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잔인한 4월이 시작됐다. 올 1분기 우리나라 상공의 미세먼지 농도는 최근 3년 중 가장 나빴다. 전국에 발령한 미세먼지 주의보도 86회로 최근 3년 평균 대비 30회 이상 늘었다. 미세먼지로 인한 각종 불만과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뾰족한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조선비즈는 '미세먼지를 막을 10년 대계를 만들자'는 케치플레이즈를 내걸고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는 중장기 해법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지난 8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사는 김나영(31)씨는 여의도 벚꽃 축제가 열린다고 해 나들이 계획을 세웠다가 돌이 갓 지난 딸과 한바탕 실랑이를 벌였다.

김 씨는 “미세먼지 때문에 딸한테 마스크를 씌우려 했더니, 딸이 답답해 벗으려 떼를 계속 썼다"면서 “걸음마가 한창이라 외출하며 이것저것 보고 느껴야 하는 시기인데, 외출할 때마다 전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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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뿌옇게 뒤덮은 미세먼지가 대한민국 시민의 평범한 일상을 뒤흔들고 있다. 가족끼리의 간단한 외출도 삼가는가 하면, 야외 카페 주인이 문을 닫고 자전거 출근족이 자건거를 포기하고 다시 자가용 차를 타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한국환경공단이 산출한 실시간 공기오염 측정 기록에 따르면, 지난 3월 12일부터 4월 10일까지 30일 동안 서울 지역의 당일 미세먼지(PM10) 등 대기오염 물질을 산술한 최대값이 ‘100’ 이하인 날은 단 5일에 불과했다.

30일 중 25일은 최대값이 100 이상이었고 서울 영등포구와 중랑구의 최대값은 무려 ‘189’에 달했다. 광주, 강원, 전북 지역은 지난달 20일 대기오염 ‘평균’이 각각 116, 113, 105로 세자릿수를 기록했다.

◆ ‘콜록콜록’ 잔인한 4월...감기 환자 10명 중 8명 호흡기 아파

울산에 거주하는 박철수(33)씨 가족은 미세먼지가 심해지는 4월이면 가족 전체가 스트레스를 받는다. 첫째 아들은 아토피로 고생하고 있고 아내는 천식을 앓고 있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올해는 아내가 둘째를 임신해 걱정이 더 크다.

박 씨는 아이의 아토피를 치료하고자 전국의 대학병원과 한의원을 돌아다녔다. 피부를 햇볕에 노출시키는 ‘햇빛소독’이 아기의 아토피 증상 완화에 그나마 도움이 됐는데, 올해엔 공기가 나빠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임신한 아내도 최근 천식이 심해져 집안에는 콜록콜록 기침소리와 아기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결국 박 씨는 한국을 떠날 생각마저 하고 있다. 박 씨는 “가족의 건강을 생각해 심각하게 이민을 고려하고 있다”면서 “이런 환경을 우리 자녀들에게 물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니 속상하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공기 오염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 수도 늘고 있다. 서울 상계동 연세라파의원의 경우 전년 3~4월 대비 환자 수가 30% 증가했다.

한재혁 연세라파의원 원장은 “감기 환자 10명 중 7,8명은 호흡기 계통 환자”라면서 “작년보다 공기가 안 좋아지면서 호흡기 계통 환자 비율이 늘었고, 가래가 끓는 증상과 함께 알레르기성 비염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서울 독산동 문지호 명이비인후과 원장은 “원래 환자가 증가하는 시즌이기도 한데, 3월부터 작년 대비 하루 평균 약 10명의 환자가 더 늘어났다”고 말했다. 문 원장은 “미세먼지가 심해지면서 치료를 해도 병이 잘 낫지 않아 전반적으로 치료 기간이 길어졌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최근 5년간 알레르기성 결막염 진료 정보 분석 결과에 따르면, 매년 약 180만명의 알레르기성 결막염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알레르기성 결막염 월별 진료 인원 추이

미세먼지가 많은 날은 안구 결막에 상처가 발생해 평소보다 쉽게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알레르기성 결막염 환자는 황사, 미세먼지 수치가 높은 3월부터 5월까지 진료 인원이 증가한 후 여름철 잠시 감소했다가 바람이 불고 건조해지는 가을에 다시 늘어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또 2015년 기준 시도별 미세먼지 농도가 심한 지역일수록, 인구 10만명 당 진료인원도 많은 것으로 나타나 미세먼지와 알레르기성 결막염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시도별 미세먼지 농도와 시도별 인구 10만명당 알레르기성 결막염 진료 인원 비교

◆ 자전거 출근 ‘포기’...야외활동 못해 어린이집 보내는 엄마들

수년째 자전거로 회사에 출·퇴근해온 경기도 의왕시 거주 이세학(35)씨는 올해 '자출족(자전거 출근 族)'을 포기했다.

이 씨는 "자전거로 출퇴근한 지 3년이 넘었는데 해가 갈수록 공기가 안 좋은 게 느껴진다"며 "운동도 하고 환경도 보호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자전거를 탔지만 올해는 미세먼지 때문에 오히려 건강에 나빠질 것 같아 포기했다"고 말했다.

서울 광화문에서 일하는 유 모 씨는 일주일 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있다. 그는 3월 말부터 목이 칼칼하고 열이 오르는 증상을 겪었는데, 딸한테도 병을 옮겼다.

유 씨는 “감기에 걸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 다른 애들도 옮을 수 있으니 못 보내고 있다”며 “최근에는 아이를 봐주는 이모와 남편까지 목감기 증세를 보여서 대형 공기청정기를 하나 더 샀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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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은 실외에서 하는 활동과 교육을 대폭 줄였다. 교사들은 미세먼지 정보를 확인해 실외활동 여부를 결정해 부모들에게 통보하는 일이 일상이 되고 있다.

목동에 위치한 크는나무어린이집 교사는 “아이들이 마스크를 쓰고 등원한다”며 “미세먼지 실시간 정보를 보고 ‘나쁨’이 뜨면 실외활동은 아예 안 한다”고 밝혔다.

또다른 어린이집 원장은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야외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며 “실외활동을 하는지 묻고 아이를 등원시키거나,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어머니들이 오후에 일찍 아이들을 데려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답했다.

서울 용산구에서 카페를 운영 중인 이현석(34)씨는 "날씨가 따뜻해졌으니 창문을 활짝 열어 손님들이 바깥 경치도 볼 수 있게 하고 쾌청한 분위기도 내고 싶은데 미세먼지 지수가 ‘보통’ 이상이다 보니 엄두가 안 난다"고 밝혔다.

서울 압구정동에 거주하는 박은지(26)씨는 “예전에는 백화점 의류 매장 등 사람들이 붐비고 먼지가 많은 곳에 가면 기침이 나왔는데, 요즘은 어딜 가든 늘 마른 기침이 계속 나고 숨도 크게 안 쉬어 진다”고 토로했다.

박 씨는 “마스크라도 챙겨쓰려고 종류마다 하나씩 사서 써보고 있는데 너무 불편하다. 특히 숨을 쉬고 뱉을 때 습기가 차는게 제일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 “대책 마련하라”...온라인 민심 폭발 일보 직전

온라인 상에서도 미세먼지에 대한 우려와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개설된 미세먼지 대책을 촉구하는 1호 카페 ‘미대촉’에 가입한 회원 수는 10일 현재 4만7890명에 이른다.

’미세먼지 대책을 촉구합니다’ 카페 회원들의 집회 현장

이 카페 회원들은 미세먼지에 대한 기본 상식뿐만 아니라 미세먼지 측정기와 공기청정기, 공기정화식물 등 각종 정보와 보고 싶은 자연 환경과 하늘 풍경 사진을 공유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립환경과학원을 방문하고 환경부와 4차례 면담을 했으며 현재까지 총 3차례의 집회를 열며 정부의 미세먼지 대책을 촉구해왔다.

닉네임 ‘용인 파란하늘’ 회원은 미국 기상청, 항공우주국(NASA), 세계기상예측시스템(GFS) 등에서 3시간마다 정보를 받아 업데이트하는 구글의 ‘어스 널스쿨(Earth Nullschool)’ 사이트를 통해 몇 개월 간 바람의 방향과 오염물질의 이동을 분석, 추측하는 글을 게재하기도 했다.

그는 중국의 지형과 고도, 바람의 이동을 고려해 "대흥안령산맥이라는 높은 지대가 서쪽에 있어서 오염물질이 중국 북쪽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한반도 머리 위쪽에는 중국 수도권에서 배출된 오염물질이 대흥안령산맥 병풍길을 따라 둥베이평원에 넓게 퍼지는 게 아닌가 싶다”고 썼다.

해당 게시물은 사실 여부가 입증되지는 않은 추측성 글이지만 큰 호응이 이어졌다. ‘이래도 중국 탓이 아니라고, 고등어 탓이라 하는 답답이들이 이글을 봤으면 좋겠다’, ‘지형, 고도에 관한 분석이 맞는 것 같다’, ‘서해에 저 산맥 높이만큼 방벽을 올리고 싶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중국인 한 가구당 자동차 한대가 필수인 시대가 되면 배기가스 제대로 관리했으면 한다’는 등의 댓글이 이어졌다.

매일 올라오는 일기예보 기사에는 “수년후에는 미세먼지 사망, 우리나라가 최고가 될 거다”, “중국에 대책을 요구해야한다”는 등의 댓글과 함께 미세먼지에 속수무책인 정부 당국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사진을 공유하는 SNS인 인스타그램에서마저 ‘미세먼지’ 키워드(#미세먼지)는 19만 건을 돌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