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령 울산과학기술원 원전해체핵심요소 기술 연구센터장

올해 6월 원자력발전소(원전) 고리 1호기가 영원히 정지됩니다. 부산광역시 기장군에 있는 고리 1호기는 1978년 4월 우리나라 최초로 상업 운전을 시작한 원전입니다. 설계 당시 수명이었던 2007년 6월이 지나면서 안전성 검사 등을 거쳐 한 차례 계속(연장) 운전을 허가받고 10년간 더 가동됐습니다. 이 원전이 가동을 멈추면 해체 수순을 밟게 됩니다. 수십년 동안 엄청난 방사선을 내뿜어온 거대한 장치를 해체하는 일이다 보니 사회적 관심도 높습니다.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원전을 해체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본과 기술력이 필요합니다. 이제 원전 건설뿐 아니라 해체까지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원전 해체는 또 다른 시작

세상 만물이 그렇듯 원전에도 수명이 있습니다. 하나의 원전은 보통 30~40년간 전기 에너지를 생산합니다. 더 이상 안전성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가동을 중지하고, '폐로(廢爐)' 과정에 들어갑니다. 폐로는 단순히 원전을 정지시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원자로 건물을 포함한 다양한 시설과 설비, 장치들을 일련의 계획에 따라 철거하고 부지를 원전이 지어지기 전의 상태로 되돌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폐로는 원전을 철거해 녹지로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원전 해체는 해체 계획을 세우는 것부터 인허가, 직접적인 해체 작업, 환경 복원 등의 과정을 거칩니다. 이런 과정을 모두 거치는 데에는 20년 이상이 걸립니다.

폐로는 크게 제염(除染), 절단·해체, 방사성폐기물 처리·처분, 환경 복원 등 네 단계로 진행됩니다. 이 중 가장 기본적인 단계가 제염입니다. 제염은 세제로 그릇을 깨끗이 닦아내는 것처럼 원전 구조물의 방사능 오염을 제거하는 일입니다. 원자로를 비롯한 다양한 원전 구성물에 묻은 방사능 물질을 벗겨내기 위해 사포로 문지르거나 유기 용매를 이용해 벗겨내기도 합니다. 이런 물리적·화학적 방법 외에도 전기로 화학반응을 일으켜 불순물을 없애는 전기화학적 제염과 초고압·고온 상태에서 불순물을 제거하는 플라스마 제염 기술이 이용될 수 있습니다.

절단·해체는 원전 구성품과 구조물을 잘라내는 과정입니다. 대형 톱날 등을 사용해 기계적으로 잘라내는데, 고방사능 오염 구역인 원자로의 경우에는 로봇을 대신 투입합니다. 사람이 들어가면 방사선에 피폭(被曝)될 수 있기 때문에 멀리서 로봇을 조종하면서 절단과 해체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제염과 절단·해체 과정에서 나오는 방사성 폐기물은 사람에게 해가 없도록 안전하게 처리돼야 합니다. 방사성 폐기물을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데는 부피를 줄이고 재활용하는 기술도 중요합니다. 처리해야 할 폐기물 부피를 줄일수록 전체 비용을 아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콘크리트나 금속 등은 제염을 통해 방사능을 현저히 낮추면 자원으로 다시 쓸 수 있어 관련 기술 연구도 활발합니다. 해체가 완료된 원전 부지는 최종적으로 남아 있는 방사능 측정을 하고 안전성 평가를 하는 등 복원 과정을 거칩니다. 원전 해체 후에도 원자로가 세워졌던 땅은 방사성 물질에 오염돼 있을 수 있습니다. 이를 복원하기 위해서 토양을 직접 제염하기도 합니다. 또 땅속이나 주변에서 흐르는 물속의 방사능을 현장에서 직접 측정하면서 원전이 사라진 부지 내에 방사선학적으로 불안한 곳은 없는지 지속적으로 감시하는 기술도 필요합니다.

기존 산업기술 '방사능 환경'에 적용

원전 해체 기술들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일반적인 산업용 기술을 '방사능 환경'이라는 특수 상황에 맞게 적용해 사용합니다. 화학 분야에서 쓰이는 오염물 제거 기술이나 기계·조선 분야에서 사용하고 있는 제작·절단·철거 등의 기술을 응용해 방사능 환경에 적합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반대로 원전 해체 과정에서 파생한 기술을 화학이나 기계·조선 분야에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이나 독일, 일본 등에서는 금속과 콘크리트 절단을 위한 기계적·열적 절단 공법을 원자로 압력용기와 방사선 차폐 콘크리트 해체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로파를 이용한 절단, 폭약을 이용한 제한 발파 공법, 유압을 이용한 고압 물 제트 절단 공법 등이 원전 해체 과정에서 개발돼 산업 현장에도 적용하고 있습니다. 제염 기술로는 산화환원 제염 방법이 새로 개발됐습니다.

2015년 한국수력원자력의 원전 폐로 비용 평가에 따르면 원전 1기를 해체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은 6347억원 정도로 추정됩니다. 여기에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 비용과 사용후핵연료 관리 비용, 물가 상승률까지 고려하면 원전 1기의 폐로 비용은 1조원에 이를 전망입니다. 국내에 가동 중인 원전 25기 중 2030년까지 설계 수명이 만료되는 원전이 12기인 만큼, 향후 10여년간 국내 원전 해체 시장 규모만 12조원에 이른다는 계산입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제시한 원자력 시설 폐로 비용 평가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가동 중인 원전을 모두 해체하는 비용이 무려 1848억달러(약 200조원)에 이릅니다. 여기에 연구용 원자로, 핵연료주기시설, 방사선시설, 군수시설을 포함한 원자력 시설을 해체하는 것까지 포함하면 전체 원전 해체 시장은 약 9000억달러(약 1000조원)에 이른다고 추산합니다.

전 세계가 초기 단계

예상되는 시장 규모에 비해 원전 해체 산업의 성숙도는 낮은 편입니다. 아직까지 해체 수순을 밟은 원전 수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2014년 기준으로 전 세계 438개의 원전 중 영구 정지된 원전은 150기입니다. 이 중 해체가 완료된 원전은 19기밖에 되지 않습니다. 원전 해체를 경험해 본 나라도 미국(15기), 독일(2기), 영국(1기), 일본(1기)뿐입니다. 먼저 원전 해체를 진행했던 나라들은 고효율의 제염 기술과 방사성 폐기물이 적게 발생하는 절단 기술 등을 개발하는 데 주력해 왔습니다. 독일의 프로이센 일렉트라와 영국의 NDL, 프랑스의 OKRIDGE, 미국의 에너지 솔루션PNNL 등은 우리나라의 고리 1호기 해체 사업에 뛰어들기 위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원전은 우리나라 전체 전력의 30%를 감당하고 있는 핵심 에너지원입니다. 하지만 동일본 대지진에 이은 원전 사고 등으로 인해 안전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 후보의 원전 관련 정책도 탈핵(脫核)과 원전 유지 등으로 갈리고 있습니다.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이 되든 중요한 것은 언젠가는 폐로를 피할 수 없다는 겁니다. 폐로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