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 이상 상장회사 감사위원회 설치 의무화 해제
감사위원 선출시 의결권 제한도 모든 주주 단순 '3%'
재계 투기 자본 공격 방어 가능한 '오신환案' 부상
3당, 한국당 계속 반대에 본회의 자동 표결 검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이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상법 개정안 처리가 계속 막히자 '패스트 트랙' 검토에 나섰다.
2월 국회에서 합의했던 다중대표소송제와 전자투표제 단계적 의무화가 1차 관문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소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자 상임위원회 심의를 무력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선 것이다. 여기에 3당은 2월 국회 합의를 백지화하고, 합의안에서 제외했던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집중투표제, 자사주 인적분할시 의결권 제한도 절충안을 제시하며 처리에 나섰다. 그대신 절충안은 자사주 의결권 제한은 1년 유예하며, 총 자산 2조원 이상의 상장회사들은 감사위원회를 꼭 설치해야 하는 법을 변경해 의결권이 없는 상근 감사 제도를 선택할 수 있게 했다. 또 감사위원 분리 선출시 대주주에게 적용되는 '3% 의결권 제한'도 최대주주와 특수 관계인이 합산해서 적용 받던 것을 개개인이 적용 받는 '단순 3% 의결권 제한'으로 변경했다. 상법으로 인한 투기 자본 세력의 경영권 공격 여지를 없앤 것이다.
패스트 트랙은 국회법 제 85조에 있는 '안건의 신속 처리' 조항을 말하는 것으로 330일이 지나면 자동으로 국회 본회의 표결에 부쳐지는 제도다. 이 조항을 이용하기 위해선 국회 재적 의원 과반수 이상, 상임위원회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표가 필요하다. 3당의 총 의석수는 165석으로 시도해 볼 수 있다.
다만 패스트 트랙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상법 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관 법안으로 체계·자구 심의 90일이 생략된다. 그래도 패스트 트랙으로 지정되면 최대 240일 이후 본회의 표결에 부쳐진다. 또 그 때 3당이 합심해 과반수가 넘는 표로 상법을 통과시켜야 한다. 조기 대통령 선거로 정치권의 구도가 어떻게 변화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상법 개정안의 패스트 트랙 지정은 현재 의석 수 현황으론 가능하지만, 그만큼 변수도 많다는 이야기다.
◆ 3당, 상근 감사 제도 선택 가능 '오신환案' 거론
3당은 3월 국회 처리 법안을 합의하는 과정에서 상법 개정안의 모든 조항을 다시 꺼내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앞서 2월 국회에서 3당은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상법 개정안 중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집중투표제, 자사주 의결권 제한 등은 제외하고, 다중대표소송제와 전자투표제 단계적 의무화만 처리하는 것을 수용했다.
하지만 3당은 2월 국회서 제외했던 조항들에 대해 다시 처리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관영 국민의당 원내수석부대표는 "기존에 합의된 것은 전자투표 단계적 의무화와 다중대표소송제 두 가지 였다"라며 "이것 외에 감사위원 분리 선출, 자사주 신주 배정 금지, 집중 투표제 등의 문제에 대해 의논을 더 해보기로 했다"고 밝혔다.
3당은 오신환 바른정당 의원이 낸 법안에 대해 검토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는 "민주당·국민의당·바른정당 3당은 상법 내용 대해 합의를 했다"며 "오신환 의원의 상법안이다. 4개 항목 중심으로 상법안을 합의했다"고 말했다.
오신환 의원의 상법안은 일종의 '절충안'으로 4개 조항이 들어가 있다. 4개 조항은 ▲기업 인적분할시 자사주 신주 배정 금지 ▲감사위원 분리선출▲전자투표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등이다.
오 의원의 안은 '김종인 경제민주화법' 등 국회에 제출돼 논란이 됐던 상법 개정안 보다 완화된 내용을 담고 있다. 먼저 기업의 인적분할시 자사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방안을 1년 유예하도록 했다. 자사주의 신주 배정을 기존 법안들 처럼 금지하지만, 시행에 1년 유예를 둬 기업들의 지주회사 전환을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관련 법안의 가장 큰 특징은 감사위원 분리선출 도입시 투기 자본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장치를 넣었다는 점이다. 총 자산 2조원 이상 상장회사들이 감사위원회를 반드시 설치해야 하는 법 조항을 수정해 상근 감사 또는 감사위원회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했다.
현행법은 총 자산 2조원 이상 상장 회사들은 이사회 내 감사위원회를 반드시 설치해야 하며, 감사위원회 위원은 3명 이상이고 그 중 3분의 2 이상은 사외이사로 두고, 감사위원회 대표는 사외이사가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상법 제542조의11 제1항, 상법 제542조의11 제2항, 제415조의2 제2항, 상법 제542조의11 제2항 제2호).
대규모 상장회사들은 지금까지 주주총회에서 먼저 이사를 전원 선출한 후 선임된 이사 중에서 감사위원이 될 이사를 별도 선임하고 있는데, 감사위원 분리 선출은 대주주의 의결권을 처음부터 3%로 제한해 감사위원 후보에 영향력을 행사 할 기회를 원천 봉쇄한다. 재계에서는 이렇게 되면 대주주들의 의결권이 제한된 상태에서 헤지펀드들이 뭉쳐 자신들을 대표할 감사위원을 이사회에 들여보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 의원의 안은 대규모 상장회사들의 경영권 공격 우려를 없애기 위해 감사위원회를 설치하지 않고, 상근 감사 제도를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상근 감사들은 이사가 아니기 때문에 경영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현행법은 총 자산 1000억~2조원 사이의 상장회사들은 이러한 상근 감사 제도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오 의원은 조선비즈화의 통화에서 "감사위원 분리선출의 취지는 감사 기능을 강화하자는 것이다"라며 "경영권을 장악하고자 하는 다른 의도는 배제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한국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상근 감사는 이사가 아니기 때문에 경영에 관여할 여지는 없앴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지금 법에 의해 몇 년 동안 감사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는 기업들에게 하루 아침에 상근 감사로 바꾸라는 것은 쉽지 않을 일이다"고 말했다.
또 오 의원의 안은 감사위원 선출시 대주주가 적용 받는 '3% 의결권 제한'도 완화했다. 최대 주주와 그의 특수관계인까지 합한 지분에 대해 3%로 의결권을 제한 하는 것을 '단순 3% 의결권 제한'으로 바꿨다. 오 의원의 안은 최대 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 총합을 3%로 제한하지 않고 모든 주주의 의결권을 각각 단순 3%로 제한하기로 했다.
◆ 한국당 "쉽지 않다", 3당 패스트 트랙 검토
그러나 자유한국당은 이같은 절충안도 처리하기 쉽지 않단 입장이다. 보완책이 담겨 있어도 기업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단 우려다.
김선동 자유한국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저희가 2월 국회에서 논의할 때 (상법 개정안 중) 다중대표소송제는 모회사가 자회사 100%에 한해서 도입 하는 것이고, 전자투표제 단계적 의무화 정도를 처리 가능한 선으로 놓고 합의를 했다"며 "3당에서는 '오신환 안' 등을 이야기할 순 있지만, 2월 국회 입장이 크게 바뀌긴 어렵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과 3당 원내 지도부는 오는 1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각 당 간사들과 상법 개정안 처리에 대해 재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원내 지도부들이 합의해도 자유한국당이 2월 국회에서 처럼 법사위 법안소위원회에서 상법 개정안 처리를 막을 가능성은 크다.
이에 따라 3당은 국회 법안소위를 건너 뛰고 상법을 처리할 수 있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김관영 국민의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자유한국당이 끝까지 반대하면 패스트 트랙으로 넣어서 통과시키는 것까지도 (3당이) 솔직히 생각해보자고 했다"고 전했다.
패스트 트랙은 국회법 85조의2의 '안건의 신속 처리' 제도다. 여야 합의가 없어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본회의에 자동 상정된다. 상법 개정안이 패스트 트랙으로 지정되면 여야 합의가 없어도 180일이 지나면 국회 법사위 법안소위를 자동 통과한다. 이후 상법개정안은 법사위 소관 법안이기 때문에 90일의 체계·자구 심의는 생략되면서 60일이 지나면 자동으로 본회의서 표결할 수 있는 안건으로 올라간다. 최대 240일이다. 국회 의사국 관계자는 "상법은 법사위 소관 법안이기 때문에 법사위 체계·자구 90일이 생략돼 패스트 트랙엔 최대 240일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다만 패스트 트랙의 사용엔 재적 의원 과반수 이상과 상임위원회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3당의 총 의석수는 165석으로 총 재적 의원 과반수는 넘는다. 국회법사위의 3당 재적 의원도 총 17명 중 12명(민주당 7명+국민의당 2명+바른정당 3명)으로 5분의 3을 넘는다. 상법 개정안 패스트 트랙 지정은 가능하단 이야기다. 3당은 패스트 트랙으로 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올라오면 또 다시 과반의 의석수로 안건을 통과시킬 수 있다.
하지만 상법 개정안의 패스트 트랙 이용엔 여러 가지 변수가 뒤따른다. 240일 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조기 대선 이후 정치권의 지형이 바뀔 수 있는 상황에서 240일 이후 상법에 대한 3당의 입장도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또 패스트 트랙 이용을 자유한국당이 강하게 저지하고 나설 경우 3당도 정치적인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국회 관계자는 "조기 대선이 코 앞인 상황에서 상법 개정안 처리가 가능한 날짜는 이번 주 말부터 3월 말까지 고작 열흘 정도다"라며 "그 기간 안에 3당이 패스트 트랙 등 정치적으로 부담이 큰 제도를 밀어붙일 수 있을지는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