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름 휴가 일정을 짜고 있는 직장인 이모(26·여)씨는 휴가 후보지에서 중국을 제외했다. 지난 2일 우리나라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발표 이후 한국 여행 금지령을 내리고 롯데마트에 영업정지 조치를 취하는 등 중국의 보복성 제재가 갈수록 노골화되자 “중화권으로는 여행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확 들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무섭기도 하지만 한국을 아래로 보면서 무시한다는 생각에 불쾌했다"고 말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일부에서는 중국 정부로부터 보복을 받고 있는 롯데마트를 지원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한 네티즌은 “영업정지 소식을 듣고 와이프와 함께 롯데마트에 들러 식품류를 구매했다”면서 “롯데가 국익을 위해 결단을 내렸다가 고통받는 만큼 국민이 외면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1월 초 해외로 나가려는 여행객들로 북적이는 인천국제공항 출국장.

중국 정부의 도를 넘은 사드 보복 조치와 현지 소비자들의 ‘반한(反韓)정서’가 연일 뉴스에 보도되면서 ‘반중(反中) 정서’가 고개를 들고 있다. “중국과 정면으로 붙으면 한국이 손해다”라는 목소리가 더 강하지만, 마냥 끌려다닐 수만은 없다는 민심도 있는 것이다. 주류 등 중국 제품 수입업체나 여행사 등은 이같은 분위기가 확산되지 않을 지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 中 여행 취소 문의 잇따라…주류·유통업계 “아직 뚜렷한 징후 없지만 예의주시”

7일 여행업계에 따르면 각 여행사에는 사드 배치가 결정된 이후 예약한 중국행 항공권을 취소할 수 있는지를 묻는 문의 전화가 잇따르고 있다.

모두투어 관계자는 “중국행 티켓 취소가 확연히 드러나는 수준까진 아니지만 몇몇 패키지 상품은 벌써 일정에서 중국을 빼고 있는 상황”이라며 “중국에 대한 거부감도 있을 수 있지만, ‘중국 여행이 안전하지 않을 것’이란 우려감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중국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이 줄어들면 중국도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수 있다. 2015년 기준 중국을 방문한 여행객 중 한국인이 차지한 비중은 약 17%(444만여명)로 외국인 관광객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중국 제품 불매 움직임도 일고 있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곳곳에서는 “우리도 질 수 없다”, “똑같이 되갚아주자”는 내용의 게시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 누리꾼은 “중국 제품을 사면 매국노나 다름없다”며 칭다오 맥주, 샤오미 등 기업과 제품 이름을 언급했다. 중국 여행 대신 국내 여행을 권장하는 글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만난 한 시민은 “누가 샤오미 제품을 부수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거나 중국 제품을 불매하자고 해도 나쁘게만 볼 수 없을 것 같다”며 “칭다오 맥주도 평소 즐겨 마시지만 요샌 마냥 사먹기 껄끄럽다”고 말했다.

국내 샤오미 제품 총판을 담당하는 유통업체 비투유글로벌은 “아직 소비자들 사이에서 반중감정을 체감하고 있지는 못하고 있으나 현재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칭다오 맥주 측도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긴 이르다”며 “조금 더 지켜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칭다오는 현재 국내 수입맥주 점유율 순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옥션 등 오픈마켓 업계도 “수치상으로는 확인되고 있지 않지만 중국 제품에 대한 거부감이 소비자들의 불매로 이어질지 모른다”고 걱정을 내비치고 있다. 이베이코리아 관계자는 “사드 배치가 확정된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판매량 변화까지는 알 수 없다”면서도 “사태가 사태이니 만큼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칭다오 맥주와 양꼬치. 칭다오 맥주는 최근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며 국내 수입맥주 시장 1위에 올랐다.

상황이 이러자 ‘양꼬치엔 칭다오’라는 광고 문구로 칭다오 맥주와 함께 최근 소비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양꼬치 전문점들도 좌불안석이다.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한 양꼬치 전문점 직원은 “양꼬치를 찾는 소비자가 크게 줄거나 테이블에서 ‘양꼬치, 칭다오 먹지 말자’는 등의 대화는 들리지 않지만 중국 측에서 하도 강경하게 나오니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같이 치졸해지지 말자” 목소리도

다만 “중국처럼 치졸해지지 말자”는 목소리가 현재는 더 크다. ‘내 생에 가장 빛나던 순간’의 작가 안도현 시인은 지난 6일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중국이 사드 배치 보복으로 롯데 등을 옥죄고 내팽개치니까 중국 상품 불매 운동으로 맞서자는 제안은 공정해 보이지 않는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화여자대학교에 재학중인 유모(23·여)씨는 “지금 입고 있는 옷도 다 중국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라며 “불매 운동을 하기엔 중국 제품들이 이미 우리 삶 속 깊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우리가 작정하고 불매운동에 나서봐야 중국에 그런 보도가 나오면 도리어 우리의 피해가 더 커질 것”이라며 “지금으로서는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는 의견을 밝혔다.