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불황과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의 위협으로 영업에 큰 어려움을 겪었던 동네빵집들. 생존의 기로에 있던 이들은 고민 끝에 한가지 결단을 내리기로 했다. 바로 '뭉치자'였다. 지난 2013년 서대문구와 은평구 지역의 10개 빵집 주인은 '동네빵네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이들은 개인적으로 쌓아왔던 빵만들기 노하우를 공유했다. 이후 협동조합을 통해 '동네빵네'라는 공동 브랜드를 만들었고, 밀가루 등의 원자재를 공동구매해 비용을 줄였다.
뭉치자 동네 빵집이 살아났다. 동네 길거리에 전단지를 뿌리는 일도 못할 정도로 일에 치이던 동네 빵집들은 협동조합 브랜드를 통해 홍보다운 홍보를 할 수 있었다.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빵을 소개하고, 빵집의 위치도 널리 알렸다. 공동 작업장에서 빵을 만들어 조합 빵집에 공급해 일손을 덜기도 했다.
신제품 개발에 나서지 못했던 동네빵집들이 공동작업장에서는 개성있는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입소문을 타자 동네 빵집을 찾아오는 손님은 꾸준히 늘었다. 백화점에서 가판을 열어 빵을 팔 정도로 조합은 성장했다. 매장마다 판매하는 빵의 종류는 평균 20% 이상 많아졌고, 매출도 약 30% 늘었다. 2017년 현재 동네빵네에 가입한 빵집은 13개로 늘었다.
최근 '골목 상점'들 사이에서는 '협동조합'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협동조합은 소비자와 소상공인, 소규모 생산자 등 경제적 약자로 불리는 이들이 자금을 출자해 조합을 만들고 공동으로 운영하는 형태의 조직이다. 재화나 용역을 구매하고 생산, 판매하는 것을 함께 하는 경제적 공동체다.
일반 영리법인은 보유 주식의 수에 따라 권리의 크기가 달라진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이 모두 동등하고 공평한 권리를 가진다.
국내에서는 2012년 12월 1일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며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 5명 이상만 모이면 금융과 보험을 제외한 모든 사업 분야에서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 법이 시행된 후 국내에만 1만여개의 협동조합이 생겼다. 하지만 협동조합 대부분이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협동조합 운영을 전담하고 관리해줄 전문 인력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이유다.
바로 그런 역할을 하는 직업이 협동조합코디네이터다. 협동조합코디네이터는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운영하며 조합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종합해 방향을 정해주는 전문가다. 아직까지 비정규직인 경우가 많고 높은 임금을 받지는 못하지만, 앞으로 협동조합이 성장할수록 실력 있는 코디네이터는 그에 따른 보상을 받고 안정적인 직업으로도 자리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업계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 협동조합 설립부터 운영까지 '컨설턴트' 역할하는 협동조합코디네이터
봄을 시샘하는 늦은 추위로 찬 바람이 매섭게 불던 지난 8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화성시사회공동체지원센터 2층 소회의실. 조천호 협동조합코디네이터를 비롯한 화성시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설립준비위원 7명이 회의실로 모였다.
화성시는 시민의 의료서비스 질을 개선하고 의료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의료 기관들의 협동조합을 만들기로 했다. 이를 위해 지역사회와 시민사회, 사회적경제 단체, 화성시 지역농협 등에서 모인 20명이 준비위원회를 꾸려 조합 설립 절차에 들어갔다. 이들은 올해 3~4월 법인을 설립하고, 6월 제1호 의료기관을 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조 씨는 2013년 설립한 안산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조합 운영진으로 활동하던 중 작년 협동조합코디네이터 민간 자격증을 땄다. 새로 협동조합을 만들려는 곳에 지금까지 활동하며 쌓은 노하우를 활용하고 싶어서다. 그리고 현재 화성시의 의료기관 협동조합 설립 작업을 진행 중이다. 조 씨는 "안산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 경우 올해 약 1억원의 흑자를 낼만큼 안정적인 경영상태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화성시 협동조합 설립 과정에 절차적 문제점은 없는지 검토하고, 조합원들의 의견에 맞춰 조합의 방향을 정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준비위원들은 먼저 사무실 위치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문제는 사무실 접근성이었다. 지방이라는 특성상 대중교통 이용이 자유롭지 않아 조합원들이 편리하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을 찾아야 했다.
한 준비위원은 "화성시사회적공동체지원센터 1층 사무공간을 절차를 밟아 사용할 수 있다"며 "버스도 있고 자가 차량으로 이동하기에도 가까워 조합 사무공간으로 가장 적합할 것 같다"고 말했다. 준비위원들은 이같은 의견에 동의했고, 지원센터 1층 일부 공간을 임대해 조합 사무실로 사용하기로 했다.
이어 준비위원들은 조합원 모집 방법에 대해 논의했다. 협동조합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수의 조합원들을 모집해야 한다. '인적 결사체'인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수를 늘려야만 원활하게 운영되고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 특히 조합의 운영 비용은 전적으로 조합원들의 주머니에서 나오기 때문에 설립 초기 조합원의 수가 어느 정도 확보되어야만 한다.
준비위원들은 화성시 지역 농협과 한살림 등 기존 조합들과 시민사회 등과 연계해 조합원들을 최대한 많이 모집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조 씨는 "낙후된 지역에도 의료 기관이 들어서 지역 사회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 조합원 모집에 나설 것"이라며 "우선 조합원을 500명 정도 확보해서 운영자금을 모을 것"이라고 말했다.
◆ '뭉치자' 경제 불황 속에서도 살아남아
협동조합은 1844년 12월 영국 랭커셔주의 한 마을에서 주민 28명이 1년동안 모은 약 28파운드의 출자금으로 매장을 하나 만든데서 시작됐다. 허름한 창고였지만 몇 종류의 물품을 진열해 판매했고, 정확한 물량과 균일한 품질의 상품을 팔면서 인기를 얻었다. 이후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에게 공정한 거래라는 인식이 퍼졌고, 협동조합을 이용한만큼 조합원인 주민들에게도 배당이 돌아가 이득이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축구의 신' 메시가 속해있는 스페인의 프로축구팀 'FC바르셀로나'는 성공적인 협동조합으로 꼽힌다. 1899년 조기축구회로 시작해 조합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성장한 FC바르셀로나는 100여년 만에 세계 최고의 스포츠 구단이자 가장 잘나가는 협동조합으로 자리매김했다. FC바르셀로나 선수들은 직접 행정과 관리 업무를 수행하고 4년마다 조합원 가운데서 단장을 선출한다. 조합원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는지 감시하기 위한 옴부즈만제도도 실시 중이다.
유통마트 '미그로스'는 스위스 국민 720만명 중 200만명이 조합원으로 있고 종업원 수만 약 8만3000명인 소비자협동조합이다. 스위스에서 고용창출 1위 기업으로 손꼽히기도 한다. 커피, 설탕, 비누 등의 생필품을 유통마진을 줄여 판매하는데, 경쟁 업체보다 약 40% 정도 싸다.
국제협동조합연맹(ICA)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전 세계에 약 260만개의 협동조합이 활동하고 있다. 조합원 수는 10억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ICA의 또다른 2015년 보고서에 따르면 76개 나라 2829개 협동조합의 총 매출액은 2조9500억달러(약 3381조원)이다. 2016년 기준 영국과 프랑스의 명목 GDP(국내총생산)인 2조6449억달러와 2조4883억달러를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도 협동조합은 도산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선진국에서는 신자유주의 실패에 대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개발도상국에서는 경제 발전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 활용되는 추세다. 국제노동기구(ILO)의 2014년 보고서에 따르면 저개발국가나 개발도상국에서 농업분야 협동조합 활동이 빈곤 탈출에 효과가 있다. 에티오피아 농업부문 종사자 90여만명의 대부분이 협동조합을 통해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집트는 400만명의 농민이 농업협동조합을 통해 생산과 판매를 해 농업 발전을 이루고 있다.
2009년 국제연합(UN)은 결의안을 통해 2012년을 '세계 협동조합의 해'로 선포했고, 여러 국가에서 협동조합을 포함한 사회적 경제 관련 법과 제도를 정비했다. 스페인은 2011년, 멕시코는 2012년, 포르투갈은 2013년, 프랑스 2013년에 빈부격차를 줄이고 복지를 강화하는 수단인 사회적 경제 법을 제정했다.
한국도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을 제정한 뒤 꾸준히 협동조합의 수가 늘고 있다. 협동조합기본법에 따르면 협동조합은 재화를 만들어 판매하는 일반협동조합과 취약 계층에 사회서비스나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회적협동조합으로 나뉜다. 2012년 일반협동조합 51개, 사회적협동조합 1개 등 총 52개에 불과했던 협동조합은 2013년 총 3145개가 새롭게 만들어졌다. 2014년에는 2813개, 2015년 2466개, 작년 2164개가 만들어지면서 작년 12월말까지 총 1만640개의 협동조합이 설립됐다.
◆ "아직 협동조합 자리 잡지 못해"…운영 어려움 해결해줄 협동조합코디네이터
하지만 아직 국내에서 협동조합이 하나의 경제 형태로 자리잡고 있지는 못하다. 정부가 2015년 협동조합 실태조사를 한 결과 2014년말 기준 6235개 협동조합 중 실제로 사업을 하고 있는 협동조합은 55%뿐이었다. 절반에 가까운 협동조합이 '개점휴업' 중인 셈이다.
우윤식 신나는조합 협동조합코디네이터는 "협동조합의 수가 늘어나는 것보다는 개별 협동조합의 규모가 커져야 협동조합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도가 높아질 것"이라며 "시작 단계에 불과한 협동조합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협동조합 운영 방향을 잡아줄 길잡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협동조합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장치와 기법이 필요하다. 협동조합 정관과 규약, 규정을 만들어 조합원들에게 전달하고, 조합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이를 돕는 이들이 바로 협동조합코디네이터다.
협동조합코디네이터는 협동조합 설립부터 설립 이후 경영과 회계, 인사, 홍보, 마케팅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컨설팅을 제공하거나 직접 조합원으로 활동하는 직업이다. 협동조합 설립 절차와 법령에 따라 필요한 서류를 검토하고, 설립된 협동조합에 대해 법무적인 해석과 경영에 필요한 회계 업무 등을 다룬다. 경영 상태가 양호한 협동조합 사례를 연구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협동조합의 경영 정상화를 돕기도 한다.
협동조합코디네이터가 되기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 대학, 민간기관 등에서 운영중인 교육과정을 이수해 민간 자격증을 따면 된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과 서울시 쿱비즈협동조합, 대구광역시 대구가톨릭대학교, 부산광역시 부산사회적기업연구원, 서울대학교경영대학원, 성공회대학교에서 관련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기관마다 교육 이수 기간은 다르지만, 보통 10주 동안 약 70시간의 교육을 들으면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에서는 2014년 30명, 2015년 39명, 2016년 37명이 협동조합코디네이터 교육을 이수해 자격증을 취득했다. 서울대학교경영대학원의 경우 전문경영인 과정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약 200만원의 비용이 든다. 자격증 취득 후 3년마다 협동조합코디네이터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면 자격이 유지된다. 자격증 없이도 협동조합에서 오랫동안 근무할 경우 협동조합코디네이터의 업무를 할 수는 있지만, 기관 취업에는 제약을 받을 수 있다.
◆ 정부 지원 기관이나 프리랜서로 활동 가능…"돈보다는 사회적 가치 중시해야"
협동조합코디네이터가 되면 정부나 지자체, 민간기관에서 운영하는 협동조합 관련 사회 기관이나 현재 운영되고 있는 협동조합 안에서 활동가로 일한다. 현재 서울과 부산, 대구, 경기도 등 지역 권역별로 1개씩 총 16개의 정부 지원 협동조합 중간지원기관이 운영되고 있다. 이들 기관에서는 100~200명의 협동조합코디네이터가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지원을 받는 협동조합 관련 사회 기관에 취업할 경우 평균 20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을 수 있다. 다른 직업들에 비해 아직까지는 큰 수입을 올리지 못하는 편이다. 그러나 지역사회에 공헌하고자 하는 일이라 종사자들의 업무 만족도가 굉장히 높다. 우윤식 협동조합코디네이터는 "협동조합에 대한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이 많지 않아 인건비는 낮지만,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이 높은 직업"이라며 "협동조합 운영을 통해 지역사회의 일자리를 직접 만들어낸다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협동조합 안으로 들어가 직접 조합 운영에 참여할 수도 있다. 조천호 협동조합코디네이터는 "조합 운영진이나 직원으로 참여해 회계나 조직 운영 업무를 할 수 있다"며 "협동조합의 규모에 따라 임금 수준은 다르지만, 평균 약 200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고 했다.
프리랜서 협동조합코디네이터로도 활동할 수 있다. 프리랜서의 경우 초중고등학교 방과후 수업에 강사로 나서거나 지자체에서 협동조합 전반에 대한 교육을 전담하는 컨설턴트로 주로 활동한다. 프리랜서 협동조합코디네이터의 경우 1회 강연당 20~70만원의 강연료를 받는다고 한다.
협동조합코디네이터는 개인의 이익보다 공동체적 가치나 사회적 가치를 중시해야 한다. 한사람의 이익보다는 조합원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는 결정을 해야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또 의사소통에 능하고, 인간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면 협동조합코디네이터 활동에 큰 도움이 된다. 조합원 한명 한명이 모두 의결권을 가지는 협동조합의 성격상 의견 충돌이 발생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는데, 이때 조합원들의 성격을 빠르게 파악하고 의견을 조율해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사업체를 운영했던 경험이 있다면 협동조합코디네이터에 도전할 만 하다. 협동조합은 직업의 수만큼 여러 종류로 만들 수 있다. 김미라 한국협동조합창업경영지원센터 팀장은 "인맥이나 사업 노하우 등 업계에서 일하며 쌓은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조합원 모집도 수월하게 할 수 있고, 업계의 어려움도 잘 알아 협동조합에 진정성 있는 조언을 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만약 직업 선택의 기준을 소득이나 연봉에 둔다면 협동조합코디네이터는 좋은 선택지가 될 수는 없다. 다양한 계층 사람들을 만나 상담을 진행하다보면 주말이나 퇴근 후까지도 업무가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어 업무량도 일반 사무직에 비해 많은 편이다.
우윤식 협동조합코디네이터는 "아직 코디네이터의 소득은 높지 않아 적은 임금에도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한다"며 "협동조합 시장이 국내에 안착하기까지 약 10년 정도는 걸릴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협동조합코디네이터에 도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