 가구의 세 부담이 늘어 이른바 싱글세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

특별세액공제 종합한도 설정은 교육비·의료비 등 각각의 공제를 합한 값이 얼마 이상을 넘지 못하도록 설정하는 것이다. 급여 1500만원 이상을 받는 근로자에 대해 특별세액공제 종합한도 90%를 설정하면 면세자 비율이 지금보다 10.4%포인트나 축소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방안은 저소득층이 타깃이 될 수 있어 정권에서 적극 추진하기에 부담스러울 것으로 예상된다.

근로소득 최저한세는 문재인 후보의 캠프에 영입된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제안한 방안이다. 총급여가 최저임금 수준을 넘는 근로소득자라면 월 1만원 혹은 총급여의 1% 등 최소한의 금액을 소득세로 내도록 하는 것이다. 급여 1500만원을 대상으로 월 1만원의 세금을 내게 하면 면세자 비율이 16.9%포인트나 줄지만 자영업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급여별로 다르게 적용되는 근로소득공제율을 낮추는 방안도 제시됐다. 급여 500만원 이하인 근로자는 총급여액의 70%를 공제 받는데, 공제율을 5%포인트 줄이면 면세자 비율이 3.9%포인트가 축소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포인트 낮추면 5.6%포인트가 축소된다.

◆ 면세자 축소 놔두고 법인세 올리자는 대선 후보들

하지만 18일 대선 후보들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한 10대 공약을 보면 수조원의 세출 확대를 필요로 하는 공약이 주를 이루지만, 재원 확대 방안에서 면세자 축소 이야기는 쏙 빠져있다. 재정지출 구조조정, 세입 확충, 일반 회계 조정 등 정부가 기존에 하고 있는 수준의 재원 확보 방안과 대기업이나 고소득자를 대상으로 한 증세 방안을 주로 강조하고 있다. 증세 공약이 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언급을 피하는 것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법인세 명목세율 인상에 대해 "당연한 것"이라고 밝혔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법인세 실효세율을 정상화 한 뒤 법인세율을 22%에서 25%로 원상 회복 하겠다"고 주장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도 법인세 인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정부는 법인세 인상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해왔다. 현재 우리나라의 법인세는 최고 2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2.5%와 비슷한 수준이다. 기재부는 "법인세율 인상은 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위축시켜 어려운 한국 경제여건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면서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은 법인세율을 인하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고소득층을 타깃으로 한 소득세 증세도 적절치 않다고 정부는 판단하고 있다. 여야와 정부는 지난해 소득세 최고세율을 38%에서 40%로 올리기로 합의했다. 이는 OECD 소득세 최고세율 평균인 35.8%보다 높다. 면세자 비율이 높은 상황에서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소득세율만을 계속 인상하는 것은 조세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 기재부 "면세자 축소 필요하지만…장담 못해"

정부는 현재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율 축소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연구용역을 추진하고 있다. 앞서 국회에 보고한 4가지 방안을 구체화 하고, 소득수준별·가구형태별로 세 부담이 어떻게 바뀌는지 심층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전문가 의견 수렴을 거쳐 올해 안에 면세자 축소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꺼리는 분위기다. 대선후보들의 공약과 배치되는 정책을 추진할 경우 후폭풍이 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올해 안에 면세자 축소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지만, 발표 시점은 아직 확정하지 못했다"라면서 "부처에서 독단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기 때문에 신중하자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중부담 중복지 논의가 본격화 되고 있어 면세자 비율 축소에 대한 국민 공감대를 마련할 시기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면세자 축소 논의가 사라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면서 “증세 방안은 정권의 성향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