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가 국내 인터넷 기업 중에서는 최강이라고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생각하면 3년 뒤가 안 보입니다. 절박한 심정으로 기술 개발 속도를 더 높일 생각입니다."

한성숙 네이버 대표가 28일 서울 중구 소공동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앞으로는 구글·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면서 기술 주도 기업으로 변화를 강조했다. 지난해 11월 '네이버 커넥트 2017' 행사에서 기술의 네이버로 변신을 선언한 지 4개월 만에 이를 재확인한 것이다. 한 대표는 작년 10월 20일 CEO(최고경영자)로 내정됐으며, 이달 17일 주주총회를 통해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기술 기업 이미지로 탈바꿈

한 대표 내정 이후 네이버는 인터넷 포털 기업을 넘어서 테크놀로지 기업으로 체질을 바꾸고 있다. 단순히 선언적인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타트업 인수나 AI(인공지능) 등 기술 개발에서 국내 대표적인 IT(정보기술) 기업인 삼성전자, SK텔레콤 등에 필적할 만큼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5개월간 국내외 기술 분야 기업에 투자하거나 관련 펀드를 조성한 게 모두 6건에 이른다.

작년 11월 프랑스의 음향 기술 업체인 드비알레 지분을 아이폰 위탁 생산업체인 대만 폭스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창시자 앤디 루빈과 공동으로 인수한 것이 신호탄이었다. 이어 올 2월 실리콘밸리 음성인식 스타트업 사운드하운드에 전략적 투자를 진행했으며, 3차원 지도 업체인 에피폴라 인수도 최근 마쳤다.

IT 업계 최초로 자율주행차 운행에 성공한 데 이어 이달 초엔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인 MWC(모바일월드콩그레스)에서 AI 서비스 클로바를 공개하고, AI 기반 대화형 서비스인 네이버i도 출시했다. 자회사 라인은 최근 홈 로봇 제작 회사인 윈클 지분을 인수하기도 했다. 네이버는 올여름쯤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AI) 스피커를 출시할 계획이다.

한 대표는 간담회에서 CEO 내정 이후 지난 5개월간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변화가 많았다"는 말로 요약했다. 그만큼 숨 쉴 틈 없는 강행군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 통번역 앱(응용프로그램)인 파파고, 인터넷 브라우저 웨일 등을 내놨고 자율주행차도 이달 말 서울모터쇼에서 선보일 정도로 업그레이드했다"며 "지난 수년 동안 개발해온 기술이 서비스에 적용되고, 실체를 갖추는 단계에 왔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도 네이버의 변신 속도가 예상을 뛰어넘는다고 평가한다. 지난해 10월 개발자 회의인 '데뷰(Deview)'에 이해진 창업자가 참석해 "앞으로는 기술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11월 한성숙 당시 대표 내정자가 "첨단 기술을 대중화하겠다"고 말했을 때만 해도 어떤 모습이 될지 윤곽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기술 기업 네이버라는 이미지가 단 몇 개월 만에 분명해진 것이다.

올 1월 분사한 연구·개발(R&D) 자회사인 네이버랩스가 송창현 네이버 CTO(최고기술책임자)를 중심으로 원천 기술 개발을 이끌고, 신중호 라인 CGO(최고글로벌책임자)가 주도하는 J태스크포스가 기술 상용화를 맡는 방식으로 역할을 나누면서 성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 대표는 "구글과 같은 큰 기업을 상대하기에는 자본력이나 기술력에서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하지만 지금 이런 경쟁을 버티지 못해서는 미래가 없다는 생각으로 과감하게 투자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콘텐츠에도 대대적인 투자 단행

한 대표는 최근 YG엔터테인먼트에 1000억원을 투자한 것과 관련, "기술에 콘텐츠가 더해져야 새로운 근육이 생길 수 있다"며 "YG가 좋은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이며 긴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 투자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네이버는 이번 투자로 양현석씨가 이끄는 YG엔터테인먼트 2대 주주에 올랐다. 네이버는 이에 앞서 작년 11월 벤처투자회사인 소프트뱅크벤처스와 500억원 규모 미디어·콘텐츠 분야 펀드를 조성했으며, 지난 21일엔 기초과학 분야 지식 콘텐츠에 1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네이버는 이 밖에 이날 총 600억원 규모 '분수펀드'를 조성해 공익 사업과 창업 지원에 쓰겠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소규모 공익재단이나 소상공인, 1인 창작자들의 성장이 분수 효과를 내도록 돕겠다는 뜻"이라며 "내부 직원들도 적극적으로 아이템을 발굴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