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에는 결과를 공지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내부적으로 다시 논의해 보도자료를 배포하지 않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습니다."
지난 14일 오후 늦게 통화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홍보 담당자는 "오늘 집계 결과를 공지한다고 해서 기다렸는데 아직 (집계가) 끝나지 않은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같이 답했습니다. 이 담당자는 "한창 진행 중인 사안이니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국민연금이 이번에 뭔가 큰 일을 실시했고, 언론은 그 결과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실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대화에 등장하는 '결과'는 기금운용본부가 현재 진행 중인 기금운용역 채용의 '서류 접수' 결과를 뜻합니다.
최종 결과도 아니고 겨우 서류 접수 단계인데, 국민연금은 보도자료 배포 여부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등 신중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는 기금운용본부가 얼마 전 전북 전주로 이사를 갔기 때문입니다. 지방 이전 후 처음 진행하는 채용이다보니 언론과 관련 업계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번에 지원서를 제출한 기금운용 전문가는 370여명이라고 합니다. 국민연금이 30여명을 채용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으니 경쟁률은 12.3대1 정도가 되는 셈입니다. 2015년 상반기 경쟁률(14대1)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7대1을 기록한 지난해 상반기 채용에 비하면 상황이 나아졌습니다.
기금운용본부의 전주 이전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외부 시선을 의식해서라도 "여전히 많은 전문가들이 국민연금의 문을 두드린다는 사실이 입증됐다"는 식의 자화자찬성 보도자료를 뿌려볼 만했습니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이 방법도 택하지 않았습니다. 서류 접수 경쟁률은 기금운용역들의 연봉을 대폭 인상해준 다음 간신히 얻은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국민연금은 전주 이전이 결정된 후 핵심 운용역들의 퇴사가 잇따르자 지난해 4분기 직원들의 기본급을 10% 올려줬습니다. 정부는 오는 2018년까지 기금운용역들의 보수를 민간 자산운용사 상위 25% 수준에 맞춰주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다른 정부 유관기관에서 "다들 지방 내려가는데 왜 기금운용본부만 특혜를 받느냐"는 이의를 종종 제기한다고 합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10대1 이상의 무난한 경쟁률 결과를 얻고도 이를 자랑스럽게 내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늘어난 기금운용역들의 월급을 혈세로 책임져주는 국민의 눈치도 봐야 하고, 전주보다 더 먼 지역(서울 기준)으로 내려간 타기관 직원들의 눈치도 봐야 하니 말이죠.
이처럼 요즘 국민연금은 여러모로 위축된 상태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기금을 들고 투자활동에 나설 때 만큼은 그 누구보다 당당해져야 할 것입니다. 국민연금은 550조원의 거금을 국내외 주식과 채권, 부동산, 인프라 등에 투자하는 세계 최대 투자기관 중 한 곳입니다.
국민연금 기금은 5000만 국민의 소중한 노후자금이기도 합니다. 부디 이번에 우수한 역량과 성실함을 두루 갖춘 인재들이 대거 채용돼 기금운용본부의 재도약을 이끌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