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유연근무제가 사실상 '반쪽 짜리'에 그치고 있다. 시중은행들이 직원 복지 증진 차원에서 유연근무제를 도입하고 있지만, 일부 직원들만 유연근무제 혜택을 볼 뿐 나머지 대다수 직원들은 꿈도 못 꾼다는 것이다.

은행권 유연근무제는 지난해 7월 신한은행이 '스마트근무제'를 처음 도입하면서 확산됐다. IBK기업은행도 출근시간 선택 근무제와 시차 출퇴근제 등을 운영 중이고 지난해 12월부터 일부 지점을 대상으로 유연근무제를 시범 도입한 KB국민은행도 이달 중 영업점을 확대할 계획이다. 우리은행도 일부 부서에서 유연근무제 시험 적용하고 있고, KEB하나은행도 6월 신사옥 입주와 함께 유연근무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유연근무제는 은행권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직원들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유연근무제를 향한 시중은행 직원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물론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출근할 수 있어 좋다"거나 "유연근무제가 시행된 후 인간다운 근로환경이 조성됐다" 등 긍정적인 반응을 내비치는 은행원들도 일부 있었지만, 취재과정에서 만난 대부분의 은행 직원들은 유연근무제는 허울 뿐인 제도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시중은행 영업점의 한 직원은 "본점 일부에서나 가능하지 영업점 차원에선 어림도 없다"며 "핵심성과지표(KPI)로 유연근무제 성과를 평가한다고는 하지만 영업점에서는 이 평가는 포기하고 다른 데서 점수를 잘 받으면 돼서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영업점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거나, 일부 직원들만 크게 만족하는 제도"라며 "기존의 만성화된 업무 방식 때문에 유연근무제가 은행 전체로 정착하진 못한 것 같다"고 했다.

직장인 익명게시판 앱(응용프로그램) '블라인드'에도 유연근무제와 관련된 불만 글이 여러 건 올라와있다. 게시글은 대부분 유연근무제가 영업점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본점에 근무하는 일부 직원들만 누릴 수 있는 제도인데다, 유연근무제를 빙자해 은행 영업시간을 늘리려는 사측의 꼼수가 보인다는 내용이다.

도입 취지 측면에서 보면 은행권에 유연근무제 확산되는 것은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다. 다만, 유연근무제가 '반쪽 짜리'라는 오명을 벗고 오롯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직원들의 아픈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는 사측의 태도가 절실하다. 모든 은행원의 입에서 유연근무제를 칭찬하는 얘기가 나올 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