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들어 '죽기 전에 해야 할 뭐뭐뭐'라는 식의 문구가 곧잘 등장합니다. 아마도 버킷 리스트(bucket list)라는 말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데 자극적이다 싶었던 그 말도 자주 쓰니까 느낌이 좀 떨어집니다.

죽기 전에 해봐야 할 일,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곳, 죽기 전에 먹어봐야 할 음식 등등을 다 찾아서 해보려고 한다면 그 전에 죽을 게 분명합니다. 그런 식으로 가볍게 한다면 저는 강화도 고려산의 진달래 축제도 생전에 꼭 가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진달래는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꽃이고, 강화도는 선사 시대부터 근대와 현대까지의 우리 역사가 남아 있는 섬이니까요.

강화도 고려산 정상

진달래 축제로 유명한 곳이 전국에 몇 군데 있습니다. 부천 원미산, 거제도 대금산, 창원 천주산, 여수 영취산, 그리고 강화도 고려산입니다. 그 중 강화도 고려산이 제일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올해 강화도 고려산 진달래 축제는 4월 12일부터 4월 23일까지 열립니다. 지난해만 해도 35만 명이 방문했다고 하니 수도권을 넘어서는 전국적인 축제로 자리매김하는 모습입니다.

고려산행을 결정한 분들이 꼭 해야 할 일은 등산코스를 정하는 일입니다. 고려산 등산코스는 다섯 군데나 됩니다. 1코스는 백련사 코스, 2코스는 청련사 코스, 3코스는 고비고개 코스, 4코스는 적석사 코스, 5코스는 미꾸지고개 코스입니다.

고려산 등산로 지도

체력적인 무리 없이 알뜰한 시간 안에 올라가서 경치 좋은 곳을 보고 싶다, 하는 분들이라면 2코스인 청련사 코스를 택하면 됩니다. 누구나 원하는 코스니만큼 사람들로 득시글거리는 건 당연합니다.

주말과 휴일에는 진달래보다 사람이 더 많을 정도입니다. 인파를 피해서 가고 싶다면 아침 일찍 가면 됩니다. 그런데 고려산이 강화도에서도 북쪽에 있다 보니 청련사 코스의 들머리까지 가는 데만 해도 적잖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걸 감안해서 좀 더 부지런을 떨어야 사람에 치이지 않는 산행이 가능합니다. 새벽에 떠나라는 얘기입니다.

청련사 코스로 고려산 정상까지는 1시간이 걸린다고 나옵니다. 1시간이라는 시간은 아마 앞만 보고 올라간 시간으로 보입니다. 분명히 1시간이나 올라왔는데 왜 정상이 보이지 않느냐며 투덜거리게 되는 게 정상(?)입니다.

고려산 대형 사진

올라가면서 꽃도 보고, 나무도 보고, 셀카로 원판 불변의 법칙도 확인하고, 잠시 엉덩이 붙인 채 간식 먹으며 땀 좀 식히고 하다 보면 1시간 30분 정도는 족히 걸립니다. 그럴 걸 염두에 두지 못한 채 가다 보면 정상 찍고 내려오는 분들한테 우문을 던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얼마나 더 가야 정상인가요?" 그 질문을 세 번 정도 할 무렵이면 갑자기 탁 트인 곳이 나옵니다. 그곳에 이르면 고려산 진달래가 장관이었던 시절의 대형 사진이 길 왼쪽으로 나타납니다.

고려산 진달래 군락지

이런 풍경이 곧 펼쳐지려나 보다 하는 기대감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면 결국 만나게 됩니다. 분홍색 꽃물결이 산허리를 감싸 안은 장면을! 정상 능선 북사면을 따라 1㎞ 구간에 걸쳐서 펼쳐진 진달래 군락은 가히 압권입니다.

고려산 진달래 군락지

그런데 방금 전에 보고 온 대형 사진의 풍경과는 달라 보입니다. 아직 만개한 게 아닌가 싶지만 그런 건 아닙니다. 사실 그 사진의 모습처럼 멋진 진달래 군락을 기대하기는 이제 어려울 것 같습니다. 봄이 점점 짧아지면서 진달래의 개화 기간도 짧아져서 한꺼번에 무리지어 핀 모습을 보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해풍에 넘실대는 꽃물결이 너무나도 아름답습니다.

멀리 바다가 보이는 진달래 군락지 풍경

진달래만 보면 심심하니 등산로 주변도 살펴봐야겠습니다. 고려산에서 덤으로 볼 수 있는 식물로 산괭이눈, 덩굴별꽃, 명아주 등이 있습니다.

산괭이눈은 산지의 습한 곳에서 자라는 식물입니다. 비교적 흔하지만 유사종이 많아 구별법을 알지 못하면 이름을 불러줄 수 없는 녀석입니다.

산괭이눈

유사종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가지괭이눈, 애기괭이눈, 금괭이눈, 누른괭이눈, 흰괭이눈, 선괭이눈 정도입니다. 다들 작고 비슷비슷해서 그게 그거 같습니다. 그게 그거 같지 않으려면 공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괭이눈속(屬) 식물을 놓고 그건 그거고 저건 저거다 하는 정도가 되려면 그 작은 꽃 앞에서 눈을 크게 떠야 합니다. 산괭이눈은 꽃받침의 끝이 둥글고 수평에 가깝게 펼쳐지며 포엽이 넓고 포엽 가장자리의 톱니가 얕은 점이 특징입니다.

산괭이눈의 특징

어렵나요? 뭐가 꽃받침이고 뭐가 포엽인지 몰라서 그럴 겁니다. 사진에 화살표와 함께 곁들인 설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그 또한 즐거움 아니겠습니까.

덩굴별꽃은 발견한다 해도 알아보기가 쉽지 않은 풀입니다. 컸을 때의 모습과 사뭇 다르기 때문입니다. 봄에는 긴 털을 많이 달고 있다가 점점 자라나면서 덩굴처럼 되어 가지를 많이 칩니다.

덩굴별꽃

그때는 전혀 다른 식물로 보입니다. 흑진주 같은 열매 하나를 달고 있으면 또 다른 식물 같고요. 귀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흔한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인지 봄날에 털 부숭한 줄기를 내민 덩굴별꽃을 만나면 나만 아는 이를 만난 것처럼 반갑습니다.

명아주는 고려산으로 오르는 들머리 길가에 많습니다. 명아주는 진짜 흔한 식물인데 뭐하러 소개하느냐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것은 명아주가 아니라 대개 '흰명아주'입니다. 그동안 흰명아주에 속고 살아온 삶이 얼마나 되는지요?

명아주는 어린잎에 붉은색이 돈다.

명아주과(科) 식물의 어린잎에 덮이는 가루 같은 물질을 분상물(粉狀物)이라고 하는데, 흰명아주는 흰색의 분상물이 덮입니다. 그와 달리 진짜 명아주에는 붉은색의 분상물이 덮입니다. 귀화식물인 흰명아주에 밀린 건지 언제부턴가 명아주 보기가 쉽지 않아졌습니다. 그래서 명아주 역시 만나면 반가운 식물이 됐습니다.

강화도 고려산행이 아직도 망설여지나요? 축제기간이 끝난다고 해서 진달래가 모두 다 사라지는 건 아니니 4월 말까지는 진달래 감상이 가능할 겁니다. 고려산, 죽기 전에 갈 수 있을 거라고 방심하면 후회할지 모릅니다. 고려할 수 있을 때 고려산에 가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