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공상과학(SF)소설에서 하나의 매력적인 소재가 아니다. 로봇은 은행 시스템을 침공하기 시작했다.(No longer just the objects of fascination in science fiction, robots are beginning their invasion of banking.)"
금융전문가이자 '금융브랜드(The financial Brand)'의 공동 저자인 짐 마루스의 지적대로 로봇의 침공(invasion)이 은행 등 금융사의 업무영역에서 전방위로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로봇이 대체하는 금융업무 가운데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영역을 꼽자면 자산관리(WM)와 투자(트레이딩) 부문이다. 자산관리와 투자를 로봇이 대신해주는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 시대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2025년이 되면 최대 7조원에 달하는 자산을 로봇이 운용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PB(Private Banker)가 하던 업무를 로봇이 대신하면 더 많은 고객들이 자산관리와 적절한 투자 방향에 대한 자문서비스를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된다.
국내외 금융회사들도 아직 초기단계이지만 로보어드바이저 도입에 적극 나서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로봇이 자산관리와 투자를 대체해도 모두가 장밋빛 수익률을 약속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불완전판매의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로보어드바이저 시대가 빠르게 다가오면서 투자자보호와 자산관리 대중화의 접점을 찾아나가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 로봇이 PB?…사람 대신 자산관리해주는 시대
자산관리 부문에서 로봇이 인간을 대신하는 형태가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다. 많은 증권사에 이미 도입됐고 국내 주요 은행들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로보어드바이저는 투자자가 온라인 홈페이지에서 몇 가지 정보를 입력하면 금융사가 축적해온 데이터를 바탕으로 알고리즘을 적용해 적절한 투자법을 제시한다. 아직은 초보적인 단계지만 계속 발전해 나가면 그동안 PB(Private Banker)가 해왔던 역할을 로봇이 대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포트폴리오를 관리해주는 온라인 자산관리 서비스이기 때문에 개인 투자 성향에 따른 맞춤형 자산관리가 가능하고 수수료가 저렴해 고액자산가가 아니어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은행이나 증권사는 현재는 보통 금융자산 1억원 이상을 맡긴 고객에게만 PB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국내 금융권에서도 로보어드바이저 도입이 활발하다. 키움증권은 지난해 12월 하이자산운용과 함께 로보어드바이저 자문형 공모펀드를 출시했다. 또 일부 신생 핀테크 업체와 투자자문회사가 로보어드바이저 관련 상품을 내놓고 있다.
키움증권은 글로벌 지수들의 움직임과 국제금융시장 전망, 채권, 원자재, 환율 등의 변수를 모형으로 결합시켜 자산을 배분·투자할 수있는 최적의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이 포트폴리오를 유지하기 위해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한다.
신한금융투자, 한국투자증권, 현대증권, 동부증권, NH투자증권, 삼성증권 등 증권사들도 로보어드바이저 상품을 속속 출시했다.
삼성증권의 경우 자체 개발한 플랫폼으로 주식, 상장지수채권(ETN·Exchange Traded Note), 상장지수펀드(ETF·Exchange Traded Fund), 선물 등 금융상품을 포트폴리오형태로 구성했다. 이 상품들을 매매하고 리밸런싱하는 투자의 전 과정은 로봇이 판단해준다.
하지만 국내 로보어드바이저 자문서비스는 아직 초보적인 단계이기 때문에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국내 로보어드바이저 투자자문서비스는 도입 초기 단계로 보면 된다"고 지적했다.
김우창 카이스트 교수(금융공학)는 "로보어드바이저 투자라고 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투자의 알파고를 연상하고 엄청난 수익률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처럼 인식하는데 세계 금융공학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이런 문화에 대해 크게 놀란다"며 "로보어드바이저로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게 아니라 자산배분 등 리스크 관리와 개개인에 대한 맞춤형 생애주기별 자산관리로 보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 만능로봇으로 로보어드바이저 활용하는 금융선진국들
미국 등 금융선진국에서 로보어드바이저를 접근하는 방식은 국내 금융사들과는 크게 다르다. 국내 금융사들이 '투자의 알파고'를 내세우며 지금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강조하는 것과 달리 선진국에서는 로보어드바이저를 각 금융사의 전략에 맞춰 사용한다. 자산관리 서비스를 대중화하려는 금융사는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해 수수료를 낮춘다. 연금시장 등 새로운 금융시장에 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기 위해서도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한다. 금융회사의 방향성과 전략에 따라 맞춤형으로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해 자산관리 대중화의 페달을 밟은 회사는 미국의 웰스프론트(Wealthfront)가 대표적이다. 이미 선도적인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으로 자리잡은 웰스프론트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2008년 설립됐다. 2011년부터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해 자산관리를 하면서 투자금액이 1만5000달러(한화 1674만원) 이하이면 수수료를 받지 않았다. 사람이 PB업무를 한다면 불가능한 전략이었다.
▲고객 나이 ▲연수입 ▲금융자산 투자규모 ▲투자성향 등 정보를 넣으면 이를 기반으로 알고리즘 기반 플랫폼으로 투자계획을 제시한다.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의 젊은 엔지니어층은 수수료 없는 자산관리 서비스에 열광했다. 웰스프론트의 운용자산(AUM) 규모는 26억1280만달러(2조9171억원)까지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세계적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의 로보어드바이저 활용은 웰스프론트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골드만삭스는 인공지능(AI)업체 켄쇼(Kensho)에 1500만달러를 투자했다. 또 지난해 3월에는 미 퇴직연금 운용 로보어드바이저 업체 '어니스트달러'(Honest Dollar)를 인수하기도 했다. 골드만삭스는 퇴직연금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방법으로 로보어드바이저를 택했다.
인수가 종료된 후 골드만삭스는 공식 보도자료에서 "고용주가 지원하는 은퇴계획을 이용하지 못하는 대략 4500만명에 달하는 미국인들에게 은퇴 서비스 플랫폼을 제공하기 위해 어니스트 달러를 인수했다(as part of an effort to serve the approximately 45 million Americans who do not have access to employer-sponsored retirement plans)"고 밝혔다.
은퇴연금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하겠다는 목적을 분명히 한 셈이다. 모두가 고수익을 얻을 수 있다며 비슷비슷한 금융투자 상품을 제시하는 국내 금융회사의 로보어드바이저 활용과는 달리 로보어드바이저로 초점을 맞추는 대상이 전략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 자산관리 대중화로 확산되는 로보어드바이저…7조달러 시장 예측도 나와
로보어드바이저를 이용한 자산관리는 자산관리 시장의 대중화 흐름을 타고 더욱 그 규모가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경영컨설팅업체 AT커니(A.T.Kearney)의 분석결과에 따르면 미국의 로보어드바이저 운용자산 규모는 2020년까지 2조2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딜로이트(Deloitte)는 2025년까지 로보어드바이저의 운용자산이 5조~7조달러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도 내놨다. 저금리와 저성장 지속으로 개인의 자산관리 서비스 수요가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IBK기업은행경제연구소의 분석에서도 2020년이 되면 로보어드바이저가 전세계 4500억달러의 자산을 관리할 것으로 전망했다. 딜로이트와 AT커니의 전망보다는 보수적이지만 2015년 상반기 로보어드바이저가 관리했던 자산이 200억달러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획기적인 규모 확대를 예상한 셈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실장은 "로보어드바이저는 자산운용수수료를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된 것으로 자산운용 서비스의 대중화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산운용 시장에서 수수료에 대한 부담이 존재했었는데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하면 소액으로도 고액 자산가들이 받는 서비스와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했다.
박선후 IBK기업은행경제연구소 연구위원도 보고서에서 "인공지능 등 IT기술의 금융시장 침투는 더욱 가속화돼 낮은 비용과 편리한 접근성으로 소액투자자들에게 자산관리 문턱을 낮추게 될 것"이라며 "온라인 계약 허용, 로보자문 허용 등 정부의 로보어드바이저 도입 및 활성화 발표로 관련 시장의 성장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 불완전판매 수단으로 변질될 위험도 나와
국내외 금융사들의 관심과 자산관리 대중화 움직임에 따라 로보어드바이저의 활용과 시장규모는 확대되고 있지만 불완전판매 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로보어드바이저를 내세우며 실현되기 힘든 높은 수익률에 대한 환상을 부추기고 고객들을 끌어들이는 금융회사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성복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작년 초부터 실체가 없는 기대가 형성됐고 일부 업체들이 이를 부추겨왔다"고 말했다. 박선후 연구위원도 "로보어드바이저는 기존에 사람이 하던 자산관리 업무를 컴퓨터를 이용해 자동화한 것으로 알고리즘에 따라 수익률 차이가 크다"며 "미국과 국내 로보어드바이저 자문사는 특정 지수(Dow Jones‧KOSPI 등)를 초과하는 수익률을 주장하고 있지만 객관적으로 검증된 결과는 아니다"고 지적했다.
김우창 카이스트 교수는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해 더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다는 것은 금융시장에 대한 근본적 이해가 없는 금융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상술이라고 짚었다. 그는 "금융시장에서 격언처럼 받아들여지는 말이 '어제의 수퍼스타가 오늘의 수퍼스타가 아니다'라는 것인데 이는 장기적으로 높은 성과를 지속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라며 로보어드바이저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했다.
김 교수는 로보어드바이저는 단순히 인간이 하는 PB업무를 로봇이 대신해주는 인터페이스의 교체일 뿐이라며 "(사람들이) 엑스트라 퍼포먼스(추가적인 수익)를 내는 것을 기대하는데 자본시장의 작동원리를 이해하면 새로운 기술이 그렇게 만드는 것은 어렵다"고 설명했다.
로보어드바이저를 투자의 '알파고'로 인식하고 고수익을 원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환상이라는 지적이다.
아직 국내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비대면 일임서비스에 대해서도 투자자보호를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해외에서는 투자에 대한 자문(상담)과 투자상품 매매를 로보어드바이저를 통해 비대면으로 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 금융사들의 로보어드바이저 상품은 자문업무만 가능하고 실제 투자를 하기 위해선 금융사 직원과 만나야 한다. 황세운 실장은 "결국은 비대면방식의 투자를 허용할 수밖에 없겠지만 허용은 하되 어떻게 투자자보호를 할지에 대해 고민을 해야하는 시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