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국내 자산 운용사들의 당기순익은 6690억원으로 사상 최대.'

펀드 투자자 이모(45)씨는 최근 이런 뉴스를 접하고 분통이 터졌다. 이씨가 가입 중인 국내 주식형 펀드는 지난해 마이너스(-)20%로 곤두박질쳐서 지갑 열기가 무서울 정도인데, 펀드 운용사들의 살림살이는 반대로 활짝 펴졌기 때문이다. 이씨는 "고객인 나는 쪽박인데 운용사는 대박이라니 이건 뭔가 크게 잘못됐다"면서 "내 계좌는 마이너스인데 수수료는 따박따박 떼어가다니 벼룩의 간을 빼먹는 것도 정도가 있지, 펀드란 상품 자체가 싫어진다"고 말했다.

이씨와 같은 생각을 가진 앵그리머니(성난 자금)가 늘어나자, 금융회사들이 운용 성과에 따라 비용을 차등 지불하는 이른바 '성과 연동형 금융 상품'을 속속 출시하고 있다. 운용 성과가 기대했던 것만큼 좋으면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반대로 성과가 저조하면 기본 비용만 내거나 아예 절반 수준까지 깎는 방식이다. 기존에는 금융 상품 운용 결과가 좋든 나쁘든 상관없이 고객은 정률 방식으로 비용을 내야 했다.

이환태 금융투자협회 자산운용지원부장은 "투자자가 금융 상품에 가입하면서 비용을 지불하는 이유는 그에 걸맞은 높은 성과를 기대하기 때문인데, 부진한 상품에도 같은 비용을 내야 해서 실망한 투자자들이 많았다"면서 "성과 연동형 상품은 수익이 별로 나지 않거나 마이너스가 났을 때의 투자자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첫 성과 연동형 상품 완판… 7일 만에 목표 달성해 청산

국민은행은 지난 7일 목표 수익을 달성하지 못하면 반값 수수료만 받는 '착한 신탁'이란 상품을 내놨다. 주식시장에 상장되어 있는 고배당주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하는데, 가입 후 6개월 동안 목표수익률에 도달하면 1%의 수수료를 내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수수료를 절반만 내는 구조다. 김창원 KB국민은행 전무는 "상품을 출시하자마자 판매 한도가 꽉 찼고, 운용을 시작한 지 1주일 만에 목표 수익(3%)을 달성해 수익 실현 후 펀드가 청산됐다"면서 "고객 입장에선 손해볼 게 없다보니 호응이 좋아 다음 달에도 비슷한 유형의 상품을 출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민은행은 30일까지, KB증권은 31일까지 성과와 보수가 직접 연동되는 펀드 2종도 판매한다. 가입 후 6개월 이내에 목표 수익률(4~6%)을 달성하지 못하면 판매보수가 절반으로 줄고, 1년까지도 달성 못하면 줄어든 판매보수에서 50% 더 깎아주며, 운용보수도 절반만 내도록 한다.

신한은행이 다음 달 10일 출시하는 '동고동락(同苦同樂) 신탁' 역시 성과보수제를 도입한 신개념 상품이다. 상품별로 목표 수익률(4~6%)이 정해져 있는데, 기존 상품(1.7%) 대비 총보수가 0.9% 정도로 저렴하다. 대신 가입 후 2년 동안 목표 수익을 달성하면 성과보수(0.3%)를 더 내야 한다. 물론 목표 수익을 찍지 않으면 내지 않아도 된다. 고객 입장에선 금융회사가 운용을 잘해서 단시간에 목표 수익을 올려줬으니 금융회사에 보너스를 주는 셈이다.

노상규 신한은행 팀장은 "성과보수형 금융 상품은 고객이 목표 수익을 올려야만 은행 수익도 늘어나는 일종의 상생(相生)형 상품"이라면서 "은행 고객들의 보수적인 성향을 고려해 전체 자산의 20%는 원금 보장형 상품을 편입해 안전성을 강화한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도 다음 달 중 성과 연동형 신탁 상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약속한 성과 못 거두면 수수료 반값으로

지난해 국내 주식형 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0.59%로, 1년짜리 정기예금 이자에도 못 미쳤다. 투자자들 사이에선 이제 '돈을 까먹으려면 펀드를 하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펀드 성과가 좋을 땐 0.5~1%씩 수수료로 떼여도 별 상관이 없지만, 원금을 훼손한 양심불량 금융회사에 수수료를 제값 다 주기엔 아무래도 심기가 불편하다.

반면 일반인들이 가입하는 공모펀드는 성과에 따라 보수를 달리 내는 상품이 전무했다. 성과보수 제도가 도입된 공모펀드는 운용사들이 고수익을 올리려고 위험하게 운용할 수 있다고 우려해 금융 당국이 까다롭게 규제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모펀드의 매력도가 갈수록 떨어지면서 펀드시장 전체가 침체되자, 금융 당국이 앞장서서 규정 완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다음 달쯤엔 공모펀드에서도 성과에 따라 비용을 내는 성과보수형 상품들이 대거 등장할 전망이다.

현재 국내에서 주식형 공모펀드의 평균 운용보수는 약 0.5%인데, 성과가 부진하면 반값으로 줄어드는 구조다. 삼성자산운용은 이르면 다음 달 국내 첫 성과보수형 공모펀드인 '삼성글로벌ETF로테이션 펀드'(가칭)를 내놓을 계획이다. 목표 수익률(5%)을 달성하면 운용보수를 전부 받지만, 그렇지 못하면 기본만 받는다. 가령 2000만원을 펀드에 투자할 경우 일반펀드는 성과와 상관없이 운용보수로 1년에 약 10만원을 내야 한다.

하지만 성과보수형 펀드는 목표 수익률을 달성하지 못하면 보수가 대폭 낮아져, 수익률이 부진한 경우엔 1년에 4만원만 내면 된다. KB운용도 5월쯤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절대수익추구형과 자산배분형 상품 2종을 내놓을 예정이다.

서재영 한투운용 펀드매니저는 "저수익·저금리 상황에선 비용에 민감한 투자자들이 늘어나므로 성과 연동형 펀드는 대세가 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매니저가 더 나은 성과를 내려고 노력하려는 유인이 생기게 되므로 향후 펀드별 성과 차별화도 두드러질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