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에 사는 오승현(23·남)씨는 얼마 전 여자친구와 색다른 데이트를 경험했다. 서울 4대 고궁 중 하나인 경복궁과 인사동 일대를 한복 차림으로 산책한 것이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한복 데이트 '인증샷'도 찍고, 인스타그램·카카오톡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한복'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사진도 올렸다. 스마트폰 배경화면은 한복을 차려입은 여자친구 사진으로 바꿨다.

오씨는 "평소 친구나 주변 사람들이 한복을 차려입고 우정사진 찍는 걸 보면서 '저게 그렇게 재밌나'싶었는데, 막상 해보니까 색다른 재미가 있어서 또 입고 놀러오고 싶다"며 "어렸을 때 이후 한복을 입은 적이 없지만 생각보다 편하고 멋스럽다"고 말했다.

몇년 전부터 불어온 '한복 바람'이 좀처럼 수그러들 기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의 '흐드러지다', 덕성여자대학교의 '꽃신을 신고' 등 한복 입기를 장려하는 동아리까지 생겨나는 추세다. 여기에 정석원·백지영 부부, 유지태·김효진 부부 등 유명 연예인들이 개량 한복을 입고 촬영한 웨딩화보까지 인기를 끌면서 생활·패션한복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지난 27일 오후 한복 차림의 내·외국인 관광객들이 서울 종로구 경복궁을 찾았다.

◆ 2030 젊은층·외국인 사이에서 한복 인기 몰이…한복 드레스 등 퓨전한복 찾는 이도 늘어

'한복 열풍'의 시작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3년 문화재청은 한복을 입은 시민들을 대상으로 서울 4대 고궁과 종묘 등을 무료 입장을 허용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한복 무료 입장 실시 이후 고궁 관람객 수는 꾸준히 늘어났다. 지난 2015년 경복궁과 창경궁 야간개장 기간(2015년 4월 30일~6월 2일)에는 전체 관람객 7만6000여명 중 약 16%(1만1986명)가 한복을 입은 것으로 집계됐다.

페이스북 등 SNS에 사진을 올리는 '인증샷' 문화도 한복 열풍에 한몫했다. 인스타그램, 네이버 블로그에서 '한복'을 검색하면 관련 게시글만 각각 66만, 140만개가 넘는다. 대부분 경복궁이나 북촌 한옥마을에서 한복을 빌려입고 찍은 사진이다. 관람객들이 여러 한복 대여 업체를 이용해보고 직접 쓴 후기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10월 친구들과 경복궁 야간개장 행사에 참가한 안소희(23·여)씨는 "행사 전날 인터넷에서 괜찮은 한복대여업체를 검색했다"며 "가격대별로 치마·저고리 종류가 많고, 직원이 옷 입는 법부터 머리 스타일링까지 친절하게 도와준다는 곳을 잘 찾아 이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거리를 물들인 한복을 보고 체험을 결심하는 외국인 관광객도 많다. 지난 27일 삼청동 인근에서 만난 모에 미야모토(24·여)씨는 "일년에 한번씩은 부모님과 쇼핑하러 한국에 오는데, 주로 명동 쪽에만 머물러서 이런게(한복 체험) 있는 줄은 어제 처음 알았다"며 "한복 입은 사람 아무나 붙잡고 '어디 가면 이렇게 예쁜 옷을 입어볼 수 있냐'고 물어봤다"고 말했다.

경복궁 인근에 위치한 '구르미한복' 관계자는 "평일에는 외국인 이용객이 많고, 주말에는 내국인 이용객이 많다"며 "확실히 일본이나 동남아 지역에서 온 이용객들이 전보다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복궁 인근 한복 대여 매장 외부 전경

덕분에 '고궁 특수'를 누리는 한복대여업체들은 하루하루 행복한 비명 지르기에 바쁘다. 인사동에서 한복대여업체 '오늘하루한복'을 운영하는 강인우 대표는 "하루에 150~200명 정도의 이용객이 방문한다"며 "성수기에는 300~400명 가까이 온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이어 "고궁 야간개장시에는 사람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오는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경복궁과 인사동 일대 한복대여업체들의 평균 대여 시간은 2시간이며 가격대는 2만원대다. 이용객이 몰리는 날에는 업체당 하루 평균 최대 800만원의 매출을 올린다.

전통한복 업계도 생활·패션한복의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 얼마전 결혼한 가수 바다가 이용한 걸로 알려진 '타래한복'은 "본식 외 칵테일 파티나 화보용으로 한복드레스를 찾는 분들이 이전보다 늘었다"며 "특히 젊은 여성분들 사이에서 한국식과 서양식 스타일이 결합된 퓨전한복이 인기가 많다"고 전했다.

서울 강남 청담동에 위치한 '숙현한복'도 "정확한 수치로는 알 수 없지만 한복 드레스를 찾는 예비 신부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며 "결혼식 외에도 돌잔치나 홈파티용으로도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 유통업계 '블루오션'으로 떠오른 한복…반려동물 위한 한복도 날개돋친듯 팔려

최근에는 온라인 쇼핑몰을 비롯한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도 한복 인기몰이에 나섰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1월 백화점 업계 최초로 한복 디자이너 연합 박람회를 개최했다.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이 기간 총 매출은 약 6000만원으로 집계됐다. 이중 20~30대 여성이 구매한 금액이 55%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백화점은 지난해 10월부터 '치마저고리', '서리나래' 등 패션한복 브랜드의 팝업스토어를 서울 소공동 본점 영프라자, 부산 광복점, 경남 창원점, 전북 전주점 등에 차례로 선보였다.

이재옥 롯데백화점 상품본부 여성패션 부문장은 "최근 우리 전통 문화의 아름다움에 대한 광범위한 문화적 재해석이 패션 부문에까지 긍정적 영향을 끼치면서 생활한복이라는 새로운 패션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며 "20~30대 여성 소비자들이 특별히 관심을 보여 향후 시장 확대 잠재력이 상당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롯데백화점은 현재 운영중인 팝업스토어를 정식 매장으로 변환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롯데마트가 올 1월 선보인 자체 한복패션브랜드 '테'

롯데마트는 자체 패션한복 브랜드 '테'를 출시했다. 박상희 한복 디자이너가 만든 여성·아동용 패션한복 9종으로 현재 전국 35개 점포에서 판매 중이다.

신소영 롯데마트 상품기획자는 "최근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점을 고려해 기능성 소재와 더불어 현대적인 디자인을 접목한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한복 체험의 인기를 등에 업고 등장한 한복 전문 온라인 쇼핑몰도 '리슬', '데일리한', '낭자한복' 등 수십 곳에 달한다. 기존 온라인 쇼핑몰에는 한복 브랜드가 속속 입점 중이다. G마켓은 지난해 4월 기존의 한복 부문에 '패션·캐주얼 한복' 부문을 신설했다. 명절 때만 일시적으로 팔리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한복을 찾는 수요가 늘어난 데 따른 결정이다.

G마켓은 지난 1월 설을 앞둔 한달간(2016년 12월 11일~2017년 1월 10일) 여성의류 내 한복, 생활한복 매출이 각각 전달보다 28%, 37% 증가했다고 밝혔다. 옥션에서도 올해 설 직전 한주(1월 18일~1월 24일)의 생활·전통한복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1% 늘었다. 11번가 역시 올해 설 직전(1월 1일~1월 22일) 지난해(2016년 1월 13일~2016년 2월 1일)보다 한복 매출이 약 25% 뛰었다.

한복 SPA(제조·유통 일괄형) 업체 수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업체로는 중견 한복업체인 '한솔실크'가 디자인, 제작, 유통을 담당하는 '수련빔'이 있다. 수련빔 관계자는 "유통단계 등을 줄여 가격을 낮추면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앞으로 한복에 어울리는 장신구 등으로 품목을 늘려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반려동물을 위한 한복도 인기리에 팔린다. 반려동물용품 온라인종합쇼핑몰 '이리온몰'은 지난 1월 한복 판매량이 지난해 추석기간보다 10배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롯데마트는 올해 설 기간 서울역점과 월드타워점 등 전국 25개 매장에서 '2017 설맞이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설빔 모음전'을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