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의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 위치한 차량IT지능화리서치랩 실험실. 실험용 차량의 운전석에 앉은 사람 모양의 '더미'에서는 갖가지 명령어가 쉴새없이 반복적으로 흘러나왔다. 이 더미는 수백명의 서로 다른 음성 억양과 말투, 높낮이가 내장된 특수 제작물이다. 여기서 나오는 음성은 옆에 설치된 컴퓨터에서 곧바로 문자 정보로 재생됐다. 더미와 실험용 차량 주위에 있는 스피커에서는 바람소리와 말소리, 도로의 잡음 등 다양한 소음이 나왔다. 이렇게 떠들썩한 공간에서 차가 사람의 음성을 완벽하게 인식해 길 안내와 라디오 주파수 변경, 문자메시지 전송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테스트하는 중이었다.

현대차 차량IT지능화리서치랩 연구원들이 음성인식기능을 테스트하고 있다.

현대차 남양연구소에서는 IT(정보기술)와 자동차를 결합한 커넥티드카 개발 연구가 다각도로 진행되고 있다. 차량IT지능화리서치랩은 커넥티드카에서 각종 정보·콘텐츠 이용의 기반이 되는 음성인식 기술에 대한 연구를 담당한다. 현대차는 '음성인식 기술을 업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라'는 정몽구 회장의 지시에 따라 삼성전자 등 국내·외 주요 기업과 연구소에서 음성인식 전문가들을 영입해 2014년 이 랩을 만들었다.

약 3년간에 걸친 연구를 통해 현대차 차량IT지능화리서치랩에서는 차량용 음성인식 기술의 수준을 눈에 띄게 끌어올리는데 성공했다. 운전자는 손동작 없이 음성으로 전화와 문자메시지 이용, 라디오 청취 등을 할 수 있다. 현대차는 외부 서버를 통해 무선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음성인식 장치 탑재 차량도 이르면 올해 안에 한국과 미국에서 출시할 계획이다. 현대차는 올해 미국의 시장조사 업체 제이디파워(J.D.Power)가 발표한 신차 품질 조사에서 음성인식 기술의 성과를 인정받아 인포테인먼트시스템 부문에서 2위를 차지했다.

차량IT지능화리서치랩은 인공지능(AI)의 딥러닝을 활용해 음성인식 기술의 서비스 영역을 확대하는 연구에도 주력하고 있다. AI가 적용된 차가 운전자의 주행 패턴과 자주 가는 경로, 주로 이용하는 기능과 주행 환경 등을 저장한 뒤 반복 학습을 하고, 운전자가 탑승하면 자동으로 이를 적용하는 것이다.

차량IT지능화리서치랩을 총괄하는 백순권 현대차 연구위원은 "딥러닝을 통해 반복 학습이 가능한 음성인식 기술이 탑재되면 말로 개인 업무 처리와 스케줄 관리 등 모든 사무를 처리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라며 "이는 자동차가 곧 '개인 비서'가 되는 시대가 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차량용 음성인식 기술을 포함한 커넥티드카 연구와 함께 2020년 출시를 목표로 자동차용 소프트웨어 플랫폼 운영체제인 'ccOS(Connected Car Operating System)'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6월 남양연구소 차량IT개발센터 안에 ccOS 개발을 전담하는 '인포테인먼트소프트웨어개발팀'을 신설했고, ccOS 기본 구조에 해당하는 ccOS 아키텍처 설계를 완료했다. 지금은 상용화 버전의 기준이 되는 ccOS '레퍼런스 플랫폼'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박영우 인포테인먼트소프트웨어개발팀 파트장은 "현재 구글 등 글로벌 IT 기업들이 차량용 OS 개발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 스마트폰과 더 관련이 깊은 시스템으로 설계돼 있어 완성차에 효율적으로 적용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며 "커넥티드카, 자율주행차 등에는 ccOS와 같이 자동차에 특화된 OS가 더 적합한 플랫폼으로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ccOS의 개발과 향후 다양한 분야에서의 활용을 위해 여러 글로벌 IT 기업들과 협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데이터 보안과 빅데이터 처리 등을 위해 시스코와 공동 연구개발 협약을 맺었다.

박 파트장은 "주요 수출지역인 북미와 중국 등에서 ccOS 활용을 위해 구글이나 텐센트, 바이두 등 각 지역 내 대표 IT 업체들과의 협업도 염두에 두고 있다"며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확보를 위해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관련업체들과 제휴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