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에서 가장 보수적인 영역으로 꼽히는 신용평가와 준법감시 업무가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의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사진과 글까지 금융사가 고객의 신용도를 판단하는 기초 자료로 활용되는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이미 국내외 금융사에서는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한 신용평가가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연소득이나 직업 등 단순한 정보 몇가지를 추려 대출자들의 신용을 분석하는 시대가 끝나고, 많게는 수만가지 빅데이터를 AI로 분석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아직 국내 금융회사들은 이 분야에서 초기 단계의 신용평가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등 금융선진국에서는 수만가지 빅데이터를 접목시켜 보다 정교한 AI신용평가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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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한은행·KB캐피탈·AXA 손해보험 등 국내 금융사들 AI 이용해 신용평가

국내 금융사들이 신용평가 시스템에서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이유는 고객층을 넓히기 위한 것이다. 보수적 신용평가 관행에서는 제대로 대출을 내주기 어려웠던 사회초년생이나 낮은 신용등급의 고객들도 더 많은 데이터로 정교하게 분석하면 대출이 가능한 사람과 대출이 불가능한 사람을 세분화할 수 있다. 금융회사로서는 고객층의 외연이 넓어지는 셈이다.

일부 금융사들은 이런 시스템을 도입했다. 금융권과 업계에 따르면 신한은행, KB캐피탈, AXA손해보험, SBI저축은행 등 국내 금융사들은 지난해 7월부터 보험심사와 대출심사 시스템에 AI를 활용한 '다빈치랩스'를 이용하고 있다. 다빈치랩스는 2015년 설립된 국내 핀테크 회사인 데일리금융그룹에서 전문가들과 개발한 AI 데이터 분석솔루션이다.

다빈치랩스를 적용한 신한은행 심사평가시스템을 보면, 신한은행 고객들에 대한 신용관련 데이터를 다빈치랩스에 업로드한 후 예측 대상인 고객들의 ▲직업 ▲연령 ▲성별 ▲신청금액 ▲대출이력 ▲연체이력 ▲신용카드 보유 여부 등의 정보를 알고리즘으로 조합해 사회초년생과 저신용 등급 고객 등에 대해서도 신용대출 연체 가능성을 세밀히 분석했다. 보험사와 캐피탈사 등 2금융권 금융사에 대해서도 이런 방법을 이용해 신용평가 시스템을 촘촘히 했다.

데일리금융그룹에 따르면, 다빈치랩스는 7가지 이상의 알고리즘을 조합해 기존 리스크 평가기법보다 평균 50% 이상 리스크에 대한 예측 정확도를 높였다. 다빈치랩스를 적용한 금융사들은 연간 부도율이 3% 줄었고 대출심사 승인율은 20%이상 올랐다는 분석도 나왔다.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위강산 팀장은 "예를 들어 보험사에 자동차보험을 신규로 신청하는 고객들이 얼마나 자동차 사고를 낼지, 사고의 심각성은 어느 정도가 될지에 대해서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활용해 정확도를 높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존에 금융사들이 사용하는 데이터 분석 능력을 AI를 활용해 극대화시키는 셈이다.

◆ 동호회 정보, 인터넷 접속유지시간까지 파악하는 해외신용평가

하지만 이런 국내 금융사들의 노력은 해외 금융선진국에 비하면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다. 해외에서는 국내 금융회사들이 활용하지 않는 사소한 정보까지 신용평가에 이용하는 시스템이 이미 정착됐기 때문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있는 제스트파이낸스(ZestFinance)가 대표적인 업체다. 미국 일반 은행들이 20개 안팎의 변수를 사용해 신용평가를 하는 데 반해 제스트파이낸스는 7만여개의 각종 변수를 사용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변수들에는 ▲동호회 정보 ▲SNS 포스팅 주제 ▲인터넷 접속 유지시간 등 각종 데이터가 포함된다.

ZestFinance는 기존 금융사들이 이용하지 않은 신용정보들을 이용해 고객의 신용분석에 활용한다.

SNS 정보를 기반으로 신용평가서비스를 제공하는 렌도(Lenddo)도 AI를 활용한 데이터 알고리즘을 성공적으로 이용하는 기업이다. 홍콩의 핀테크 기업인 렌도는 SNS 데이터를 이용해 신용거래가 없는 사람들의 신용리스크도 판단할 수 있도록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렌도가 사용하는 알고리즘에는 국내 금융사들은 쉽게 지나치기 쉬운 정보들이 망라됐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SNS 친구들 중에 연체자가 있을 경우 신용점수를 깎는 식이다.

렌도는 SNS기반의 신용평가 분석 데이터를 기반으로 2011년부터 필리핀, 멕시코, 콜롬비아 등에 P2P(개인간) 대출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렌도는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14 기술선도기업 36개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KT경제경영연구소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분석능력을 결합하면 대출 신청자의 신용도 판단과 채무 불이행 가능성 예측이 가능하다"며 "일반 은행들이 직장, 소득, 금융거래 실적, 연체 기록 등 소수의 변수에 기초한 신용평가 모델을 적용하는 데 비해, 최근의 핀테크 기업들은 인공지능으로 수천 개의 변수를 고려한 신용평가 모델을 활용해 기존 메이저 대출시장과 차별화된 소비자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 개인신용대출 시장에서 소비자 혜택 확대될 듯

국내외 금융사들이 AI를 활용한 신용평가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주목되는 이유 중 하나는 개인신용대출 시장에서 금융소비자들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이 확대될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다.

금융사들은 신용평가에서 부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보수적인 심사방식을 유지해왔다. 예를 들어 신용등급 4등급을 받을 만한 고객도 5등급이나 6등급으로 등급을 낮춰 대출한도는 줄이고 금리는 올린다. 몇 안되는 데이터들만을 기반으로 돈을 빌려줘야 하는 금융사들의 한계다.

하지만 AI를 활용해 수천개에서 수만개에 달하는 정보를 분석하는 금융시스템은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정교한 신용분석이 이뤄지면 지금까지 신용분석이 어려워 대출이 불가능했던 고객에게는 신규대출을 내줄 수 있고 데이터가 부족해 제대로된 신용등급을 받지 못했던 고객들의 신용등급이 높아져 대출금리는 낮아질 수 있다.

전문가들도 AI가 불러올 신용분석시스템의 효과에 주목한다. 배현기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은 "신용대출 시장에서 지금까지 형성되지 못했던 틈새시장이 형성되거나 공급이 부족했던 부분이 해소되면서 더 많은 대출이 더 낮은 금리로 제공될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효정 신한카드 본부장(모바일 사업부문)은 "지금까지는 데이터의 한계 때문에 실제 신용카드를 발급할 수 있거나 카드론 대출 자격이 됨에도 불구하고 증빙자료로만 한정해 시장이 제한적이었던 부분이 있었다"며 "고객의 채무에 대한 신념이나 습관 등 기존 금융사들이 객관화해서 판단할 수 없었던 정보를 AI를 활용해 신용평가에 반영하면 고객과 금융사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시장이 충분히 형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박대수 KT경제경영연구소 소장도 "과거에 무시됐고 금융과는 관계가 없었다고 판단됐던 데이터들이 이제 네트워크와 디바이스, 빅데이터 기술과 AI의 발전으로 금융의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고 이를 활용해 금융회사들이 신용평가 시스템을 더욱 정밀하게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설명했다.

◆ 준법감시 시스템에도 속속 도입되는 AI…2025년엔 전세계 30%달할 것

한편 금융사의 준법감시시스템에도 AI시스템이 더욱 많이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준법감시는 금융사에 적용되는 각종 규제들을 금융사가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를 감시·감독하는 업무를 말한다.

이 분야에서 금융사들은 AI를 활용한 레그테크(Regtech)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레그테크는 규제(Regulation)와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규제를 지키면서 데이터를 추출·분석·활용하는 기술이다.

조윤정 산업은행 산업기술리서치센터 차장은 "금융규제가 복잡해지고 강화될수록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리스크 측정, 불법행위 감지 등의 업무를 효율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추세를 바탕으로 WEF(세계경제포럼)는 2025년까지는 전세계 금융회사의 30%가 AI를 기반으로 한 준법감시시스템을 도입할 것으로 예측했다.

국내 규제당국도 레크테크 도입 확산을 측면지원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올해 주요 업무계획에서 레그테크 기술도입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명시했다. 디지털 금융환경에 따라 규제환경이 크게 변하고 있는 만큼 AI 등 신기술을 활용해 금융사들의 준법감시 영역의 효율화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