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한은 총재, 부총재를 포함한 7명이 모여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기구다. 5명의 금통위원은 오로지 통화정책을 결정하기 위해 조사, 연구하는 일만을 맡는다.

“한꺼번에 과반수의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이 교체됨으로써 위원회의 영속성과 시계, 다양성, 정치적 독립성이 저해되지 않도록 명시해야 한다. 정치적 중립성을 위해 금통위원 임기가 대통령의 임기보다 짧지 않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 금통위원 구성의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검토하는 게 바람직하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선출 방식을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는 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통위원 선임 과정에서 대통령과 청와대의 영향력을 축소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금통위는 지난 1998년 외환위기 직후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를 받아들여 현재의 틀을 갖춘 뒤, 큰 변화 없이 운영됐다. 그러나 차기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정부 경제 부처 조직 뿐만 아니라 금통위도 개편 논의가 불거질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 무엇보다 이명박 정부 이후 7명의 금통위원 가운데 4명을 한꺼번에 교체해야 하는 일이 계속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 기재위는 지난해 '한국은행법 개정 필요성에 대한 연구'라는 주제의 보고서를 용역보고서를 발부해 최근 완성본을 전달받았다. 작성자는 한국은행, 한국금융연구원에서 근무했던 하준경 한양대(경상대학 경제학부) 교수. 이 보고서는 금통위 위원 선출 방식 및 임기와 중앙은행 목적조항에 대한 사항을 집중적으로 담고 있다. 목적조항은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이라는 양 대 목표 이외에 다른 목표를 추가할 수 있는 지에 대한 논의가 대부분이다. 결국 금통위 위원 구성 방식에 대한 논의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한국은행법 개정과 관련된 보고서 작성을 발주해 최근 보고 받았다. 대통령 선거와 맞물려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구성 방식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 4년에 한 번 절반 이상 물갈이…임기 꼬인 금통위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통위는 의장인 한은 총재를 비롯해 한은 부총재와 5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각각 기획재정부 장관, 한은 총재, 금융위원회 위원장,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전국은행연합회 회장 등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임기는 4년으로 연임할 수 있다(부총재는 3년). 정부 부처, 한은과 함께 산업계와 금융계에서 추천된 전문가들로 독립된 위원회를 구성해 통화 정책을 운용토록 짜여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금통위 구성은 청와대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되어 왔다. 부문 대표 몫인 상공회의소, 은행연합회 추천 위원을 청와대가 결정한 뒤 발표 하루 전 날 ‘○○○를 추천하라’고 두 기관에 통보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기재부와 금융위 추천 위원까지 포함해 4명을 청와대가 결정하는 것이다.

이 것이 실제 문제가 된 것은 2012년 4월 4명의 금통위원이 한 번에 바뀌면서다. 임명권자인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상공회의소 추천인사였던 박봉흠 전 위원이 2010년 퇴임한 뒤 2년간 선임하지 않다가 한 번에 4명을 교체했다. 그 여파로 4년 뒤인 지난해 4월에 금통위원 4명이 한 번에 바뀌었다. 이 때문에 2020년에도 또다시 초보자들로 위원회를 꾸려야 하는 것 아닌 지 금융계는 우려하고 있다. 게다가 2010년 당시 임명된 4명은 선거 캠프, 현대자동차 출신 등으로 모두 직·간접적으로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던 인사들이었다.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 “정치적 중립성 확보·금통위원 평가 강화해야”

보고서는 “예를 들어 1년에 2명 이상 교체되지 않도록 하는 조항을 명시하는 등의 방법으로 한꺼번에 과반수의 위원이 교체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정치적 중립성을 위해 금통위원 임기가 대통령 임기보다 짧지 않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며 “신용 사이클이 4~5년인 것을 감안해 임기를 5년으로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임기 연장을 언급했다. 추천제에 대해서 “유명무실한 추천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서술하기도 했다. 금통위원 구성 방식을 바꿔야 하는 이유로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든 것이다.

금통위원들의 대외활동을 늘려야 한다는 권고도 보고서는 담고 있다. 보고서는 “금통위원에 대한 평가가 시장, 학계, 언론계에서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서술했다. “금통위원의 전문성이나 정치적 독립성을 검증할 수 있도록 한은의 커뮤니케이션 수단들을 활용해 각 위원의 견해가 충분히 평가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금통위원 구성의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원론적인 내용의 조항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금통위원에 대한 국회 청문회는 “80% 이상 국가들에서 실행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현행 인사청문회는 국무위원급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을 감안”할 경우 “중장기 과제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사실상 실시하지 않을 것을 권고했다.

◆ 이주열 한은 총재 “금통위원 임기 개편 논의 필요해”

국회 내에서도 한은법 개정 추진 움직임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정병국 바른정당 대표는 7일 기재부와 금융위 몫 금통위원의 임기를 한 차례에 한해 4년에서 3년으로 줄이는 방식으로 임기를 조정하자는 내용의 한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난해 임기가 끝난 19대 국회에서는 한은법 개정안이 모두 20건 제출됐다. 그리고 다른 쟁점 사항에 밀려 본회의 안건으로는 한 번도 올라가지 못했다. 하지만 20대 국회에서는 분위기가 다를 것이라는 게 정치권 안팎의 설명이다. 한 국회 보좌진은 “금통위도 지난 보수 정부의 지나친 인사 개입으로 인해 조직 운영이 꼬여버린 사례 가운데 하나”라며 “대통령 권한을 줄이는 것은 쟁점이 될 수 있지만 임기 조정은 충분히 논의될 만 하다”고 말했다.

한은도 금통위원 임기 조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명시적으로 내놨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7일 서울대에서 기자와 만나 “원래 금통위원 임기를 엇갈리게 해 한 번에 2~3명씩 바뀌도록 되어있었다”며 “현재 금통위원 7명 가운데 4명이 한 번에 교체되곤 하는 상황은 운영의 안정성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임기 조정 등 개편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