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공시제 효과 거두려면 단통법 일몰 조항 유지돼야...갤럭시노트8 출고가 100만원 넘어도 못잡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차기 정부의 통신 정책 공약으로 '분리공시제'를 내세우고 있지만,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 일몰 조항 등을 고려하면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11일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을 만들 때 '분리공시제' 도입도 검토됐지만, 제조사와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좌절됐다"면서 "이번에는 반드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분리공시제는 이동통신사가 휴대폰 구매자에게 제공하는 보조금에서 제조사가 주는 지원금을 분리해 공개하는 제도다. 통상 단말기 보조금은 통신사와 휴대폰 제조사가 공동 부담하지만, 부담 비율은 공개되지 않는다. 분리공시제가 도입되면 단말기 가격의 거품이 드러나 휴대폰 출고가 인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게 문 후보 측의 주장이다.
18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현재 단통법도, 분리공시제도 휴대폰 출고가의 거품을 빼는 데는 '반쪽짜리'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현재 단통법 조항에는 분리공시를 규정하고 있지 않아 제조사가 휴대폰 구매자에게 직접 주는 보조금을 파악하기 어려운데다, 오는 10월부터 제조사의 판매장려금 보고 의무 조항(단통법 제12조 2항)마저 일몰로 자동폐지 되면 분리공시제가 도입되는 것 만으로 휴대폰 출고가 인하를 유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등 휴대폰 제조사는 보통 마케팅 목적으로 두 가지 지원금을 제공한다. 하나는 휴대폰 구매자에게 직접 주는 보조 지원금이고 또다른 하나는 휴대폰 유통점에 주는 판매 장려금이다. 제조사는 이 비용들을 고스란히 단말기 출고가에 포함시켜 최종적으로는 소비자가 비용을 부담하게 만든다.
제조사 지원금 규모를 외부에서 알 수 없으면, 불법 보조금 수단으로 활용되기 쉽다. 숨겨진 금액이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면서 이른바 '호갱'으로 전락하는 피해자가 속출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업계는 휴대폰 출고가를 잡기 위해선 제조사가 지출하는 두 가지 지원금이 모두 공개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현재 단통법은 제조사가 휴대폰 구매자에게 주는 지원금을 공개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지 않다. 분리공시제가 도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조사가 이통사에 주는 판매 장려금만 정부에 보고하도록 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주장하는 대로 이동통신사가 휴대폰 구매자에게 제공하는 보조금에서 제조사가 주는 지원금을 분리해 공개하면 해결될까. 문제는 휴대전화 제조사가 이동통신사 대리점에 지급하는 판매 장려금을 정부에 보고하도록 의무화 한 단통법 조항이 오는 10월부터 일몰로 자동 폐지된다는 점이다.
정부에 판매 장려금을 보고할 의무가 사라지면, 분리공시제를 도입하더라도 제조사는 휴대폰 구매자에게 직접 주는 지원금을 줄이고 휴대폰 대리점에 주는 판매 장려금(리베이트)을 높이는 방식의 편법을 쓰게 된다. 제조사의 판매 장려금이 높아질수록 단말기 출고가는 올라갈 수 밖에 없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예를 들면, 삼성전자 같은 제조사는 소비자에게 지원하는 금액은 1만원 등으로 적게 공시하고 나머지 금액을 판매 대리점의 장려금으로 돌려는 편법을 써도 문제 없게 된다"면서 "10월부터는 정부에 판매 장려금을 보고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자업계 한 관계자는 "그동안 삼성이 판매 장려금과 단말기 출고가를 정부에 보고해야 했기 때문에 단말기 출고가 인상율이 지난 몇년간 꾸준히 하락했다"며 "단통법 시행 전에 출시된 갤럭시노트2(108만원), 갤럭시노트3(106만원)은 모두 100만원 이상이었는데 반해 갤럭시노트4(97만원), 갤럭시노트5(89만원), 갤럭시노트7(98만원)은 모두 100만원 미만의 출고가를 형성했다"고 말했다. 이어 "10월 이후 갤럭시노트8부터는 100만원을 호가하는 단말기가 나와도 소비자는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단통법 제정 당시 기록된 국회 회의록에 따르면 제조사의 판매장려금의 정부 보고 의무를 정한 조항을 3년 일몰조항으로 설정한 이유에 대해 주무부처인 윤종록 전 미래창조과학부 2차관은 "3년 뒤면 시장이 정화될 것이므로 일몰 조항으로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당시 권은희 미방위 위원은 3년 뒤 평가해서 존속여부를 결정하자는 단서를 붙이자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신현두 한국소비자협회 대표는 "소비자가 제조사의 마케팅 지원금 규모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면 소비자들이 그 금액만큼의 출고가 인하를 요구할 수 있게 되고, 결국엔 불법 보조금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분리공시제 도입과 판매장려금 공개 의무조항 등을 통해 제조사의 마케팅 지원금이 공개될 경우, 오히려 출고가 인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병태 카이스트(KAIST) 경영학과 교수는 "지원금과 판매장려금이 모두 공개될 경우, 제조사들이 해외 시장에 진출할때 국내에서 푼 금액 이상의 지원금을 달라는 압박을 받게 되는 등 협상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며 "제조사 입장에서는 이런 점을 우려해 국내 시장에 푸는 지원금을 오히려 줄이게 돼 소비자들은 더욱 비싸게 단말기를 구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