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인한 국정공백을 메우기 위한 차기 대통령 선거가 29일 앞으로 다가왔다. 짧은 선거운동 때문에 각 후보들이 내세운 공약과 정책에 대한 검증이 부실하다는 지적이 많다. 정책 토론 없이 네거티브 공방과 선거 구도에 대한 이야기만 무성하다. 조선비즈는 각 대선후보들이 내세운 공약의 실행 가능성을 검증해보자 한다. [편집자 주]

- " 가처분 소득 대비 150% 이내로 관리"…文, 가계대출 총량관리 목표 제시
-지난해 말 가처분 소득대비 가계부채 비율 178%…신규대출 중단해야 목표 달성
-전문가 "목표치 재검토해야…과도한 부채 다이어트로 인한 부작용 방지해야"

한국의 가계부채 증가율은 지난 2010, 2011년 9%대로 상승한 후 2012년부터 5%대로 낮아졌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5.25%에서 2%까지 낮춘 것이 주택대출을 중심으로 한 가계부채 급증으로 이어졌으나, 이명박 정부 후반 금융위원회가 가계대출 억제 정책을 구사하면서 증가율이 주춤해졌다. 2010년 4% 물가상승률에 놀란 한은이 연 2%였던 기준금리를 5차례 인상을 통해 연 3.25%로 끌어올린 것도 가계부채 증가율을 주춤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가계부채 폭증세는 2014년 최경환 경제팀 등장 이후 재연됐다. 얼어붙은 부동산 경기를 ‘정상화’ 시킨다면서 최경환 경제팀이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금융규제를 완화했고,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한은이 기준금리를 8차례 인하해 연 1.25% 수준으로 낮춘 것이 가계부채 급증 사태를 불러왔다. 지난 2013년 6%대였던 가계부채 증가율은 지난해 10% 수준으로 상승했다.

국제비교를 통한 한국의 가계부채 수준은 169%(2015년 말 기준)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129.2%)보다 약 40%포인트 높다. OECD 주요국 가운데 영국(149.5%), 미국(111.6%), 독일(92.9%) 등 선진국은 한국보다 낮다. 명목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1%로 덴마크(133%), 영국(93%)에 이어 3번째로 높다.

자료=조선일보DB

◆ 文, 가계부채 총량제 제시…”가계빚 줄이는 정책 추진할 것”

대통령 선거에 나선 대선주자들도 가계부채 문제의 심각성에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대선 주자 중 가계부채 관련 공약을 가장 먼저 제시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가계부채 총량제’라는 카드를 빼들었다.

문 후보는 지난달 16일 서울 마포구 서울신용보증재단에서 열린 캠프 비상경제대책단 회의에 참석, 가계부채 증가율을 소득증가율보다 낮게 유지하고 가처분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50%를 넘지 않도록 관리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이 밖에 ▲대부업 이자율 상한 20% 제한 ▲국민행복기금의 회수불능채권 채무 ▲주택 안심전환대출 제2금융권 확대 ▲ DTI 대신 발전된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을 여신관리지표로 활용 등의 공약도 제시했다.

문 후보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정책 실패가 가계부채의 원인인데 부동산 경기 부양을 위해 ‘빚내서 집 사라’고 재촉했기 때문”이라며 “우리 경제를 잘 흐르게 하려면 가계부채부터 해결해야 한다”면서 이같은 방안을 제시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가 1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신용보증재단에서 열린 비상경제대책단 2차 경제현안 점검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문 후보가 가계부채 총량제를 들고 나왔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가계 부채가 늘어나는 것을 소득 증가속도 안에서 관리하겠다는 정책은 가계부채 절대 규모를 늘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지금까지 가계부채에 대한 정책 기조는 경제성장 저해하지 않는 수준에서 관리하겠다는 방향이었다. 가계부채 증가율을 경상GDP(국내총생산) 증가율(실질 GDP 증가율과 물가상승률의 합) 이내로 관리하겠다는 정책이 사용됐다. ‘경제가 성장하면 빚이 느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인식에 기반한 정책이다. 경제성장으로 인해 소득이 늘어나면 상환 능력이 생긴다는 점을 주목한 것인데, 과도한 부채 다이어트는 경제성장을 해친다는 상황 판단이 깔려있다.

이 때문에 가계부채 총량 관리를 도입하는 것은 가계부채에 대해 종전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로 접근하겠다는 신호다. ‘빚이 늘어나는 것을 통제 하겠다’는 의미다. 박종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가계부채가 엄청난 규모로 늘어난 상황이기 때문에 소득을 늘려서 빚을 갚도록 하겠다는 정책은 통하지 않는다”면서 “미국의 금리인상으로 인해 금리가 전반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가계부채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는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

◆ 가계부채 가처분소득 150% 이내 관리 가능하나

그러나 문재인 후보가 내세운 가계부채 총량관리 목표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회의적인 시각을 보인다. 가처분 소득 대비 150%라는 가계부채 관리 목표가 사실상 실현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가계부채의 국제 비교 수준인 한국은행 자금순환표를 기준으로 한 가처분 소득 대비 가계부채(자영업자와 개인부채 합) 비율은 지난해 말 178.8%에 이른다. 가처분 소득은 875조3000억원인데 비해 가계부채는 1565조8000억원에 이른다. 자영업자 부채가 제외된 가계신용(가계대출과 판매신용 합계)은 1344조2000억원에 이른다. 가처분 소득 대비 가계신용은 153%에 이른다. 어떤 통계를 사용하더라도 문 후보 측이 제시한 가처분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 150%는 초과한 상황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가처분소득(875조3000) 대비 150% 목표를 맞추기 위해서는 가계부채를 1313조원으로 묶어야 한다. 자금순환표 상 가계부채보다는 약 250조원 가량, 가계신용 통계치를 사용해도 목표치가 30조원 가량 적다. 가계부채를 한꺼번에 이정도로 줄일 수 있는 수단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자료 : 한국은행

차기 대통령 임기인 향후 5년 이내로 목표 달성 시기를 설정한다고 해도 가계부채 총량관리 목표 가처분 소득 대비 150%를 지키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 2008년 이후 가처분 소득은 연 평균 4.8% 증가한 반면 가계부채는 7.8% 증가했다. 연 평균 증가율이 유지될 것을 가정하면 차기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022년 국민 가처분 소득은 1100조원 수준일 것으로 추정된다. 가처분 소득 대비 150%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가계부채가 1650조원 수준에 그쳐야 한다. 향후 5년 동안 가계부채 증가율을 연평균 1%대로 묶어야 달성 가능하다.

한 민간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연평균 8%에 육박한 가계부채 증가율을 1% 수준으로 떨어뜨리기 위해서는 신규대출을 중단하고 기존 대출의 상환만 이뤄지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가계에 자금이 공급되지 않으면 주택 거래가 끊기기 때문에 경기가 급격하게 위축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연구위원도 “가계부채를 더이상 늘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정책 방향은 타당하지만, 수치를 목표치로 내세우면서 달성하겠다는 방식은 재검토해야 할 것 같다”면서 “가계부채 문제는 경기 흐름 등을 감안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도 함께 추진하는 등 종합적인 관점에서 대응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가처분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목표치로 사용하는 방식보다는 LTV·DTI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행 60%와 70%인 총부채상환비율(DTI)과 담보인정비율(LTV)을 축소하는 조치가 더욱 효과적이라는 주장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 정부가 완화한 LTV·DTI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며 “현행 70%인 LTV를 선진국 수준인 50% 이하로 축소해야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축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