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자 윤나래(가명·26)씨는 지난해 7월 고용노동부 ‘취업성공패키지’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윤씨는 서울 소재 4년제 사립대학교를 졸업했고, 토익 950점에 컴퓨터활용능력 자격증 등의 ‘취업 스펙’을 가지고 있었다. 번번이 최종 면접 문턱을 넘지 못해 좌절하다 결국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다. 윤씨는 서울의 한 고용센터에서 희망 직업을 얻기 위해 준비해야 할 자격증 등을 상담한 뒤 고용센터에서 취업 알선을 받으려고 했다. 그러나 상담사는 “이곳에서 연결해줄 수 있는 일자리에는 절대로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니 좋은 기업은 알아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상담사는 “취업성공패키지에서는 대부분 임금이 낮은 직업이라 고졸 구직자 등 스펙이 상대적으로 낮은 지원자에게 적합하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작년 1월부터 약 8개월 동안 취업성공패키지에서 직업 훈련을 받은 뒤 한 중소기업에 취업했던 김모(27)씨는 올해 2월 약 5개월 만에 직장을 그만뒀다. 회계 직군에서 일하기를 희망했던 김씨는 취업성공패키지를 통해 관련 교육을 받았고, 취업 위탁 기관을 통해 회계 사무직으로 취업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김씨가 입사한 뒤 한 일은 문서 정리나 직원들의 휴가 관리 등 ‘단순 사무 업무’뿐이었다. 한 달에 손에 쥐는 돈은 140만원이 채 되지 않는 최저임금 수준이었다. 김 씨는 “막상 취업하고 나니 회계 관련 업무는 전혀 하지 못했다”라며 “회사에서도 처음부터 회계 업무를 시키려 뽑은 것은 아니었다고 해서 곧바로 일을 그만뒀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 업무인 줄 알았다면 6개월 이상 직업 훈련에 시간을 버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용노동부는 2009년부터 취업성공패키지를 진행하고 있다.

정부가 청년 등 취약계층 고용을 돕겠다며 시행하는 취업성공패키지가 구직자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정부가 알선하는 일자리가 질 낮은 일자리인 경우가 대부분인데다 상담 내용은 형식적이고, 프로그램에서 제공하는 직업 훈련 교육도 ‘스펙 쌓기’ 위주라 실제 취업 현장에서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취업성공패키지로 취업해도 1년 이상 근속은 절반도 안 돼

취업성공패키지는 2009년 고용노동부가 시작한 취업 취약계층 지원 프로그램이다. 상담과 직업훈련, 취업알선까지 3단계 고용 서비스로 구성돼 있다. 프로그램 참여자가 취업에 성공할 경우 ‘취업성공수당’을 지급하기도 한다. 취업성공패키지는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눠 운영되고 있다. Ⅰ유형의 경우 생계급여수급자나 중위소득 60%이하 가구원 등을 대상으로 한다. Ⅱ유형은 미취업 상태인 청년들도 신청할 수 있다.

31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작년 취업성공패키지에 참여한 청년은 19만2738명, 저소득층·취약계층은 14만5359명, 장년층은 2만8066명이었다. 이들 중 취업에 성공한 청년은 67.6%인 5만4365명이었고, 저소득층·취약계층과 장년층은 각각 80.4%(8만367명), 74.8%(1만1989명)이었다.

그러나 취업성공패키지를 통해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1년 이상 고용을 유지한 이들은 절반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성공패키지를 통해 취업한 청년 중 48.9%만이 1년 이상 직장을 다녔고, 저소득층과 장년층은 각각 45.1%, 49.8%에 그쳤다. 취업 성공 후 1년도 안 돼 절반 이상이 직장을 떠날 정도로 대부분의 취업 연계 일자리가 불안정하고 만족도가 낮다는 뜻이다.

서울연구원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12월 전국 18~29세 713명을 대상으로 취업성공패키지가 도움이 됐는지를 물은 조사에서 ‘도움이 됐다’는 응답은 39%에 그쳤다. 응답자들은 취업성공패키지에 불만족한 이유로 취업능력 향상 미흡(48.6%), 교육 및 훈련과정의 단순함(43.2%), 훈련 기관 선택 제약(40.5%) 등을 꼽았다.

◆ 취업 사이트 정보는 나도 아는데...상담사 따라 결과도 ‘복불복’

취업성공패키지 참가자들은 정부의 일자리 알선에 가장 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프로그램 참가자에게 일자리를 소개해주거나 직접 기업을 연결해 취업을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직접 기업 연결방식보다는 구인 업체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취업포털에서 제공하는 구인 공고를 전달해주는 수준이다.

그나마 이곳에서 소개해주는 일자리도 임금이 낮거나 단순 업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취업성공패키지 참가자들은 정부의 취업알선에 의지하기보다 본인 스스로 구인 정보를 모아 취업하고 있다.

취업성공패키지 참가자 윤모(30)씨는 “정부에서 소개한 취업 알선 업체를 통해 여러 개의 기업을 소개받았지만 최저 임금밖에 주지 않거나 희망 직군과는 상관없이 단순한 사무 업무만을 필요로 하는 기업이 많았다"며 “이런 기업은 다른 구인 업체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취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DB

취업성공패키지에서 제공하는 상담이나 직업훈련도 실제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취업준비생 강지영(25)씨는 “취업성공패키지에서 직업훈련 교육을 추천해줬지만, 대부분 일정 기간 수강하면 자격증을 주는 수업들이었다”며 “단순히 ‘스펙 쌓기’용 교육이 많아 취업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09년 1월부터 2015년 10월까지 취업성공패키지 참가자 26만6332명을 대상으로 이수한 직업훈련 직종과 고용보험 취득 직종을 살펴본 결과 약 17.75%(직업분류 소분류 기준)만이 일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취업자 82.25%는 취업성공패키지로 받은 직업훈련 직종과 다른 직종에 취업한 셈이다. 직업분류를 중분류로 확대하더라도 일치율은 34.05%에 그쳤다. 특히 대학교 졸업 이상 고학력자일수록 취업성공패키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적고, 직업훈련과 실제 취업 직종 간 일치 가능성은 작았다.

취업성공패키지 참가자는 진로설정과 능력증진을 위한 직업훈련 및 교육, 마지막 취업 알선까지 고용노동부에서 연결해준 상담사와 함께하는데, 상담사의 태도나 업무 성숙도에 따라 서비스의 질이 천차만별이다. 어떤 상담사를 배정받느냐에 따라 취업 성패가 갈리는 ‘복불복’인 셈이다.

구직자 서도훈(27)씨는 “약 3주에 걸쳐 상담을 진행하기로 되어있었는데 두 번째 상담에서 갑자기 상담사가 바뀌는 바람에 처음부터 상담을 다시 해야만 했다”며 “의욕이 없고 상담 실적 채우기에만 급급한 상담사를 배정받으면 취업성공패키지를 안 하느니만 못하다”라고 말했다.

◆ 정부도 문제점 인지...“높은 임금 주는 기업에 인센티브 제공”

정부도 이런 문제점을 알고 개선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지금까지 취업성공패키지를 운영하며 일자리 위탁기관을 평가하는 기준을 ‘근속기간’에 두었기 때문에 일자리의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며 “올해부터는 임금 수준이 높은 기업에 취업하는 참가자가 많을수록 취업을 알선하는 민간위탁 업체가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평가 기준을 바꿨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도 고용 시장이 살아나야만 질 좋은 일자리를 확보할 수 있다고 본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우리나라 고용 구조상 일자리 부족을 호소해 정부가 수시로 구직자와 연결해줄 수 있는 기업은 높은 임금을 줄 수 없는 중소기업이 많다”라며 “구직자가 원하는 수준의 임금을 주는 일자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일자리 수준 자체가 높아져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실업률 해소를 위해 올해 취업성공패키지 예산을 3305억원으로 작년보다 약 170억원 늘렸다. 장애인 취업 성공패키지 예산도 110억원 규모로 신설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실업자 수는 135만명으로 2015년 2월보다 3만3000명(2.5%) 늘었다. 실업률은 5.0%로 전년 같은 달보다 0.1%포인트 상승하며 2월 실업률로는 16년 만에 최대치를 보였다. 이 중 청년실업률은 12.3%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