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판 제조 업체 A사는 수출 비중의 90%가 중국이다. 이 회사는 올 초부터 중국이 평소와 달리 샘플 통관 때부터 수출입 품목 분류코드 기재를 요구하는 등 깐깐한 조치로 통관에 갖가지 제동을 걸고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A사 관계자는 "통관 지연이 이어진다면 지난해보다 수출이 20% 이상 줄어들 것"이라며 "최근 15억원 규모의 중국 납품 계약 건도 별 이유 없이 거래 업체로부터 결제가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경남 창원에 있는 기계부품 업체 B사도 최근 중국 정부가 수백t의 수출 제품에 대해 중량의 1~2㎏ 단위까지 확인한다면서 통관을 늦춰 곤욕을 치르고 있다.

미국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 강화에다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보복 조치라는 양대(兩大) 악재를 만난 우리 수출 업체들의 피해가 현실화되고 있다. 본지가 최근 수출 업체 300개사(대기업 60, 중소기업 240개사)를 대상으로 '보호무역주의 강화에 따른 피해 현황'을 조사한 결과, 수출 기업의 16%가 "피해를 체감하고 있다"고 답했다. "아직은 아니지만, 곧 체감할 것"이라는 응답도 38%였다. 수출 기업 2곳 중 1곳은 이미 피해를 입었거나 곧 현실화될 것으로 예상하는 것이다.

수출 기업 2곳 중 1곳은 피해 현실화… '통관절차 강화·지연' 가장 우려

보호무역으로 피해를 체감할 시기에 대해서는 '앞으로 6개월~1년'(39%)이라고 답한 기업이 가장 많았다. 앞으로 1~3개월(12%), 3~6개월(27%)이 더 걱정이라는 응답도 많았다.

수출 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보호무역조치는 '통관절차 강화·지연'(54%)이다. 또 '급격한 관세 인상'(20%), '반덤핑 관세'(12%), 세이프가드(8%), 위생검역 강화(8%), 기술장벽 강화(8%) 등도 걱정했다.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은 "금융위기 직후에는 수출 확대를 위해 자국의 통화 가치를 낮추는 데 치중했지만 최근에는 자국 시장 보호를 위해 수입 금지, 고율의 관세 부과 등 직·간접적으로 제재를 가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통관 절차를 통해 규제하고 있다면 미국은 반덤핑·상계 관세 폭탄으로 국내 수출 기업을 때리고 있다. 반덤핑 관세는 수출국의 자국 내 시장가격과 수출품 가격 간 차액만큼 관세를 매기는 것이고, 상계 관세는 수출국 정부의 부당한 보조금 지원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지난 2월 한국산 철강 제품에 고율의 반덤핑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이달 9일에는 현대중공업의 대형 변압기에 61%에 달하는 반덤핑관세를 부과했다.

포스코 미국 법인의 이정운 변호사는 "한국은 미국의 반덤핑 조사 건수 기준으로 중국에 이어 2위, 상계관세 조사 건수로는 중국·인도에 이어 3위에 올라 있다"며 "관련 규정과 절차가 복잡하고 방대한 분량의 자료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이 반덤핑·상계관세를 피해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보호무역주의 지속되는데, 대응책은 아직 없어"

글로벌 보호무역 강화 추세에 대해선 '장기화되고 지속될 것'(43%)이라는 응답이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것'(29%)이라는 응답을 앞질렀다. 그러나 대응책을 마련한 기업은 사실상 전무했다. "보호무역조치로 피해를 입을 경우, 대응책이 있느냐"는 질문에 "있다"고 답한 기업은 2%에 불과했다. 절반 이상(54%)의 기업이 "대응책 없이 그냥 감수한다"고 답했고, 앞으로 대응책을 수립할 계획이라는 기업이 44%였다.

대책이 있거나 수립하려는 기업은 구체적인 방법으로 '가격 인하, 품질 개선으로 인한 돌파구 마련'(34%), '다른 나라로 수출거래선 전환'(31%) 등을 꼽았다.

현지 마케팅 강화(20%), 우리 정부에 지원 요청(13%)도 적지 않았지만, 현지 정부나 국제기구에 대응하겠다는 기업은 거의 없었다.

현지 로펌과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기업은 4%, 해당국에 항의하고 국제기구에 제소하겠다는 기업은 1%에 불과했다. 정부가 취해야 할 정책 과제에 대해선 정부 차원의 통상협상·교류채널 강화(48%)를 가장 많이 꼽았다.

또 피해 기업 직접 지원(17%), 국제기구, 타 국가와 공동 대응 모색(16%), 맞춤식 기업 컨설팅(14%) 등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기업은 앞으로 보호무역을 변수가 아닌 상수로 보고 단기적으로는 현지 로펌 등과의 협력을 강화해 상시 대응 체계를 구축하는 한편 중장기적으로는 체질 개선의 기회로 삼아 대체시장 발굴, 품질 고도화, 생산성 향상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영 서울대 교수는 "정부 입장에서는 통상교섭력 강화를 위한 정보 수집·분석과 주요 논리 개발, 국제 공조가 절실하다"면서 "동시에 우리 입장을 상대방 국가에 신속하게 전달하고 부당한 조치에 대해 시정을 요구하는 시스템을 갖춘 뒤 대응 능력이 취약한 중소·중견 기업에 대한 지원도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