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자동차 부품을 수출하는 D사는 초비상이다. 이전에 3~4일 걸리던 중국 통관 기간이 '사드 사태' 이후 3~4주로 대폭 길어졌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인도와 동유럽 등 새로운 거래처를 알아보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자동차 부품 수출업체 E사 관계자는 "세관 직원이 40피트 컨테이너를 일일이 전수 검사하고 발송장을 한 장 한 장 다 들여다보고 있어 통관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통관 기간이 길어지면 부품을 받는 중국 현지 우리 완성차 업체들 생산 공정에 차질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원칙대로 할 뿐"이라는 태도라 하소연하기도 어렵다.

그동안 롯데 등 유통업에 집중했던 중국 보복 조치가 수출 제조업체 전반으로 번지면서 국내 업체들이 고전하고 있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중국은 과거 2012년 일본산 제품 불매운동 때처럼 뭔가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듯하다"면서 "구시대적 관행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불매 운동과 '쇼비니즘' 결합

중국 업체들이 '쇼비니즘(배타적 애국주의)'에 가세하면서 국내 업체들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국내 가전업체 관계자는 "현지 대형 전자 유통업체들이 제품을 가져가지 않고 있거나 바이어가 구매 관련 미팅을 취소하는 사례가 부쩍 많아졌다"고 했다.

식품업체 F사는 일부 중국 유통업체가 신제품 입점을 거부하고 있고 입점 관련 회의도 아무런 설명 없이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바람에 당황하고 있다. 한 식품업체 올 1분기 어육 소시지 대중(對中) 수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40% 줄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제라는 사실이 노출되면 판매에 지장을 받는다는 이유로, 매장에서 'Made in Korea' 인증표를 가리는 고육지책까지 나오고 있다.

중국 한 자동차 업체는 한국 차를 주문했다가 취소하면 '애국 선물'을 증정하겠다고 선동하는가 하면, 독일 폴크스바겐 중국 딜러들은 한국 차를 팔고 자사 차량을 구매하면 3000~1만6000위안(50만~260만원)을 할인해주는 특별 판촉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여파 등으로 베이징현대 일부 딜러점은 3월 매출이 작년 같은 달보다 20% 정도 감소했다. "한국 차를 사면 중국 관청에서 등록을 빨리 안 해준다"는 확인 안 된 소문도 급속하게 퍼지고 있다.

◇조직적인 비관세장벽 강화 우려

'비관세장벽'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이 작년부터 자국 배터리 업체를 키우겠다는 전략 아래 인증 기준 등을 높게 만든 다음 한국 등 외국산 배터리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자, 값이 상대적으로 비싸지면서 중국산 제품과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현지에서 배터리를 조립 생산하는 SK이노베이션 베이징 합작 공장은 올 1월 가동을 중단했고, 삼성SDI와 LG화학은 배터리 생산 공장 가동을 사실상 중단하거나 가동률이 대폭 하락한 상태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사드 이전에 이뤄진 정책 결정이 원인이지만 사드 이후 상황이 더 악화되면서 해결이 난망하다"며 "언제 정상화될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현지 진출 기업인들은 "사드문제를 계기로 한국에 대한 비관세 장벽을 더 강화할 경우, 수출 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물증 남기지 않는 교묘한 보복조치

중국은 국제 규정을 어기고 있다는 물증은 잘 남기지 않는다.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를 상대로 세무 조사에 나서고 소방법을 적용해 단속했지만 이는 중국 국내법에 따른 것이라 문제 삼기 어렵다. 또 통관과 검역 강화에 대해선 정당한 규제 권한을 행사했다고 하면 대응에 한계가 있다. 한 중국 수출업체는 "정부는 대선 정국 속에서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기업이 직접 중국 당국에 항의하면 눈 밖에 나 더 큰 보복을 받을까봐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말했다.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는 "안보 쟁점을 무역 보복으로 해결하려는 중국 조치에 대해 국제적으로 계속해서 부당하다는 점을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허윤 서강대 교수도 "우리 기업에만 계속 문제가 발생한다면 이를 차별 행위로 보고 WTO에서 다툴 수 있다"며 "WTO 제소 요건을 제대로 갖췄는지, 패소할 가능성은 없는지 좌고우면하는 사이 우리 기업 피해는 커지고 있으니 우선 WTO에 제소해 중국을 압박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